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 정확히 1년이 지났다. 청와대로서는 '잔칫날'이지만, 이 대통령은 특별한 외부일정 없이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한나라당이 대선 1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경제살리기 국민 한마음 희망대회'에 이 대통령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지난 선기간 유명세를 탄 '욕쟁이 할머니'를 비록한 각계 국민대표들과 주요 당직자들이 대거 첨석한다.
어린쥐, 강부자, 광우병, 대운하…
대선승리 1주년을 맞아서도 큰 잔치를 벌이기 민망한 이 풍경은 이 대통령의 마음이 편치는 않음을 보여준다. 이경숙 전 인수위원장의 '어린쥐' 파문으로 대표되는 영어 몰입교육 논란, '고소영'-'강부자' 등 인사파문,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 파동' 등 끝없는 부침 속에 한 해를 그대로 흘려보낸 셈이기 때문이다.
▲ 지난 해 12울19일 오전, 한나라당사를 찾은 당시 이명박 후보가 승리를 예감한 듯 파안대소하고 있다. 그리고 1년. 한때 90%에 육박했던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뉴시스 |
"전봇대 두 개 뽑은 것 말고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이 뭐냐"는 세간의 비아냥도 적지 않다. 평생 '월화수목금금금' 일만 해 온 'CEO'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할 만도 하겠다.
지난 8.15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건국 이데올로기' 전파를 통한 국면의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밀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에 '경제 대통령'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져 버렸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로 정권의 '무전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남북관계도 10년 전의 상황으로 여지없이 후퇴해 버렸다.
대선과정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싹쓸이했던 '실용'의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로 '이념논란'은 한국사회 전반을 뒤덮어가고 있다. 교과서 논란의 '좌파 딱지붙이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모두 교육현장에서 내몰린 채 다시 '촛불'을 들고 있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합리적인 보수가 설 자리가 없다"는 푸념이 적지 않을 정도다.
KBS와 YTN 등 언론사에는 캠프 특보출신 등 'MB맨'들이 대거 투입됐고,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들이 속속 폐지됐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코드-낙하산-회전문' 인사를 통렬히 비판했던 여권 인사들은 "코드인사가 왜 나쁘냐"며 말을 바꾸고 있다.
촛불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이 대통령 스스로 접겠다고 했던 '대운하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로 흉흉해진 지방민심을 이 대통령은 '전국의 공사판화'를 통해 달래려는 듯 보인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다"라는 청와대의 반복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사실상 대운하 1단계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신발끈 고쳐매는 靑 "내년에는 오로지 '전진'뿐"
내우외환과 집권세력의 실책이 끊이지 않으며 1년을 허비한 셈이다. 청와대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뭔가 일을 해보려고만 하면 비등하게 제기된 '반대론'과 '외부적 악재'에 발목을 잡혀 왔다는 푸념이다. '반성'과 '쇄신' 보다는 익숙한 '남탓'을 앞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선거 용어로 성공을 거둔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집권세력의 실책을 면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충돌을 빚는 일이 잦아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는 집권 2년차를 '전투모드'로 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내년 한 해에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는 속내다. 실제 청와대 내에선 "내년밖에 일할 기회가 없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직사회 물갈이→청와대 조직개편→개각으로 이어지는 3단계 전열정비를 통해 청와대가 '경제 살리기'의 전제조건으로 내 세우고 있는 규제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과학기술부 1급 공무원의 일괄사표 제출과 함께 시동을 걸고 있는 '공직사회 길들이기'는 이를 위한 사전작업이다. '실적'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 교육과학기술부 1급 공무원들은 일괄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이주호 전 수석의 교육부 차관 기용설도 끊이지 않는다.
개각과 청와대 조직개편을 통해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신재민 문화부 제2차관 등이 '컴백'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재오-이방호 전 의원 등 친위그룹의 '컴백설'도 비등하다. 대통령의 의중과 업무추진 스타일을 꿰뚫고 있는 측근들을 전진 배치시켜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의 '군기'를 잡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이 대통령은 18일 시작된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아직도 자세를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며 전 부처에 걸친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했다.
'위기 앞의 단결'이라는 익숙한 구호가 반복된다. 군사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행군을 할 때 여기서 멈칫하고, 저기서 기웃거리면 속도감도 떨어지고 전체 대열의 속도가 늦춰진다"며 일선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위험한 '전봇대의 추억', 성공할까?
요컨대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였던 '전봇대 뽑기식 국정운영'을 구현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 통외통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일방적으로 상정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모든 관련법령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반대론'도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여권 전체를 휘감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중심은 청와대다. 과연 이 대통령의 내년은 올해와 다를까. 비판 수렴에 인색하고 '1% 이익'을 위한 정책 구사에 레일을 깔아 놓은 1년차의 연장선에서 2년차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이 많다. 더 큰 걱정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여전하고 취약한 국내 경제 시스템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는 마당에,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질주해 나가는 집권세력의 '질풍노도'다.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문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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