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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20대 국회는 글렀다!

[복지국가SOCIETY] 여당 대표의 단식을 통해 본 정치의 생산성

참 황당한 경우를 보았다. 야당보다 의석수가 적기는 하지만 의회의 제1당이고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의 대표가 단식 투쟁을 했다. 해임 결의를 받은 장관 한 명을 지키는 것이 여당 대표가 단식할 이유는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미르나 K스포츠 재단 등 청와대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특정인을 지키는 것도 국회를 마비시키면서 여당이 국정 감사를 포기할 정도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단식을 끝냈다고 하니 또 황당하다. 갑작스럽게 단식을 끝낼 뿐만 아니라 여당이 국정 감사에 복귀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고, 마치 국민 전체가 이유 없이 농락당한 것 같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여당 대표의 단식 투쟁

물론 국정 감사 일주일 정도 못했다고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가 공전되는 동안 피감 기관 60여 개와 김재수 장관 등이 "재수" 좋게 국정 감사를 피해갔다고 하더라도 서면 질의나 종합 감사 그리고 국감 이후의 정기 국회에서 다시 준비한 자료를 중심으로 문제를 지적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말 국회가 챙겨야 할 중요한 일들이 이런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정쟁 속에서 대부분 방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인 물류를 담당하는 우리나라 1위의 해운 기업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 도산할 위기에 처했고, 당장 배 수십 척이 해외 항구에 발이 묶여 있고 기업들의 상품 수천 개가 바다에 떠 있는데도 그리고 향후 국제 해운 산업에서 밀려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이 다른 국적 선사의 배들에 의존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너무 쉽게 법정 관리를 결의하고 해당 기업의 책임이라며 손을 놓았다.

북핵 위기의 해결책이라며 주변 강대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할 것인가의 여부를 다룰 예정인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여당 위원장이 사회를 보지 못하도록 막는 정당을 여당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다. 사드 배치가 본격화되면 이미 시작된 중국의 비관세 장벽 강화와 경제적 제재가 본격화될 것이 분명한데 정부와 여당은 현실성 없는 핵 무장론이나 떠들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재벌 대기업들이나 보수 언론들도 참으로 어이가 없고 난감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9월 30일 당 대표실에서 단식 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단식 7일 만인 지난 2일 단식을 중단했다. ⓒ프레시안

20대 국회의 생산성과 전망

물론 이런 사태는 이미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 결과에서 이미 예견됐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심판 투표로 최소 180석 이상 혹은 개헌 선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던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 되고, 또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으로 국민의당이 약진하면서다. 여당은 선거 결과 이미 정책을 추진해 나갈 동력뿐만 아니라 관련 법률이나 예산을 통과시킬 수단을 모두 상실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의 대리인이 당 대표가 되었으니 중요 정책의 추진보다는 대통령 레임덕 방지나 정권 옹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방법은 한편으로는 권력 기관을 동원한 '공안 탄압'이고, 다른 한편으로 국회에서 몸으로 싸우는 '실력 행사'였다. 그렇다고 다수당이 된 야당이 정국을 주도하거나 무슨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권력이 청와대와 행정부에 집중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국정 감사 재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정기 국회의 법안 심의나 연말의 예산 심의 때도 그런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의 기간 연장이나 검찰의 중립화를 위한 방안, 그리고 방송과 언론의 공공성을 획득하는 내용들도 시간만 끌다가 유야무야될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성과 연봉제 도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올바른 대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적 갈등 비용만 높일 것이며, 비정규직을 줄이고 최저 임금을 올리고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실질적인 노동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정기 국회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지진으로 온 국민이 공포에 떠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활성 단층 지대에 세계 최대의 밀집도로 핵발전소(원전)들이 건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의 시간뿐만 아니라, 원전 폐기와 대안 에너지 마련이라는 엄청난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정치권에는 어느 정당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이 도를 넘었고, 저출산 문제가 최소한의 인구 유지도 위협하고 있어도, 나라의 장래를 결정할 중요 정책들은 정치권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여전히 복지 국가를 위한 주요 정책들은 선거용 멘트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까지는 1년 3개월이 더 남았고, 그동안 국회와 정부에서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태산 같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치권에서는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무능함과 국회의 무기력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여당의 의석수를 줄이고 여소야대가 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무능력하니 정부가 무기력해 진다. 과연 이대로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고, 세계 최강의 나라인 G2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4대 열강들이 각축하는 한가운데서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권력의 "내부자들"이 되어 그동안 사이좋게 상호 이익을 공유하던 법조계-언론계-재계-학계-정치계의 5각 동맹이 위협을 받으면서 기득권자들조차도 불안해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인 위기가 이미 턱밑까지 닥쳐오고 있는데도 다들 침몰하는 배 속에 갇혀 속수무책이다.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두 가지 방법

