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한 가지 공통점은 성별, 세대, 지역, 직업, 계층 등과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이 '우리 사회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현재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은 우리에게 좌절감을 주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너지는 법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됐나.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나는 현재의 상황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식의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아 정치 실험을 시키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정치적 미풍양속'(?)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은 틀림없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민주정치 체제도 국민이 권한과 책임을 나눠 쥐는 체제는 아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그 중에서도 탐욕과 무책임으로 가득차서 우리 사회에 비뚤어진 이념과 지역차별, 안보 관념, 정치공학 등의 '나쁜 바이러스'를 국민들에게 옮기는 정치지도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정치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의 여타 부문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일을 하는 셈이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선생', '교육자'의 역할을 하는 법이다. '교육자'의 사명과 지위를 잃어버린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정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국가 운영을 어떻게 했는지 동서고금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끔찍할 뿐이다. 고위 공무원이 국민을 '개, 돼지'라고 부르지를 않나,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국가 폭력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망자에게 부검까지 강요하는 부관참시의 폭력을 강요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데 요새 북한과 한미 양국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전쟁 불사', 그것도 '핵 선제공격'을 너무도 쉽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핵 선제공격 위협'이 아예 일상화됐다. 그동안 권력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군사안보 부문을 자신들만의 성역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은 주권적 감시를 벗어나 마음대로 전쟁 위협을 높이는 정책을 결정하고, 먹이사슬을 통해 복마전처럼 얽혀 캐도 캐도 끝이 없는 방산 비리를 저질러 왔다. 국민들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국방 예산을 마련해 놓고, 국민의 자식인 군인들에게는 방탄도 되지 않는 방탄복을 입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폭력도 이런 폭력이 없다.
정치가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오천년 인류 역사의 경험을 볼 때 어떤 부문에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가 가르쳐주는 정답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정치 지도자들이 대외 관계에서 힘써야 할 일은 '전쟁보다는 평화'라는 것이다. 전쟁은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한 순간에 앗아간다. 뿐만 아니라 나와 자식들이 죽어 나가는 데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면서 좌절감을 폭력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앞장서서 '전쟁 위협'을 드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 스스로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 식으로 나오는 폭력적인 행동은 아닌지 참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요새 한반도 국제 정세를 보면, 2013년 봄 한미 합동군사훈련 시기 북한과 한미 양국 간에 '핵 공격 위협'을 통해 '핵전쟁 불가'라는 금기 사항이 깨진 후 한반도에서 '비핵화'는 뒷전으로 사라진 듯하다. 오히려 상호 '핵 선제타격'이 일상화된 언어가 되고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핵무기의 파괴력을 경험한 인류는 여태껏 세계 어디에서도 핵무기로써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전쟁 위협을 높여간 경우는 없었다.
한미 양국은 2013년 이래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해서 '맞춤형 억제전략', 4D 작전 전략(탐지, 교란, 파괴, 방어) 등 선제 공격 요소를 강화해왔고, 동시에 미 태평양사령부 '작전계획 5015'와 우리 정부의 대량 응징보복 작전(KMPR) 등 김정은을 목표로 하는 '참수 작전'을 점점 강화해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거부한 채 빠른 속도로 핵과 각종 탄도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이 핵공격을 하면 김정은이 바로 죽는다'는 경고를 하자, 북한은 자신의 군사 계획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순간에 백악관을 공격하도록 되어 있다'고 대응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북한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하여 탈북을 유인하는, 이른바 북한 정권 붕괴를 통한 통일 정책 추진을 추진하고 있다. 한 야당 대표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그러한 공개적인 탈북 유도 언급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
한미 양국의 지도자들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북한에게 더욱 혹독한 제재를 가해야 하며,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게 압력을 넣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협'만 높아지고 있다. 이는 머릿속에서 추론을 통해 관념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다.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지켜보면서 좌절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북핵 문제 해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성급한 마음에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든지, 미국의 전술핵을 재도입, 재배치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결코 해결책은 아니다.
북핵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이고 또 수많은 나라들과 그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기 때문에 단칼에 혹은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를 원한다면, 이 문제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놓고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북한과 한미 양국이 '선제 핵공격 위협'부터 서로 내려놓고, 상대방 지도자에 대한 '참수작전'과 같은 표현을 '공개적'으로 더 이상 하지 않으며, 당장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 비록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 되겠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차근차근히 진행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와 국가가 너무도 익숙히 사용하는 국가 폭력을 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군사안보 부문의 성역을 없애고 이 분야의 '힘의 사용' 등 정책 결정을 국민의 주권적 감시하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특히 최근 한반도 전쟁 위협의 고조, 그것도 핵전쟁 위협의 고조를 생각하면, 군사안보 부문에 대한 국회와 정당, 정책 커뮤니티, 시민단체의 감시 역할이 더욱 엄중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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