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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인터뷰] "트럼프, '친절한 파시즘' 봉인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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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촘스키 인터뷰] "트럼프, '친절한 파시즘' 봉인 해제"

[트럼프 시대 ⑥] "트럼프와 공화당, 인류 재앙 몰고 올 것"

오는 1월 20일 세계는 전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다. '미국우선주의', '백인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날드 트럼프가 패권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앞으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왔던 세계적 자유무역의 추세는 역전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 회복 및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보호와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의 과도한 대외 군사 개입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핵공격 위협도 불사하겠다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노엄 촘스키 등 미국의 비판적 지성들은 기후온난화 위기와 미국의 경찰국가화를 트럼프 시대의 최대 위협으로 꼽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한 기후온난화를 부정하는 트럼프는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을 확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로써 기후온난화는 악화되고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물종이 절멸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01년 9.11사태 이후, 테러 위협을 빌미로 강화돼온 정보기관의 대국민 사찰 등 미국의 경찰국가화와 민주주의의 후퇴도 우려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트럼프의 대외 개입 축소 공약이 한국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넓힐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반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추진해온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트럼프 시대가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은 노엄 촘스키, 톰 엥겔하트, 월든 벨로, 이매뉴얼 월러스틴, 존 페퍼, 팀 셔록 등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을 통해 트럼프 시대, 세계와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트럼프 시대 ①] 톰 엥겔하트 : 트럼프는 전쟁의 역사가 자초한 '역풍'
[트럼프 시대 ②] 월든 벨로 : 오바마의 '경제 실패'가 트럼프를 소환했다
[트럼프 시대 ③] 존 페퍼 : "난 트럼프가 예측 가능해 불안하다"
[트럼프 시대 ④] 이매뉴얼 월러스틴 :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수 없다"

[트럼프 시대 ⑤] 팀 셔록 : 트럼프는 미일한 삼각 군사동맹을 완성할까?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비영리 인터넷 매체 <트루스아웃>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우려한 문제는 기후변화협약의 무력화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인류를 재앙으로 이끌 기후 변화 문제를 가속화 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후변화는 일부 환경운동가들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 문제는 전 세계 양심적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당면 현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촘스키 교수는 공화당을 "인류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면 빨리 파괴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세력이라고, 트럼프를 "(인류를) 가급적 빨리 벼랑 끝으로 달려가자"고 채찍질하는 인물이라고 단언했다. 촘스키는 "이들은 지금껏 살아온 방식으로 앞으로도 인류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도 재앙을 향한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 인구의 40%가 조만간 예수가 재림할 텐데 지구 온난화 따위가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촘스키 교수는 트럼프의 당선과 공화당 득세의 여파로, 파리 기후협약은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에 따른 재앙으로 이어져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어 경제적 절망에 사로잡힌 대중들에게 트럼프가 마치 '변화'를 대변하는 지도자처럼 인식돼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돌아봤다. 유럽의 브렉시트나 극우 정치의 창궐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희생된 노동자들, 소득 하위계층들의 분노에 토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줄어든 일자리와 고용 안정성 악화라는 현실적 위기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무너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촘스키 교수는 "트럼프가 가져올 변화는 더 해롭고 악화될 방향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트럼프 시대는 거대 의료회사, 월스트리트, 군수산업체, 에너지 기업들에게 매우 밝은 미래가 될 것"이라며 "부자들도 (세제 혜택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어 민주당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을 옥죈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모른 체 했으며, 정부와 기성 정치에 대중들의 분노가 집중된 사이 기업들은 통제받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개탄했다.

또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치의 우경화와 유럽에 창궐한 극우 민족주의를 히틀러 시대에 빗댄 촘스키 교수는 "들끓는 공포와 분노를 교묘히 이용한 '친절한 파시즘'으로 세상이 이끌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다음은 촘스키 교수 인터뷰 전문. (☞원문 보기)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AP=연합뉴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모든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승리를 거뒀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끔찍하고, 무지막지하고, 위험한 파트타임 어릿광대이자 풀타임 소시오패스"라고 묘사한 사람이 이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미국 정치사상 최악의 오점이 될 선택을 하게 된 데에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보나?

촘스키 :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류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날로 기록될 11월 8일에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1월 8일에 발생한 가장 큰 뉴스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점 자체가 뉴스라고 할 만하다.

