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일주일 후면 미국 대선일이다. 여론조사대로라면 '힐러리 클린턴의 시대'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날, 클린턴은 건물 외벽이 모두 유리로 된 뉴욕 재비츠 센터 건물에서 대선 승리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의 승리가 여성을 억압한 '유리 천장'을 깨뜨린 의미라는 걸 보여주려는 상징적 세리모니다.
그래도 힐러리의 대관식을 마냥 기쁘게만 지켜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가 추진했고, 추진하려는 대외 정책은 네오콘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판세가 힐러리 쪽으로 기울면서 그의 호전적인 매파 본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나온다. 영미권 주류 언론에선 별로 소개되지 않는 우려다. 다음은 호주의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존 필저가 최근 자신의 웹사이트에 게재한 칼럼의 요약이다.
필저는 이 글에서 전쟁의 선전도구가 된 서방 언론들이 이라크와 시리아 사태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으며, 미국의 세계전략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왜 클린턴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준다.
필저에 따르면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위험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리버럴 미디어도 가장 위험한 대통령을 만든 조력자로 기록될 것이다. (☞원문 보기 : Inside the Invisible Government: War, Propaganda, Clinton & Trump)
'보이지 않는 정부'의 내면 : 전쟁, PR, 클린턴과 트럼프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현대 PR(propaganda, 선전)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조카인 그는 속임수와 기만을 "홍보(Public realation)"라는 개념으로 순치한 사람이다.
1929년 그는 (여성 흡연율을 높여 담배회사에 수익을 안길 목적으로) 여성운동가들이 뉴욕의 부활절 행사 때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활보하도록 부추겼다. 여성운동가인 루스 부스는 "여성들이여, 또 다른 자유의 횃불을 들어라! 또 다른 성적 금기에 맞서 싸워라!"라고 선언했다.
버네이스의 영향력은 광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가장 놀라운 성공은 미국 여론을 1차 세계대전 참전에 동조하도록 만든 것이다. 버네이스는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자기들의 통제와 지휘에 동조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진짜 통치 권력"이며 "보이지 않는 정부"라고 했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고 실체를 알아채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처럼 우리를 착각에 빠뜨리는 PR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제어되지도 않은 적은 없었다.
두개의 도시를 가정해보자. 두 도시 모두 참수형과 같은 잔혹 행위를 서슴지 않는 광신도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두 도시 모두 그 나라 정부군에 포위돼 있다.
하지만 두 도시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첫 번째 도시는 서방의 종군기자들이 열정적으로 전황을 보도하며 정부군을 해방군으로 묘사한다. 이 영웅적인 군인들이 승리의 'V'를 그리는 사진이 1면에 배치된다. 반면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두 번째 도시 역시 광신도들이 장악한 도시를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지만, '우리', 즉 미국과 영국은 이 광신도들을 지지하고 무력을 지원한다. 그들은 미국과 영국이 후원하는 미디어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도시와 달리 정부군은 학살과 폭격을 자행하는 나쁜 세력으로 비난받는다.
헛갈릴 것 없다. 이는 PR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중 잣대다. 첫 번째 도시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 하에 이라크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는 모술이며, 두 번째 도시는 러시아의 지원 하에 시리아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는 알레포다. 모술의 상황은 선하고 알레포 상황은 악한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광신도들이 장악한 두 도시가 전쟁으로 붕괴되었다는 점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만약 미국과 영국이 지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두 두시는 온전했을 것이다. 범죄 기업들은 우리가 시리아 내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PR과 같은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
뉴스가 확대재생산하는 PR이 없었다면 극악무도한 IS나 알카에다, 알누스라, 지하디스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시리아 국민들은 현재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야 '세기의 범죄'로 드러났지만, 2003년 BBC가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이라크전 참전 결정을 정당하다고 보도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똑같은 정당성을 부여했다.
언론이 직분에 충실했다면, 다시 말해 전쟁을 증폭시키는 대신 이에 항거하고 탐사 보도했다면, 수많은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은 지금도 살아있을 것이다. IS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알레포와 모술이 포위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005년 7월 7일 런던 지하철 테러도 없었을 것이며, 수백만 명의 난민들도, 끔찍한 난민 캠프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가 발생하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시리아에 전폭기를 출격시켜 더 많은 테러를 야기했다. 국가 폭력과 지하디스트들의 폭력이 서로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점은 그 어떤 나라의 지도자도 용기 있게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인 예브게니 옙투센코는 "진실이 침묵에 가려질 때, 그 침묵은 거짓"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 침공, 리비아 침공, 시리아 침공은 이 나라 지도자들이 서방의 꼭두각시이기를 거부할 때 벌어졌다. 이들 나라에 대한 침공은 사담 후세인이나 무아마르 카다피의 인권 유린과는 무관했다. 단지 그들이 외압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도 서방의 점유와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거부했을 때 똑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르비아 국민들은 폭탄 세례를 받았고 밀로셰비치는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 서방은 그런 식의 독립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09년 카타르에서 시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석유 파이프라인 사업을 거부한 직후 공격받았다. CIA는 그때부터 지하디스트 광신도들과 함께 시리아 정부를 붕괴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 광신도들이 지금 모술과 알레포 동부에서 민간인들을 억류하고 있다.
이런 건 왜 뉴스가 아닌가? 이라크 제재에 책임이 있는 영국의 전직 외교 관료 카르네 로스는 내게 "우리는 기자들에게 흥밋거리 허위 정보를 주거나 배척했다. 그것이 운영 방식이었다"고 고백했다.
