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자로 드로잉은 싸이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자신들이 겪은 일을 '재난'으로 칭했다.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였다. 문제는 이러한 재난이 자신들에게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난 1년여 동안 체화했다는 점이다. 서울 곳곳에서 '건물주-세입자' 간 분쟁이 일어난다.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곳곳이 재난 현장이다.
<프레시안>에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준비한 기획 기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재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일종의 '재난 유산'을 글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여기에는 재난을 직접 겪은 이들부터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인터뷰는 최소연 디렉터가 진행했다.
최소연 : 재난 유산은 '어떤 마음'을 발굴하는 작업장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재난 현장에 대한 '초심'(드로잉)입니다. 그 마음의 이름을 돌멩이 위에 적어주세요.
조윤 : '우장창창'은 나에게 '반복의 마음'이에요. 2014년 3월 처음 아르바이트할 당시 마음의 반복. 최저 시급도 못 받던 5000원 시절의 반복, 그래서 초심의 크기가 5000원이에요. 뭔지 모르겠는데 뺏기는 걸 지켜야 하는 마음, 그래서 '회색의 마음'이기도 해요. 시급 5000원을 받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우장창창'에서 반복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일터에서 느꼈던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우장창창'과 답답하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리쌍이 왜 두 번씩이나 쫓아내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첫 번째는 알겠는데, 두 번째는 정말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어요. '뭔지'는 항상 잘못된 법과 제도인데, 이건 외부적인 이유고 내 마음속의 이유가 연대에서 필요한 거잖아요. 아직은 반복의 경험으로만 남아 있고 이유를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 어느 현장에 가도 비슷해요. 외부적인 요인은 알겠는데, 내 마음에서 정의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첫 아르바이트는 백화점에서 구두를 파는 일이었어요. 3개월 만에 잘렸지요. 그리고 '파리바게뜨' 두 군데에서 일했어요. 잘린 이유는 리쌍이 '우장창창'을 쫓아낸 것과 비슷해요. 딱히 잘못도 없는데, 미움받은 거죠. 잘린 이유가 정확하게 "너 마음에 안 들어"였어요. 백화점에서 일할 때 제가 구두를 되게 잘 팔았어요. 그런데 마음에 안 들었대요. 너무 억울해서 일주일 뒤에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저 왜 자르셨느냐?"고. 그때 사장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래서 시급 5000원 받은 거에 보태서 210원씩 더 달라고 했어요. 3개월간 210원 받지 못한 거 다 달라고 했어요. 최저 시급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는데, 법이란 관련 없이 살아서 최저 시급이 권고 사항인 줄 알았거든요. 시급 5000원이지만 월급으로 받아서 210원 적게 받아도 그냥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리니까 그동안 못 받은 210원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수소문해서 '알바노조'를 만나고, 노동조합 친구들이랑 같이 대응하면서 결국에는 다 받아냈어요. 받아내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어요. 받고 나니까 욕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210원, 진짜 적은 돈인데 이걸 안 받으면 정말 잘 모르겠는데 힘들 것 같았어요.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다른 알바하면 더 버는데…. 1시간에 210원, 이걸 받으려고 찾아가고, 일주일 동안 마음 졸이고.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어요. 혹시 몰라서 준비도 해갔어요. '날 때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녹음기도 준비해 일부러 넓은 공원에서 보자고 했어요.
그 210원을 받고 나니까 오히려 나한테도 욕이 나오는 거예요. '고작 210원 받으려고 마음 고생한 건가?' 싶더라고요. 사장도 제가 지겨운 거죠. 210원 받으려고 맨날 전화하고. 그때 사장이 저한테 돈만 밝힌다고 했어요. 더 억울한 건 210원 주면서 "이제 끝났다"고 했어요. 아직도 화나요. 그때 계기로, 다른 분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 사람도 억울하겠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20년 동안 아무것도 몰랐어요. 뉴스에도 안 나오니까요. 저는 노동자가 1980년대까지만 있는 줄 알았어요. 노동자라는 말이 이상해 보이고, 험한 일 하는 분들 같고. 20년 만에 처음 알았죠. 나도 노동자였구나! 지금은 서울시 은평구에 사는데, 사방이 다 노동자예요.