11월 8일, 세계기상기구(WMO)는 파리 기후협약 이행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2)를 열었다. WMO에 따르면, 지난 5년은 역사상 가장 무더웠던 시기였다. 극지방, 특히 남극 빙하가 급속히 녹아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북극 빙하가 감소한 총량이 그에 앞선 29년 동안의 평균치보다 28%나 더 감소했다.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극지방 빙하의 냉각 효과가 감소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WMO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파리 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설정한 제한목표치에 위험 수준으로 근접해가고 있다고 한다.

11월 8일에 벌어진 또 다른 사건 역시 역사적 의미가 각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역시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11월 8일은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무참히 뭉개버릴, 세계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대선이 열린 날이다. 선거 결과 공화당이 정부와 의회, 연방대법원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이로써 미국 공화당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조직이 됐다.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방금 내가 한 말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공화당은 인류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면 빨리 파괴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역사적 선례가 없을 정도다. 과장처럼 들리는가? 우리가 보아온 것들을 따져보자.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그 어떤 후보도 (기후 온난화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셰일가스 시추 기술인) 프래킹 공법으로 보다 많은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한 당장 어떤 조치도 취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양식 있는 온건파라고 할 수 있는 젭 부시 정도가 기후 온난화의 영향은 알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존 케이식은 지구 온난화에 동의하면서도 "오하이오는 석탄 연료를 계속 사용할 것이고 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젠 대통령 당선자가 된 공화당의 승자, 트럼프는 석탄을 비롯한 화석 연료 사용을 하루 속히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에 대한 규제를 낮춰야 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전환을 모색하는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지원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가급적 빨리 벼랑 끝으로 달려가자는 얘기다.

트럼프는 이미 환경보호국(EPA) 해체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환경보호국 체제 전환 담당자로 기후변화를 부정하기로 악명 높은 마이런 에벨을 앉혔다.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 분야 수석 참모인 해럴드 햄은 규제 철폐, 에너지 관련 대기업들에 대한 세금 감면, 더 많은 화석연료 생산, 오바마가 잠정 중단한 다코타 파이프라인 재가동 등을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정책 변화라고 발표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았다. 심지어 파산 신청을 했던 세계 최대의 석탄 채광업체인 '피버디 에너지'조차 트럼프 당선 이후 50%나 주가가 뛰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공화당이 집권한 효과는 즉각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파리 기후협약이 실효성 있는 협약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졌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구속력 있는 조치들을 모조리 거부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작 효력이 거의 없는 자발적 동참 조항 정도만 기대해야 할 처지다.

이런 효과들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질 것이다. 방글라데시만 하더라도 해수면 상승 등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해 몇 년 내에 수천만 명이 나라를 떠나야 할 것이다. 이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난민 문제와도 결부돼 있다. 방글라데시 최고의 기후과학자가 "난민들은 온실가스를 내뿜어대는 모든 나라로 이주할 권리가 있다.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한 주장은 매우 합당하다. 나아가 이들 기후 난민은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부유해진 동시에 소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하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열어 제친 다른 부자 나라들에도 이주할 권리가 있다.

이런 재앙적인 결과는 단지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전역에서 증가할 것이다. 이 지역에선 가난한 이들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기온이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으며, 히말라야도 녹아내려 물 공급을 위협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이미 3억 명이 식수 부족에 처했다. 이런 일들은 더 많은 지역에서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으로 앞으로도 인류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직면해 있는데도 재앙을 향한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의 생존이 달린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70년 간 파괴적인 핵무기의 위협이 커졌으며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 숱하게 쏟아진 선거 보도 속에서 이 중요한 일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슈일 뿐이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적어도 나는 적절한 말을 생각하지 못하겠다.

이제 당신이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힐러리 클린턴은 전체 득표에서 약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 정치의 독특한 특징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여러 주가 연합해 건국을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선거인단 제도의 유산을 들 수 있다. 각 주마다 승자독식 방식을 채택한 점, 농촌 유권자들에게 가중치를 부여하기 위해 선거구를 배분한 점(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하원 선거에서 득표 수는 공화당에 크게 앞섰으면서도 의회과반을 공화당에 넘겨줬다), 50%에 가까운 기권자 비율 등이다.

