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남동에서 '소송 문학'이 탄생했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남동에서 '소송 문학'이 탄생했죠!"

[재난의 유산을 말하다] 정현석 소설가

가수 싸이와 분쟁을 겪은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지난한 과정 끝에 싸이의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자발적인 회복 기간을 가지는 것에 합의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한 합의를 하기까지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강제 집행이 있었다.

지난 8월 31일자로 드로잉은 싸이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자신들이 겪은 일을 '재난'으로 칭했다.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였다. 문제는 이러한 재난이 자신들에게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난 1년여 동안 체화했다는 점이다. 서울 곳곳에서 '건물주-세입자' 간 분쟁이 일어난다.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곳곳이 재난 현장이다.

<프레시안>에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준비한 기획 기고를 게재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재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일종의 '재난 유산'을 글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여기에는 재난을 직접 겪은 이들부터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인터뷰는 최소연 디렉터가 진행했다.

▲ '소송 문학 낭독회'를 하는 정현석 작가. @달여리

최소연 : 재난 유산은 어떤 마음을 발굴하는 작업장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재난 현장에 대한 초심(드로잉)입니다. 그 마음의 이름을 돌멩이 위에 적어주세요.

정현석 : 연대의 초심은 창작욕이에요. 무엇보다 지키고 싶었던 건 이야기입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를 접하고 연대를 결심한 순간까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것은 본디 공간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태가 진행되어 왔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 이야기 모두가 제가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에요. 이 사태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진행되기도 했고, 지역을 연구하는 문화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공간의 이야기를 지키고 싶었어요. 동시에 이곳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쳤어요. 초심이 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거죠.

이 공간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이나 왜곡된 것으로 보이는 보도를 걸러들을 수 있었던 건 오히려 그래 보였기 때문이에요. 그 의도가 너무 잘 보여버린 거예요. 어느 연예 매체가 쓴 기사를 봤을 때는 이건 기사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것만 봐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공간이 악의적인 비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다 읽혔어요. 특히나 그 기사가 말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심이 담겨 있었어요. 기자의 일기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거기에 달린 댓글마저 원색적인 비난이 주류여서 합당한 근거로 비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마땅히 의심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죠. 이전부터 쫓겨나는 임차상인의 문제가 도시의 문제고, 도시의 문제는 곧 내 문제라고 느끼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는 지키고 싶은 마음이 창작욕까지 자극한 것 같아요. 이것만은 소설로 쓰겠다는 마음, 그것이 연대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8개월간 살듯이 체류하면서 <습작의 무덤>이라는 제목의 르포 소설을 구상하다 <안쿠>라는 소설을 먼저 연재하고 있어요. <습작의 무덤>은 실제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를 다루지만, <안쿠>는 오히려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두 소설을 연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작품을 통해 묻고자 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예요. <안쿠>는 연재 소설인 만큼 소설과 현장을 지속적으로 연결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신촌의 헌책방 '공씨책방'에 연대하는 만큼 공씨책방 창업주이신 고 공진석 선생님을 모티브로 등장인물을 만들었어요. 이런 시도를 계속해보려고요. 수많은 현장에서 다방면의 예술가를 만나면서 문학으로, 소설로 연대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최소연 : 두 번째 질문이에요. 우리가 재난의 장소에서 만난 괴물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한 괴물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괴물을 가시화하기 위해 괴물의 색깔과 크기, 환경과 역사를 상상해 봅니다. 괴물이 먹어치운 우리의 권리도 함께 적어주세요.

정현석 :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연대하며 만난 괴물은 염려입니다. 크기는 한 계절의 밤낮이에요. 지난 겨우내 염려가 떠난 적이 없었거든요. 위태롭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무너지는 도시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아현포차'와 신사동 '우장창창', 북촌 '장남주우리옷'과 '씨앗',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경험을 적은 르포를 <한겨레21>에 기고한 적이 있어요.

아현포차 세 분 이모님은 포차 앞에서 돗자리를 펼쳐놓고 쪽잠을 자고, 낯선 사람이 모여 있으면 용역이 아닐까 의심했어요.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님은 인적 드문 새벽녘에 이뤄지곤 하는 강제 집행을 막으려고 주차장에 평상을 깔고 그 위에서 밤을 지샜죠. 장남주우리옷과 씨앗도 마찬가지예요. 테이크아웃드로잉도 지킴이들이 새벽마다 동네 순찰을 돌았어요. 용역을 미리 발견해야 조금이라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모든 현장을 관통하는 마음이 염려예요. 괴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현장에서 출몰하는 거죠. 염려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떠올라요. 염려로 잃어버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웃음이에요. 그 자리를 침묵이 차지하죠. 웃음이 많은 권리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영업권일 수도 있고, 생존권일 수도 있고, 헌법이 말하는 행복추구권일 수도 있죠. 괴물이 우리의 권리를 앗아가는 건 분명하네요.

최소연 : 괴물을 처리할 방법은? 해결 가능성을 간략히 구상합니다. 나머지는 재난 유산 상속자들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정현석 : 염려는 매장해야 마땅하죠.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서 염려를 묻는다. 사태가 끝난 후라 굉장히 중의적인 문장이 되네요.

▲ <정현석 #괴물-염려>(종이 위에 드로잉, 2016년). @김을
최소연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재난 현장에서 괴물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모퉁이 돌이 있습니다. 그 초월적인 정령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정현석 : 정령은 소송 문학이에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구체적으로 목격한 정령이에요. 싸이 측 변호사가 보낸 소장에서 탄생한 셈이죠. 소위 소설을 쓴다고 말할 만큼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어요. 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라 소장을 읽는 데 마치 어느 습작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워낙 소장 같지 않기는 했어요. 그래서 이걸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변호사의 습작이라 보고 낭독회 겸 합평회를 열기로 했어요. 그때 장르의 이름 짓기를 '소송 문학'이라고 했죠. 변호사에게 억울하게 고발당한 신제현 작가님과 함께 사다리 위에 올라 소장을 낭독했어요. 소장을 읽는 내내 아래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재난 당사자에게 골칫덩어리였을 소장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순간이 너무 즐거웠어요.

낭독회가 끝나고 나서는 오히려 다음 소장을 기다렸어요. 싸이 측 변호사가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소송을 남발하곤 하니까 저까지 소송당하는 걸 기대했는데, 지난 2월 <피디수첩>이 방영되고 나서 사임서를 제출했더라고요. 그때는 되려 '소송 문학'의 명맥이 이렇게 끊기나,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정령이 다시 웃음을 가져다준 거죠. 다시 웃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이긴 거예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소연

테이크아웃드로잉 디렉터, 현대미술가. 재난연구소 연구원, 대표작으로 <접는미술관> <명륜동에서 찾다>,<파국이후의 삶>, <어제의 행성>, <재난유산 워크숍>등이 있다. 최근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를 담은 『한남포럼』, 난민 관련 『난센여권』,『Drawing vol.1:세상을 바꾸는 드로잉』이 저서로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