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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제 무덤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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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당, 제 무덤을 파고 있다

[기자의 눈] 70석 평민당의 성공사와 83석 민주당의 횡보

"반성과 성찰을 했다. 먼저 지난 10년 집권하면서 사회양극화 확대를 잘 막았어야 했는데 노력했지만 부족했다는 점을 솔직히 말씀 드린다."

"부족하지만 한쪽으로는 채찍을 드시되 다른 한쪽으로는 민주당을 잡아주셔서 함께 해결해야할 이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란다."

지난 4일, 5개 원내외 야당과 거의 모든 '재야단체'가 망라돼 외양만 보면 1987년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 버금간다는 '경제·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제 정당·시민사회단체·각계인사 연석회의(비상경제시국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발언이다. 회의는 부자감세 철폐와 복지예산 확충을 골자로한 '3대방향과 10대 요구안'을 채택했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는 정 대표지만 이날 그의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3석에 불과한 창조한국당이 사무총장도 아닌 사무부총장을 보낸 자리였지만, 정 대표는 그 옆 자리를 한 시간 반 여동안 묵묵하게 지켰다. '좌향 좌를 선택했다'는 최근의 평가가 맞아 떨어지는가 싶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죽도 밥도 아닌 잡탕 감세안에 합의한 것은 바로 다음 날인 5일이다. 말그대로 '조변석개'다.

그리고 7일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면 좋지만,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 게임을 벌이든지 대화와 양보를 해야 하는 것", "(시민사회에) 앞으로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이것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이 아니다. 여야가 합의한 감세법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높아지자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정 대표가 내놓은 발언이다.

이로써 정 대표는 '민주대연합'에 대한 이른바 '개혁-진보진영'의 고민을 말끔히 해소해줬다.

1990년 평민당과 2008년 민주당

▲ 6월 항쟁이 열어젖힌 1987년 대선에서 3위에 그친 평민당은 불과 4개월 후 총선에서 1야당으로 부상했다ⓒ조선일보
지난 4월 총선 직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 현재 정치구도는 지난 1990년과 유사점이 많다.

1990년 1월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합당해 원내의석 221석의 공룡 여당인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당시 제1야당인 평민당의 의석수는 70석에 불과했다.

이로부터 2년이 지난 19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의 의석수는 과반에도 못미치는 149석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평민당이 꼬마민주당을 끌어안아 출범시킨 민주당은 97석을 얻어 전국정당으로 도약했다.

2008년의 촛불만큼이나 뜨거웠던 1990년의 반(反)민자당 투쟁의 반사이익을 당시 김대중 총재와 평민당은 놓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해 말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넉넉히 따돌리고 당선됐다.

하지만 민자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약진은 물론이고, 당시 재야 전선체 조직이었던 전국연합을 흡수하다시피 했던 김대중 후보의 '민주대연합' 전술의 의미와 효과를 절대 과소평가할 순 없다.

김영삼 개인의 정치적 의도와 떼놓고 설명할 순 없지만, 민주당의 약진과 '민주대연합'은 민자당의 급격한 우경화와 전횡을 방어했고 나아가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를 개혁드라이브 쪽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거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어떠한 동맹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다 복잡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이는 5년 후에 실현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됐다.

민주대연합의 기반과 "역시 대표선수는 DJ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확인한 DJ는 큰 부담 없이 DJP연합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고 그에 대한 개혁-진보진영의 반발도 일정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강한 야당은, 정권교체에 실패하더라도 이처럼 역할을 할 수 있다.

DJ가 민주대연합에 대한 고강도 훈수를 두고 나선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그런데 1990년의 평민당과 2008년의 민주당은 의석수만 닮았다. 1987년 대선 이후 '비판적 지지세력'을 물론이고 '4자 필승론'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전략으로 3등에 그친 평민당 상황이나 2007년 대선 후의 민주당 상황도 마찬가지 닮은 꼴이긴 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정반대다. 평민당은 13대 총선을 앞두고 비판적 지지세력의 대표 격인 이해찬, 문동환, 박영숙 등을 수혈해 비례대표와 전략지역구에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 지지율 상승을 위해 영남대 교수 이수인을 전남 영광·함평에 공천해 당선시켰다.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386들도 이때 의원보좌관으로 제도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대선 이후 민주당의 공천과 행보는 무원칙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주특기였던 '사과와 반성'은 이어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국민과 동떨어진 좌파정책을 써서 망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문제였다"고 말한다.

"(방향은 정 반대지만) 개혁을 하는 면에서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이 닮았다"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처럼 정 반대 방향으로 같이 반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민주당이다.

민주당에게 매를 들 가치가 있는가?

이 당이야말로 '제왕적 총재구조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과 '오너가 없는 조직은 일이 안 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죽도 밥도 아닌 감세안을 합의해놓고 엄한 자유선진당에게 "2중대 아니냐"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물론 민주당이 한국 정치사에 기여하고 있는 바가 없지 않다. 20여년 간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전진해온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체세력화'가 민주대연합이라는 암초를 다시 만나려 할 즈음 민주당은 그 고민을 말끔히 씻어줬다.

"야단만 치지 마라. 애들한테도 자꾸 매만 대면 기가 죽어서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민주당 의원들의 항변이다. 일리가 없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매를 드는 것도 애정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미움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시절부터 당직자를 지내다가 지금은 민주당을 떠난 한 인사는 "이 당은 폐당(閉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대연합론에 호의적인 한 정치평론가는 "내가 민주대연합에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예 좌우의 압박으로 민주당이 깨지고 폐허에서 시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있으면 불안감이라도 덜한 법이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당은 존폐 여부 자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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