이런 정치권의 무능력과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만 기존의 정치권이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포기해야 하므로 기피하거나 도입을 꺼리고 있을 뿐이다. 여당 대표의 단식과 여당의 국정 감사 거부로 시작된 정치 파행을 계기로 일부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누구는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필요조건'은 될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의 역할과 기능을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바꾸려면 정치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정치의 구조를 바꾸려면 공천 시스템과 정당의 운영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첫째, 정책을 중심으로 정당 간, 후보 간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추석이 지나자 이미 정치권은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각 후보들의 캠프가 꾸려지고 정책들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제 각 후보들은 몇 가지 중요 정책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검증받아야 한다. 이미 각 정당의 주요 후보들은 상당히 윤곽이 드러난 상태이다. 이들이 공식 선거 기간 동안 법과 절차에 따라 TV 토론을 하고 언론의 질문에 맞추어 입장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정당들은 이번 정기 국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들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분명하게 밝히고, 다른 당의 정책들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해 경쟁하는 것으로 정기 국회를 이어가야 한다. 누리 과정에 대한 비용 부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해당 상임위에서 영유아 보육법과 유아 교육법에 명기하고, 이에 대해 표결을 붙이는 것으로 각 당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이 당론이라면 4대 중증 질환의 국가 보장이 미흡하고, 국민건강보험료를 동결하고 보장성 확충을 포기한 채 적립금만 쌓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운영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 차이가 분명해야 한다. 무책임한 재벌 3세의 경영 능력 부족으로 기업의 가치가 희생되고 국가 경제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면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각 정당과 후보들의 입장이 드러나도록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한다.

둘째, 비례 대표제를 확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정치인의 발탁 및 평가 체계를 개선하는 것을 정치 시스템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경조사를 쫓아다니던 사람들이 줄만 잘 서면 당선되는 시스템으로는 준비된 인물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없다. 여당이나 야당 모두 국정 의제의 중요성이나 개별 후보자들의 정책 능력보다는 줄이나 계파에 따라 공천했고, 이렇게 공천 받아 당선된 선량(選良)들은 자신을 낙점해준 계파의 이익과 보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국회의 구성 자체가 생산성이 높을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정치권의 구조가 정책을 추진하고 민생을 돌보기보다는 계파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조직되어 있다.

비례 대표의 수를 지금의 50석에서 100석으로, 궁극적으로는 전체 의석수의 50% 수준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들 비례 대표는 계파 보스와의 친소 관계나 충성 여부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성과 활동 경력, 그리고 각 정당의 정책과 부합하는 정도로 뽑힐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비례 대표제를 통해 지역에 기반을 두지 않아도, 또 특정 인물에 줄서지 않아도 공천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치인 지망생들이 노선과 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정당을 만들고 국민들이 여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대표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다. 그리고 대변하고자 하는 국민의 의견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의사 결정의 이합집산을 할 수 있다면 70-80%의 지지를 얻는 정책들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항상 '51 : 49'로 마무리되는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대통령의 탁월한 능력과 노력으로 작은 일들은 몇 가지 진전을 이룰 수 있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중요 문제나,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난제에는 다가갈 수 없고 해결할 권한을 위임받을 수도 없다. 현재의 정치인 생산과 정당 운영 구조를 그대로 둔 채라면,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내각이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도, 4년 임기를 통한 중간 평가 제도의 도입도 답이 아니겠지만, 비례 대표제의 확대를 통한 정치 시스템의 변화를 수용한다고 전제된다면 다양한 내용의 개헌 방안도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야의 모든 후보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1년 내에 독일식 비례 대표제 확대를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에 합의한다면, 적어도 21대 국회부터는 국민이 생산적인 국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정책의 추진은 불가능하고 집권당 대표가 무책임하게 단식을 하거나 국회 일정을 거부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정치 구조의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여전히 국민은 소모적인 정쟁과 어이없는 단식, 그리고 답답한 싸움의 반복을 짜증나게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능한 정부가 싫다면 더 이상은 싸움질만 하는 국회가 싫다면 이제는 정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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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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