미래를 위해 유의미한 사실은 18세~25세 연령대의 젊은 층에선 클린턴이 낙승을 거뒀고, 샌더스는 더 많은 지지를 받았었다는(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이겼다는) 점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류가 직면하게 될 미래의 모습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백인, 노동 계층, 연소득 5만~9만 달러 정도인 소득 하위 계층, 비도시 거주자,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엄청나게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구 사회 전반에서 이들은 중도적 기득권층에게 분노하고 있는 집단이다. 예상치 못했던 브렉시트 투표 결과나 유럽 전역에서 목격할 수 있는 중도 정당의 몰락으로 이미 실체를 드러냈다. 분노와 불만에 찬 수많은 이들은 지난 시대를 풍미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희생양들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관리 감독한 미국의 잘 나가던 경제는 2007~2008년에 붕괴해 세계 경제 전반에 위기를 일으켰다. 그때까지 그린스펀은 경제학 교수 등 추종자들로부터 '세인트(聖者) 앨런'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린스펀은 의회에서 사실상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차마 임금 인상, 복지 혜택, 노동 안정성 등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임금이 동결돼도, 복지 혜택이 줄어들어도 참고 견뎌야 했다. 신자유주의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건강한 경제의 신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린스펀의 경제 이론의 실험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결과였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기적이 절정에 달했던 2007년, 비관리직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전해에 받았던 임금보다도 낮아졌고, 남성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심지어 1960년대 수준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반면 극소수 최상위층과 1% 부자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졌다.

경제학자 딘 베이커가 최근 저서에서 꼼꼼히 되짚었듯이, 이는 자유시장 원리나 실적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정책 결정이 낳은 것이다. 최저임금 문제를 보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하다. 비교적 균등한 고도 성장기였던 1950~1960년대에, 다른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밑바탕인 최저임금은 생산성이 증가한 만큼 인상됐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원리가 들어서면서 그 시절은 끝났다. 그때부터 최저임금은 (생산성 증가와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동결됐다. 최저임금이 예전처럼 그대로(1950-60년대의 증가율 수준으로) 올랐다면 아마도 지금은 시간당 20달러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린 것이 무슨 혁명이나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완전 고용에 근접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노동 참여 인구 비율은 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임금이나 복지 혜택 면에서 볼 때, 과거 노조가 보호하는 제조업 분야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오늘날 몇몇 서비스업 분야의 불안정한 임시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임금이나 복지 혜택, 일자리 안정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자기 존엄성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무너졌다.

그 충격을 사회학자 앨리 호흐실드는 트럼프 지지의 아성이었던 루이지애나 주의 사례를 통해 섬세하고 극명하게 포착했다. 호흐실드는 루이지애나 주에 거주하며 수년간 일을 했다. 호흐실드는 열심히 일하고 전통적 가치들을 지키면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씩 나아질 거란 희망을 품고 사는 루이지애나 주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상층부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에 대해선 별 불만이 없었다.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그것이 '미국적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뒤쳐진 사람들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무자격자들'이 정부 정책 때문에 자기들을 앞질러 나가게 됐다고 여긴다. 그들은(중하층 백인) 정부 정책이 흑인과 이주민들, 혹은 멸시의 대상으로 삼은 이들에게 유리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로널드 레이건이 흑인 (미혼모)들을 가리켜 백인들이 힘들게 벌어들인 돈과 희망을 도둑질하는 '복지의 여왕'이라고(일은 안 하면서 자신들이 세금으로 낸 정부의 아동양육 수당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기 때문) 비난한 인종주의적 거짓말 때문에 악화됐다.

자신들의 처지가 악화되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던 중하층 백인들은 정부를 중오하기 시작했다. 보스톤에서 내가 만난 페인트 업자는 페인트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워싱턴 관료들과 회의를 가진 후 사악한 정부를 격렬히 비난하게 됐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관료들은 유일하게 쓸 만한 페인트인 납 성분 페인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결국 정부 엘리트들이 질 나쁜 페인트를 쓰도록 강요해서 그 페인트 업자가 하던 쥐꼬리만한 사업마저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정부 관료들이 비난받아 마땅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호흐실드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어떤 남성은 자신과 가족들, 친구들이 화학물질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면서 정부와 진보 엘리트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그에게 환경보호국이란, 낚시를 못하게 하면서도 정작 화학 공장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사례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실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트럼프만이 자기들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정 공약 등을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라는 건 분명하다. 상황 악화를 막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가 변화를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열광으로 이끌어냈다. 반면 클린턴은 자신들의 고통을 영속시킬 후보로 인식됐다. 트럼프가 가져올 '변화'는 사실상 더 해롭고 악화된 방향일 테지만, 이 점이 분명하게 인식되지 못한 것도 이해는 할 만 하다. 저마다 교육을 받고 조직화될 수 있는 노조 같은 연대체가 부족한 원자화된 사회에 사람들이 고립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엄청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망적인 태도 가졌던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트럼프의 승리에는 다른 요인들도 찾을 수 있다. 인종주의가 그것이다. 백인 우월주의가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미국 문화권에서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비교연구가 있다. 미국에서 백인 인구 비율이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10년~20년 내에 백인들은 노동 인구에서 소수가 될 것이며 머지않아 전체 인구에서도 소수자가 될 것이다. 백인들은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적 문화가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 탓에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다. 엘리트들이 '근면한 노동, 애국심, 교회 활동' 등 백인들이 신봉한 가족의 가치들을 멸시한다고 여기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라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인구의 40%가 조만간 예수가 재림할 텐데 지구 온난화 따위가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 40%는 세상이 불과 몇 천 년 전에 창조됐다고 믿는 사람(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다. 과학이 성경을 깔아뭉개려 들면, 오히려 과학이 비정상이 되는 구조다. 이런 몽매한 사회가 또 어디 있나.

