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와 분쟁을 겪은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지난한 과정 끝에 싸이의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자발적인 회복 기간을 가지는 것에 합의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한 합의를 하기까지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강제 집행이 있었다.
지난 8월 31일자로 드로잉은 싸이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자신들이 겪은 일을 '재난'으로 칭했다.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였다. 문제는 이러한 재난이 자신들에게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난 1년여 동안 체화했다는 점이다. 서울 곳곳에서 '건물주-세입자' 간 분쟁이 일어난다.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곳곳이 재난 현장이다.
<프레시안>에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준비한 기획 기고를 게재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재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일종의 '재난 유산'을 글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여기에는 재난을 직접 겪은 이들부터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인터뷰는 최소연 디렉터가 진행했다.
최소연 : 재난유산은 어떤 마음을 발굴하는 작업장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재난현장에 대한 초심(드로잉)입니다. 그 마음의 이름을 돌멩이 위에 적어주세요.
신현방 : 2015년 11월 5일, 정용택 감독님 소개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처음 만났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처음 와서 4-5시간을 보냈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 건물 앞에 섰을 때, 그 안에 발을 들였을 때, 얘기를 시작하고 한 분 한 분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이야기를 듣고 떠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마음이 변했던 것 같아요. 다섯 가지 단계로 변해갔던 것 같아요. 어수선함, 혼돈, 혼잡, 위태로움, 안타까움 순서였어요. 그 마음의 크기는 도버해협 정도. 예전에 브라이튼 해안가를 처음 갔을 때 폭풍 같은 비바람이 몰아쳐서 파도 같은 바람이 불어치던 때 생각이 들어서예요. 마음의 색깔은 침침한 회색, 동시에 더해서 마젠타 레드를 같이 썼어요. 회색과 강렬한 붉은색 또는 자주색이 섞여 있지는 않고, 바탕은 회색인데 마젠타 레드가 화살처럼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처음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상은 '거긴 어디지', '어떤 분들이지' 하는 궁금증이 가장 컸어요. 방문해서 몇 시간 만남 동안 앞서 말한 다섯 가지 마음이 차례차례 지나갔죠.
최소연: 두 번째 질문이에요. 우리가 재난의 장소에서 만난 괴물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한 괴물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괴물을 가시화하기 위해 괴물의 색깔과 크기, 환경과 역사를 상상해 봅니다. 괴물이 먹어치운 우리의 권리도 함께 적어주세요.
신현방 : 괴물의 이름은 흡혈귀예요. 숫자는 60억이에요. 우리 모두가 흡혈귀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름 흡혈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환경은 자연에 대한 착취, 인간에 대한 착취,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믿는 환경이 괴물을 만드는 것 같아요. 먹이는 타인이고, 이웃이고, 나 자신의 욕망이죠. 진정한 괴물은 항상 증오로 차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고독, 소외, 절박함 같은 마음이 떠올라요. 자기 스스로 감추려는 마음 혹은 나누지 못하면서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 해요. 흡혈귀 하나하나가 나 자신이고 내 이웃이기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죠. 나와 그 괴물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요. 내가 나 스스로를 보듬어 안는 것처럼 안아야 바뀔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최소연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재난현장에서 괴물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모퉁이 돌이 있습니다. 그 초월적인 정령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신현방 : 정령의 이름은 세월호 아이들이에요. 그것은 학교에서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영국에서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세월호 관련된 집회를 트라팔카 스퀘어 내셔날갤러리 앞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해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사건에서도 깊숙이 넣어뒀던 마음들이 '계속 가만히 안 되겠구나' 하고 이어진 거죠. 단지 학문 쪽으로만 접근했던 마음에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마침 드로잉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 집회를 하던 마음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드로잉을 만난 거죠. 메말라가던 열정이 간신히 숨을 이어가던 때 간절함과 안타까움, 진실함을 만났어요.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세 가지 정도 생각이 드는데요. 첫 번째는 테이크아웃드로잉 같은 경우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기반해서 싸움을 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정체성이 발현되고 모아지면서, 이를 토대로 하나의 무기만이 아닌 여러 무기로 싸움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여러 운동 세력들이 하나의 모델로써 공부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이전까지 예술가운동은 예술가 정체성,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체성, 시민운동은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주된 기반으로 싸움을 해왔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경우 지난 일 년에서 일 년 반 동안, 처음에 가졌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상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상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다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여기에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 합쳐진 거죠. 어느 한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정체성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사회세력과 연대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예술가와 문화 활동가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고, 상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과 같은 상인단체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일반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나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싸우지 않고 여러 정체성을 찾아가고 그런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그런 모습은 정말 중요하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는 '한남포럼'이 대표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다양한 포지션을 지닌 사람들이 공통된 사회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지난 일 년간 보여준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기존 사회운동에 이런 운동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인데요. 여기에는 물론 공간을 지키려고 했던 여러 연대 세력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공통된 사회문제에 대해서 학자와 활동가, 예술가, 일반 시민, 정치인 등이 모여서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고 이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봤던 모습들은 앞으로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앞에서의 노력에 기반을 두어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를 통해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난 것입니다. 갑질의 문제, 부동산의 문제, 투기자본의 문제, 그리고 욕망의 정치로 대변되는 사회문제는 지금까지는 희미해서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상태로 논의가 되어왔다면 다양한 세력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이 조금은 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좀 더 대안을 고민해보고 다음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죠.
종합하면 첫 번째는 다양한 정체성의 발견 및 형성하여 이를 토대로 한 세력과의 연대입니다. 두 번째는 다양한 포지션의 사람들이 공통된 사회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던 것. 마지막 세 번째로 이런 논의를 통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어느 정도 보이게 함으로써 대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과정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투쟁 과정이 아니었나 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아픔이 있었고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8월 31일 12시 이후에는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는 없어지지만, 이를 토대로 이루었던 많은 성과가 앞으로 비슷한 경험에 처해서 어려움을 겪는 주변의 많은 동료, 친구, 가족, 이웃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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