최소연 : 두 번째 질문이에요. 우리가 재난의 장소에서 만난 '괴물'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한 괴물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괴물을 가시화하기 위해 괴물의 색깔과 크기, 환경과 역사를 상상해 봅니다. 괴물이 먹어치운 우리의 권리도 함께 적어주세요.
조윤 : 괴물은 '두꺼운 창문'이에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서 활동하다 보면, 집회도 하고 1인시위도 하잖아요. 그때마다 봤던 게 창문이었어요. 임대인 집이나 가게를 가더라도 창문 안쪽은 잘 안 보이잖아요. 보통 집을 찾아가는데, 주택이나 아파트는 창문이 엄청 많잖아요? 그 두꺼운 창문이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소리쳐도 잘 안 들리는…. 요새 아파트는 기술이 발달해서 창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안 들리거든요. 왠지 두꺼울 것 같은데 숫자는 하나예요. '우장창창'에서는 리쌍, 아주 막연한 대상은 아니고 딱 한 개예요. 되게 큰 창문인데, 한 개밖에 없는 거예요. 그 한 개만 열면 끝나는 거죠. 괴물의 먹이는 '목소리'예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목소리를 괴물이 흡수하는 것 같아요. 앰프를 쓰거나 확성기를 써도 소리가 안으로 들어가 마치 괴물이 먹어치운 것 같았어요. 색은 '하얀색'이예요. 오래 떠들다 보면, 멍해지고 힘들더라고요. 그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하얀색이에요.
최소연 : 괴물을 처리할 방법은? 해결 가능성을 간략히 구상합니다. 나머지는 재난 유산 상속자들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조윤 : 처음에는 '돌을 던져서 창문을 깨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창문 안쪽에 있는 사람이나 바깥에 있는 사람이 다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바람'으로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장창창'도 강제 집행이라는 돌 대신 바람이라는 대화로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창문도 하나니까 그렇게 커다란 바람도 필요 없어요. 열심히 생각하니까, 괴물이 보이네요.
최소연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재난 현장에서 괴물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모퉁이 돌이 있습니다. 그 초월적인 정령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조윤 : 정령은 '물'이에요. 예전 집행 때 어떻게 보면 괴물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용역이랑 가게를 지키려는 우리랑 물을 나눠 마셨어요. '목마른 것도 똑같고, 힘든 것도 똑같은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나눠 먹은 물이 정령의 전령이 아니었을까 해요. 제가 재난의 현장에서 힘들 때 물을 보러 가요. 바다에 가거나 욕조에 앉아 있거나. 저는 물이 주는 느낌이 좋아요. 바라만 보고 있으면 고요한데, 들어가 있으면 물의 무게감이 느껴져요. 커스터드 크림이 몸에 달라붙은 느낌이 들어요. 재난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정령 같아요. 초록빛이 감도는 푸른색이 떠올라요. 드로잉 괴물 정령과 함께 살려면, 창문도 열고 마음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괴물인데, 또 어찌 보면 괴물이 아니잖아요. 창문만 열리면….
재난유산 상속자_손윤원, 미술가, <화수분>, 120x50x50cm, 화분, 분수펌프, 물, 2016, 촬영 및 편집 정용택 다큐감독
물과 함께 소원을 담는 화분 분수다. '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로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단지를 이른다. 화초에 물을 주고, 방 바닥을 걸레질하는 등 반복적이고 기초적인 일상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순하지만 수행적 태도를 통해 소박하고 평안한 삶에 대한 존중과 그것의 지속가능성을 주목하고자 한다. 상속받은 물과 따뜻함으로 재난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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