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와 분쟁을 겪은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지난한 과정 끝에 싸이의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자발적인 회복 기간을 가지는 것에 합의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한 합의를 하기까지 1년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강제집행이 있었다.
지난 8월 31일자로 드로잉은 싸이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자신들이 겪은 일을 '재난'으로 칭했다.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였다. 문제는 이러한 재난이 자신들에게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난 1년여 동안 체화했다는 점이다. 서울 곳곳에서 '건물주-세입자' 간 분쟁이 일어난다.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곳곳이 재난현장이다.
<프레시안>에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준비한 기획기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재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일종의 '재난유산'을 글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여기에는 재난을 직접 겪은 이들부터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인터뷰는 최소연 디렉터가 진행했다.
최소연 : 재난유산은 어떤 마음을 발굴하는 작업장입니다.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재난현장에 대한 첫인상입니다. 그 마음의 이름을 돌멩이 위에 적어주세요.
조한혜정 : "난리 났구나"였어요. 처음에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계속 메일이 오는데 보기가 싫더라고요. 너무 일이 많고 곳곳에서 재난이니까 그걸 다 쫓아다니다간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거죠. 여기는 안 간다고 젖혀놨는데 지인이 "선생님, 거기는 한 번 가셔야죠"라면서 난센여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남포럼 때 갔죠. 가니까 막 부서져 있고 용역이 못 들어오게 쇠파이프 박아놓았더라고요. "진짜 난리다" 하고 2층에 올라갔더니 노래를 하고 있는 거예요. '두리반이 옮겨 왔구나', '이 게임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두리반은 내부에서 이긴 게임이거든요. 여기는 힘들어하는 것이 보이면서도 표정이나 사회 보는 것을 보면 두리반 생각이 났어요. 곳곳에 난리지만 이 현장은 재난 유토피아 현장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두리반이 연결되고 세 명의 여자(드로잉 운영진)가 있는 것을 보니 '여긴 잘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히 여성, 남성 생각은 안 하는데 아마도 여성이라는 부분이 있겠죠. 세 명의 여성이라는 게 있었겠죠. 사회를 보는 데 경황이 없지만, 정신이 없지만 견딜 거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여러 가지로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진 것이고, 요새는 모든 것이 재난이잖아요. 정말 재난 상황이라는 걸 사람들이 직시하기 때문에 유토피아가 생기는 거죠. 서로가 약함을 보고 자기가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달려간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나오니까 거기가 가장 힘든 자리면서 가장 유토피아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게 있어서 제가 날마다 간 거잖아요. 제가 손자를 데리고 날마다 가면서 나름 온갖 것을 물어보고 취조를 한 거죠. 이게 싸이면 오히려 또 해법도 있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사람은 그저 악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만드는 존재니까요.
싸이도 굉장히 불안해서 도망 다니면서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한 걸 거예요. 그렇게 나쁜 것인 줄 모르고 했을 가능성이 높고, 마침 만나려고 시도를 한다고 해서 만나면 해법이 있을 것 같아서 칼럼을 쓴 거예요. 최소연과 싸이는 같은 사람이다. 환경도 사실 그리 다르지 않고 사실은 같은 사람이라는 의도로 썼어요. 너희들은 같은 사람이야. 모두 훌륭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동시대에 사는데 이 정도를 못 푸느냐는 거죠.
"이 두 예술가가 지금 만나고 있다. 싸이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건물주가 된 것이다. 애초부터 문화와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임대차법과 젠트리피케이션(지역의 대지주화, 부동산 투기의 한 방식) 광풍에 휘말려 둘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용산 참사 이후 폭력적 철거는 금지되었건만 이곳에는 이미 여러 차례 용역들이 다녀갔다. '난센여권'(무국적자들에게 발급하는 국제 여행증명서)을 주제로 이주자의 삶을 작품으로 다루었던 기획자들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었다. 예술가란 태생적으로 난민이 되기로 한 것이 아니겠냐며 그녀는 담담했다. 단골가게가 사라지면 함께 일군 삶의 향기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죽치게 되면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예술가 레지던시 장소가 되었다. 매일 밤 기발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재난 연구소가 차려졌으며,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비자발적 이주’ 관련 법제화 포럼이 열렸다. '재난 유토피아', 그렇다. 한남동 카페는 지금 소통과 호혜, 기억과 예술이 살아나는 창조적 공유지대가 되고 있다." ([조한혜정 칼럼]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수난 / <한겨레> 2016.3.15.)