1970년대부터 노동자들을 괴롭힌 문제들을 모른 체 했던 민주당도 노동자들에겐 더 고약한 계급의 적들과 도긴 개긴 수준이다. 심지어 민주당은 젤리빈을 먹으며 농담을 던지는 레이건 식의 서민 코스프레 말투를 따라하는가 하면, 섭씨 40도는 될 것 같은 농장에서 잡목 베는 일을 즐기며 술집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꾸민 조지 W. 부시의 이미지를 따라하려 했다. 예일대 출신인 부시는 알면서도 일부러 틀린 발음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트럼프가 사람들에게 정당한 불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들은 직장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잃었으며, 자기 삶을 파괴한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있다.

대중들의 분노는 기업들이 아니라 기업들이 고안한 프로그램을 시행한 정부 쪽으로 향했다. 예컨대, 기업과 투자자들의 권리를 견고하게 보호하는 조치들이 언론에선 한결같이 '자유무역협정'이라고 잘못 기술되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기업과 달리 정부는 어느 정도 대중들의 영향과 통제를 받는다. 대중들이 잘난 척하는 정부 관료들에게 증오를 품는 것이 기업들 입장에선 대단히 유리하다. 기업들은 정부가 국민들의 뜻을 수렴하는 기구라거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불온한 생각을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트럼프를 미국 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 인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유권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싫거나 '그저 그런 정치'에 신물이 나서 뽑은 사람으로 봐야 할까?

촘스키 : 새로울 것은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경화됐다. 오늘날의 민주당은 '중도적 공화당'이라고 부르던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 버니 샌더스가 주장한 '정치 혁명'이란 것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들었다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말이었을 것이다. 부자들과 기업들에게 너무 치우친 공화당은 자기들 정책으로는 표를 얻을 수가 없어서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부동층에게 초점을 맞춘다. 복음주의자들, 반이민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아울러 전 세계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 관계로 내모는 세계화 정책의 희생자들도 포함된다. 세계화는 기득권 세력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들을 파괴했는데, 그 중에는 노동조합 등 공적 사적으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구들이 대표적이다.

공화당 예비경선 결과가 그 증거다. 미셸 바흐만, 허먼 케인, 릭 샌토럼 등 바닥에서 치고 나온 모든 경선 후보들이 매우 극단적이었다. 공화당 주류들은 그들을 주저앉히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퍼부어야 했을 정도다. 2016년 선거가 과거와 다른 점은, 그럼에도 주류가 분루를 삼키며 패했다는 것이다.

옳건 그르건 클린턴은 두렵고 증오스러운 정치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반면, 트럼프는 '변화'의 상징처럼 보였다. 이게 어떤 변화인지를 알려면 트럼프의 공약을 면밀하게 들여다봤어야 했지만, 대중들은 이를 간과했다. 선거 운동 자체가 이슈들을 피해가는 식으로 전개됐고, 언론들도 기존 체제 안에서의 정확성을 뜻하는 '객관성'이라는 관념에만 충실했을 뿐, 기존 체제를 벗어나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당선 뒤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들을 대표하겠다"고 말했다. 나라가 너무 분열돼 있고, 트럼프 스스로 이미 여성이나 소수자 등 미국 사회의 여러 집단에 대한 심각한 증오를 표한 바 있는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한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승리에 어떤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촘스키 : 브렉시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일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발흥과도 결정적인 유사점이 있다. 나이절 패라지, 마린 르펜, 빅터 오르반 등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자기들 무리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그가 승리하자마자 축하의 뜻을 표했다. 이건 매우 가공할 만한 상황 전개다.

