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올해 말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 회담 개최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양국의 상반된 모습이 대조적이다. 정상 회담 개최에 매우 적극적인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중국의 기싸움이 치열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상반된 모습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참가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적극 환영!"이라는 일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등 우리 사회 전국 각지에서 제6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국민들이 뿜어대는 '피플 파워(People Power)'의 성숙한 모습은 중국과 일본에도 여지없이 전달됐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는 CCTV를 비롯한 중국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장엄한 역사적 현장을 시시각각 주요 뉴스로 편성하여 자세히 전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NHK를 비롯한 일의 매체도 다를 바 없었다.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들어선 일본 식당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빚어낸 위대한 장면이 일본의 위성 방송을 통해 주요 뉴스로 등장, 식당에 있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위용을 접하는 중-일 양국 사람들의 반응은 약간 결이 달랐다. "한국의 대통령은 빨리 내려와야 한다. 더욱이 국가를 생각하여 국가와 결혼했다고 한 사람이라면 그 국가에 대해 염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한국은 박 대통령 자신으로 인해 더 힘들어 지게 될 것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국가의 최대 장애물이 되다니"라는 중국인들의 반응 속에서는 왠지 모를 '깨소금 맛을 즐기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중국이 반대해 온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와 한일 군사 비밀 정보 보호 협정(GSOMIA) 체결을 강행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개입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무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이 이 위기를 빨리 극복해야 할 텐데", "한국 국민은 저력이 있으므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는 등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한 그 모습 속에서는 왠지 모를 '느긋하게 즐기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베 정권과 박근혜 정권 집권 이후 강경 모드를 견지해 온 한일 양국의 대립 전선이 아베의 일본 쪽으로 기울며 지니게 된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런데 우리가 겪고 있는 전례 없는 치욕을 바라보는 중-일 양국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은 곧 한-중-일 정상 회담을 대하는 중일 양국의 기본 자세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중국은 이번 한-중-일 정상 회담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지니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굳이 하고 싶지 않지만, 해도 나쁘지 만은 않다"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현 시점의 중국으로서는, 한중 및 중-일 관계를 통해 딱히 얻을 만한 것이 없다.
집권 이후, 국제 정치 및 역사 분야 등에서 '폭주'해 온 아베 정권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은 경제 제재 조치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반격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국내외적으로 체면만 잔뜩 구기고 말았다. 이와 같은 절치부심의 상황 속에서 시 주석은 미소 짓는 아베 수상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면, 시 주석의 계산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국내적으로 최대의 곤경 속에 놓여 있는 박 대통령은 그 위기 타개책으로 중국에 대해 '저자세'로 나오며 '외교적 성과'를 도모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은, 올 연말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 회담에 대해 참가 여부를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참가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 국면을 중국의 국익 증진을 위한 기회 국면으로 삼을 수 있어 참가하는 것이 나쁘지 만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은 "한-중-일 정상 회담을 학수고대한다!"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일본은 아베 정권의 붕괴까지 시야에 두고 전개된 중국의 파상 공세를 큰 어려움 없이 버텨냈다. 그리고 한동안의 소강 국면을 거치며 이제는 중국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으로서는 중국이 한-중-일 정상 회담에 참가해도, 참가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 단지 정상 회담을 개최하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연출해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내외적으로 승자의 여유를 과시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에게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는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호기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은 국내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써, 박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도 집권 이후 견지해 온 대일 강경책을 수정하는 등 저자세로 나오며 외교적 성과를 도모하고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올 연말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 회담이야 말로 동북아 역내에서 자국의 위상을 한층 강화시킬 호기로 여기며 회담의 성사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사실, 한-중-일 정상 회담이라는 프레임 그 자체는 동북아 역내에서 우리의 역량을 증진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틀이 아닐 수 없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중일 양국 사이에서 그들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의 공동 이익 추구를 위한 주도적 역할 등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은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유용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우리의 외교적 위상과 역량을 드높이는 장이 되기는커녕, 중-일 양국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님,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환대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의 국익 챙기기에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미국, 중국으로 이어져온 20여 년 동안의 해외 생활 속에서 우리 조국이 지금처럼 커다란 아픔 속에 놓인 적은 없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겠다!"며 국가와 결혼했다던 그 한 사람으로 인해 현재 우리의 태극기는 전례 없이 축 처지게 되었고 애국가 또한 전례 없이 구성지게 흐느끼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초래한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 회담에 참가하고자 한다고 한다. 얼마나 더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얼마나 더 국제적인 놀림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더 대한민국을 추락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박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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