최소연: 두 번째 질문이에요. 우리가 재난의 장소에서 만난 괴물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한 괴물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조한혜정 : 싸이의 불안이에요. 모든 법이 돈을 많이 버는 쪽을 편드는 법으로 바뀌었잖아요. 이 법을 바꿔야 하고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돈 버는 사람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해버리면 바뀔 여지가 없잖아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게 가면 되는구나'하는 케이스가 몇 개 나와 주면 좋은 케이스대로 가자고 말할 수 있잖아요.
싸이를 국회로 보내고, 싸이법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대부분 괴물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떤 불안이 있는 거죠. 싸이도 그렇고요.
싸이 연구자도 아닌데, 어느 세미나에서 싸이에 대한 책을 봤어요. 초기에 싸이는 자기가 자란 환경과 강남에 대해 비판적인 노래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싸이에게 당신은 그런 스팩트럼을 가진 사람이고, 당신과 당신 딸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칼럼으로 이야기한 거죠.
"싸이가 이 건물을 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위선과 가식을 떨쳐버리자고 말하기 시작한 세대가 아닌가? 예술의 씨를 말리면 사회도 사라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세대이다. 자녀 세대를 위해서 이제 그 세대가 나서야 할 때이다.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회사 지분 99%를 기부한 저커버그를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새 건물을 짓기 전까지 이 동네 미술관을 지켜봐주면 어떨까? 그래서 급격하게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선진국형 임대 사례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사람이 쓸모없어질 세상이 오고 있다." ([조한혜정 칼럼]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수난 / <한겨레> 2016.3.15.)
글은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쓰지 허공에는 쓰지 않아요. 싸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돈을 벌고 있고, 지금 세상 자체가 완전히 돈이 돈을 버는 세상으로 왔잖아요. 이 기회를 놓치면 적어도 1%에 들어야 하는데 10%로 떨어지면 영영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불안이 거기 있는 거예요. 환경을 방 안이라고 한 것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해결할 수 있는데, 자기 방 안에만 갇혀 있으니까 불안이 방 안에 가득 차는 거죠. 불안이라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있고 전염이 되는 것이라서 집어넣는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나눠서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돼요.
최소연 : 괴물을 처리할 방법은? 해결 가능성을 간략히 구상합니다. 나머지는 재난유산 상속자들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조한혜정 : 나눠서 흩어지게 해야죠. 수장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최소연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재난현장에서 괴물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모퉁이 돌이 있습니다. 그 초월적인 정령의 마음을 돌멩이에 적어주세요.
조한혜정 : 기도가 아닐까요. 나는 가끔 사람들이 남을 좀 더 믿어도 되는데 너무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에 비해서 그렇지 않은 편이에요. 그게 어디서 왔느냐 생각해보면 나는 기도하고 환대하는 사람들과 어릴 때부터 함께해서 그런 것 같아요. 기도하는 사람들, 누구를 돌보는 사람들이 다 정령이죠. 예를 들면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일제 때부터 고아를 돌봤어요. 엄마도 의사가 돼서 무의촌에 들어가서 살겠다든가, 그런 식으로 일본에 저항하면서 다른 삶의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우리에게도 항상 세속적인 질서가 다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질서가 있고, 보다 정의로운 질서가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그게 안 될 때는 다들 모여서 기도들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나는 정령들과 살고 선물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선물을 받은 적이 없어서 선물을 안 주는 것인가', '그리고 정령들과 살지를 알아서 저렇게 불안한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하는 거죠. 기도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있는 곳에 있는 거죠. 삶이라는 것은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고 그런 데서 다 같이 기도하고 다 같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되는 거예요. 타인의 불행을 함께 느끼는 공동지심.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굉장히 많이 생각하는 것인데, 인간이 그런 의존적인 존재로 근 3년은 누가 돌봐야 하는 무력한 존재고 누군가 돌보면서 공감이 생기거든요. 내가 살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도 모두 잘 살아야 하잖아요. 마치 엄마가 아파하면 아기도 울듯이.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호모 사피언스인 것이고, 그게 없어지게 된 사회면 더 이상 인간을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겠죠. 사피언스라는 책이 나오는 것도 '인간이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기도가 핑크일 수는 없는데 따뜻한 색깔을 얻는다면 블루일 거예요.
어제 읽은 책 중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까닭은 타인의 불행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이타니 겐지로, <내가 만난 아이들>)라는 문장이 떠올라요. 제가 드로잉에 갔으니까 칼럼을 썼지, 현장이 없으면 못 쓰는 거였어요. 재난유산으로는 당연히 기도가 가야하는 거죠. 불안을 주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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