내가 어린 시절이던 1930년대를 잘 알거나 직접 겪은 이들에게 최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여론조사 결과는 달갑지 않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히틀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의 연설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히틀러의 말투와 청중들의 반응은 정말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첫 번째 글을 썼던 1939년 2월은 바르셀로나가 함락되고 파시스트 전염병이 거침없이 퍼져나가던(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프랑코가 공화파를 격파하고 승리) 때였다. 기묘하게도 내가 2016년 미국 대선 개표 방송을 아내와 함께 지켜본 곳도 바르셀로나였다.

트럼프가 일으키지는 않았을지라도 증폭시킨 문제들을 그가 어떻게 다뤄나갈지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의 가장 유별난 특징은 예측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과 그가 제시한 비전에 간담이 서늘해진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반응할지가 중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트럼프가 내면화한 특별한 이념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행위를 보면 독재적인 기질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가 '친절한 파시즘'의 출현을 반영한다고 하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나?

촘스키 : 지난 수년간, 나는 솔직하면서도 카리스마적인 이데올로그(이념가)가 미국 사회에 등장할 위험성에 대해 글을 쓰고 연설을 해왔다. 미국 사회에 들끓는 공포와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산적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회피하도록 유도하는 사람의 등장이다. 이미 35년 전에 사회학자 버트램 그로스가 통찰력 있게 명명한 '친절한 파시즘'으로 세상이 이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히틀러처럼 솔직한 이념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지난 수년 동안 이런 위험성이 실재했는데, 트럼프가 그것을 봉인 해제한 이상 위험성은 보다 높아질 것이다.

공화당이 백악관은 물론이고 상하 양원, 연방대법원까지 장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향후 4년간 미국은 어떻게 되는 걸까?

촘스키 : 대부분 트럼프의 공약이나 그의 참모진에게 달린 문제다. 초기 단계의 정보들로는 그걸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향후 수년간 보수 진영이 장악하게 될 대법원의 미래는 예측가능하다. 또한 트럼프가 폴 라이언 방식의 재정 정책을 따를 경우, 부자들은 어마어마한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조세정책센터의 평가에 따르면, 상위 0.1%는 14%의 세금 감면 혜택을 입게 되고, 소득 상위 계층들도 엄청난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세제 혜택도 없이, 지금까지 없던 세금 부담까지 지게 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논설위원 마틴 울프에 따르면 "(트럼프의) 세금 정책은 트럼프 같은 갑부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나온 재계의 즉각적인 반응은 거대 의약회사, 월스트리트, 군수산업체, 에너지 회사 등에게 매우 밝은 미래가 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한 가지 긍정적인 기대는 트럼프가 약속한 인프라 투자 정책이다. 오바마의 경기부양 정책이 미국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 효과가 기대됐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적자 재정 우려를 이유로 시행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에 많은 언론이 눈을 감았다. 오바마가 경기부양책을 쓰려던 당시의 저금리 상황에서 공화당의 주장은 거짓이었다. 경기부양책은 지금도 트럼프의 재정 계획 카드로 남아있지만, 이는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나 국방비 지출 확대와 병행 추진될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 시절 딕 체니가 폴 오닐 재무장관에게 "레이건이 재정 적자 따위는 문제가 안 된다는 걸 이미 증명했다"며 제시했던 출구가 아직 남아 있다. 즉, 공화당이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만든 적자 재정을 민주당 등 다른 쪽이 감당하도록 떠넘기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적어도 얼마간은 먹힐 수 있다. 이 밖에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도 아무도 따져 묻지 않은 많은 의구심들이 있다.

트럼프와 푸틴이 서로 존경한다고 했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이라고 봐도 될까?

촘스키 : 한 가지 희망적인 전망은 러시아 국경에서 매우 위험스럽게 고조되고 있는 긴장이 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국경이 아니라 러시아 국경에서 말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다른 유럽 지도자들이 이미 시사했듯이, 혹은 브렉시트 이후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영국 국민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이 트럼프의 미국과 거리를 둘 수도 있다. 이런 흐름은 유럽을 러시아와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이끌 수 있다. 어쩌면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내걸었던 군사 동맹이 존재하지 않는 유라시아 통합 안보 체계(유라시아 공동의 집) 같은 것이 추진될 수도 있다. 물론 고르바초프의 구상은 나토의 확장을 추진한 미국 때문에 좌절됐다. 그러나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푸틴이 최근 유사한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나 조지 W. 부시 정부와 비교해 볼 때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군사주의적 성향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보나?

촘스키 : 그 점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트럼프는 너무 예측불가능한 사람이고 너무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중 운동이 어떻게 조직되고 실천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운명이 거기에 달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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