미국과 영국이 수십억 달러의 무기를 팔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어린이들 절반이 영양실조일 정도로 가난한 나라 예멘을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가 예멘의 가난한 마을과 결혼식장, 장례식장에 퍼붓고 있는 가공할만한 폭탄(그건 '우리'의 폭탄이다) 공격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사우디 조종사들은 영국 관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 이런 사실들은 저녁 뉴스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PR은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해 BBC,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뉴스에 우리가 동조할 때 가장 영향력 있다.
이 매체들은 리버럴 미디어로 알려져 있다. 깨어있고 도덕적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진보적 매체라고 스스로 표방한다. 이 매체들은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페미니즘 친화적이며,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 매체들은 전쟁을 사랑한다.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이 매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탐욕스러운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2011년 리비아는 카다피가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하려고 한다는 구실로 붕괴됐다. 뉴스가 쏟아졌지만 그 증거는 없었다. 영국과 유럽나라들, 미국이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리비아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원했다. 카다피의 지역적 영향력과 서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다피는 결국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뒷배를 봐주는 광신도들에게 살해됐다. 그의 섬뜩한 죽음을 전해들은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왔노라, 보았노라, 죽었노라"며 환호했다.
리비아의 붕괴는 미디어의 승리였다. 전쟁의 북소리가 울리자, 조나단 프리드랜드는 가디언에 "매우 위험한 게 사실이지만 '개입' 요구도 많다"고 했다. 점잖고 유순한 가디언식 언어인 '개입'의 진짜 의미는 리비아의 죽음과 파괴였다.
나토의 자체 기록에 따르면, 리비아에 무려 9700번의 공습이 진행됐다. 그중 3분의 1은 민간인들을 타깃으로 한 공습이었다. 우라늄을 탄두에 장착한 미사일도 사용됐다. 유니세프는 죽은 아이들 대부분이 10살 미만이었다고 기록했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카다피의 고향이자 사망한 곳인) 시르테는 IS의 수도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미디어의 승리였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BBC, NBC, CBS, CNN 등 존경스러운 리버럴 매체들은 독자들과 시청자들이 이 위험한 신냉전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시아의 그릇된 행동 탓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사실상 독일, 나토와 함께 미국이 2014년 기획한 쿠데타가 원인이었다.
이 본말전도가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과거 냉전 시절과 마찬가지로, 왜곡되고 위압적인 언론 캠페인 때문에 진실은 억눌렸다. 러시아는 또 다른 스탈린이 이끄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으며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를 악마로 묘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억눌린 진실은 뉴스 기능의 정지 사태라고 할만하다. 서방 미디어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외부인, 혹은 러시아 기관원이라고 몰아세우며 우크라이나인들 대부분이 연방제를 희망하며 외국이 기획한 쿠데타에 반대한 점은 알리지 않았다.
현재 워싱턴포스트가 선도하는 러시아를 향한 전쟁의 북소리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던 거짓말과 유사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 대선 캠페인은 도널드 트럼프를 최고의 악당으로 삼은 미디어가 벌이는 기괴한 쇼다.
트럼프는 불쾌한 행동과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혐오스러운 인물이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정부'에게 예측불가능한 트럼프는 미국의 지배력 유지와 러시아와 중국을 굴복시키려는 미국의 21세기 전략에 장애물이다.
미국의 호전파들에게 트럼프가 진짜 문제아가 된 순간은 그가 러시아와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때다. 그는 푸틴과 대화할 것이고 싸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과도 대화를 원한다고 했다.
1차 토론에서 트럼프는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나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핵을 선택하면 끝장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말 그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는 자기 모순적인 말들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건 상관없이 분명한 점은, 트럼프는 미국을 움직이는 방대한 국가안보체계의 현상 유지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CIA는 트럼프가 패하기를 바란다. 국방부도 트럼프의 패배를 바란다. 미디어들도 트럼프의 패배를 바란다. 심지어 그가 속한 공화당도 트럼프가 패하기를 바란다. 그는 세계의 지배자들에게 위협이다.
트럼프와 달리 클린턴은 핵무장한 러시아나 중국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클린턴이 종종 자랑스럽게 말하는 과거 경력이 이를 입증한다.
상원의원 시절 클린턴은 이라크를 피바다로 만드는 계획을 지지했다. 2008년 오바마와 맞붙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엔 이란을 "(지도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국무장관 시절에 클린턴은 리비아와 온두라스 정부의 붕괴를 추진했으며 중국을 자극하는 정책을 폈다.
클린턴은 현재는 시리아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지지한다. 이는 러시아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접적인 도발이다. 클린턴은 내가 경험한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위험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어떤 증거도 없이 클린턴은 러시아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자기 이메일을 해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그 이메일들은 클린턴이 공식적으로 말한 것과 달리 사적으로는 부자와 권력자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는 점을 드러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패권이 벌이는 가장 엄청난 일이 현재 러시아 접경 지역인 코카서스와 동유럽에서, 중국을 타깃으로 한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다.
11월 8일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명심해야 한다. 만약 클린턴이 이긴다면 무분별한 논평가들은 여성을 위한 위대한 진전이라며 클린턴의 대관식을 찬양할 것이다. 아무도 클린턴이 저지른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 여성들의 희생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러시아를 향해 수행되고 있는 군사 작전을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조작한 '자유의 횃불'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조지 부시의 언론 대변인은 미디어를 "사악한 일의 조력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역사는 정부 관료들의 거짓말이 미디어의 도움으로 가능해졌음을 경고한다.
1946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범재판소는 독일 미디어를 이렇게 지적했다. "중요한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그들은 공격이 빚을 희생을 생각하지 않도록, 독일 국민들이 침공을 정신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언론 캠페인에 착수했다. 신문과 라디오의 PR 시스템,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번역=임경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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