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지난 9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고 말한 지 석 달 만의 일이다.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이 발언은 이동관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보도됐다.
구체적인 펀드명과 가입조건 등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측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일반 직장인이 투자하는 정도의 액수'를 적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이 자신의 월급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에 써온 사실도 공개됐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월급을 계속 내놓겠다"고 했었다. 1400만 원 수준인 대통령의 월급은 매달 결식아동, 소년소녀 가장, 탈북자와 독거노인 거주시설 등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액은 9개월 간 총 1억2000만 원에 이른다.
▲ ⓒ청와대 |
허물어진 '신뢰'…약속 지켜도 여론은 '도끼눈'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 평가받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쇼하지 말라"는 비아냥도 없지 않다. 왜일까.
'약속'과 '신뢰'를 키워드로 생각해 보면, 이 대통령의 몇가지 소소한 '선행'이 숱하게 무너진 큰 덩어리의 약속을 포장하기엔 너무도 얇아보여서다.
우선 이 대통령의 펀드가입과 월급 기부 얘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건 공교롭게 영화배우 성룡의 재산 기부 선언의 여파로 '이명박 대통령은?'이라는 눈총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지난해 온 세상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했던 이 대통령의 '재산헌납' 약속은 1년 째 "여론수렴중"이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청와대 측은 "재산헌납 방침은 변함없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입장만을 거듭 밝히고 있을 뿐이다. 한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 청원란에 "이명박 대통령 각하, 약속 좀 지키시지요"라면서 재산헌납 이행을 촉구했고, 해당 게시물에는 수만 명의 네티즌이 서명을 남기기도 했다.
공적인 차원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성적표는 더 처참하다. 대운하 논란이 단적인 예다.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4대강 정비사업' 강행과 함께 "이름만 바뀐 대운하"로 사실상 부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국회 개원연설에서 "지방의 발전이 경제 살리기의 근간"이라고 공언했지만 '지방발전이 우선'이라는 이같은 약속은 대대적인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경기도 마석 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의 '타운미팅'을 갖고 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지금 내가 사면을 해줄 권한은 없지만 권한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두 팔로 하트를 그려보이며 기념사진도 남겼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대신 대통령의 '인도적 차원의 약속'은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으로 되돌아왔다. 대통령이 직접 타운미팅을 마련했던 마석 가구공단에는 지난 11월 경찰 1대 중대와 법무부 출입국 단속반 280여 명이 투입됐다. 법무부는 연말까지 2만 명의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추방한다는 '목표'까지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님아들 펀드', '고대후배 펀드' 루머가 왜 나올까
펀드 가입, 월급 기부 등 좋은 일을 하고도 뒷말을 듣는 건 그 때문이다. 다시 '펀드'로 돌아가 보자. 관심은 당연히 '종목'으로 쏠린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펀드가입이 혹시 '친인척 봐주기'로 귀결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 씨가 대표로 있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최근 골드만삭스코리아 주식형펀드'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 펀드가 출시된 9월은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이 펀드가입 의사를 밝힌 시점과 맞물린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인 박현주 사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에셋의 펀드상품도 '대통령의 펀드' 후보군 중 하나로 오르내리고 있다.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펀드가입을 추진하면서 친인척을 포함한 측근들이 직접 관련된 펀드상품을 골랐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다만 문제는 시중에 이런 루머가 나돌고 있는 상황 그 자체라는 걸 짚고 넘어가고자 함이다. 자신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여기까지 추락해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지, 좋은 뜻에서 추진한 일에 대해서까지 왜 이렇게 뒷말이 무성한지 무겁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기간부터 지금까지 내 놓은 그 숱한 '약속들'을 차근차근 이행해 나가는 일이 우선이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대통령의 '선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적 신뢰가 무너지면 이 대통령이 개인적 약속의 최고봉인 '재산헌납' 카드를 언젠가 내놓더라도 리더십의 감동적인 복원이 되기엔 턱이 없을 테니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