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2003년 이 거대한 공항의 한 구성원이 되던 그때, 지금 3일 출근하고 사직서를 쓰겠다는 그 친구처럼 '과연 이곳이 나의 젊음을 걸 만한 곳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신입' 딱지를 떼고 공항 정규 출입증을 발급받아 목에 걸던 순간, 출입증에 인쇄되어 있던 용역회사의 이름. 그랬다. 나는 공항에서 일하고 공항에서 밥을 먹고 공항에서 쉬지만 나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는 용역회사였다 그것도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IMF 이후 30대가 된 나는 어렵게 구한 직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 뭔가 좀 더 좋아지겠지' '세상이 발전하고 세상이 더 좋아지면 나와 우리의 처지도 좀 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6년 6월 현재, 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 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홍보부장이라는 긴 직함의 명함과 명찰을 달고 용역회사와 마주 앉아 있다.
그리고 2년 전 조합원 동지들과 용역회사의 횡포에 맞서 조합원 동지들과 공항 여객 터미널에서 1인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조합원 9명과 인천국제공항공사에게 업무방해로 고소를 당했다. 판사는 '당신들은 공항공사와의 고용관계가 아닌 용역업체의 직원이니 공항에서 1인 시위를 한 것은 인천국제공항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벌금 300만 원과 함께 전과자가 되었다.
공항공사는 이 말을 자주 한다. '공항 가족'
의문이 들었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라 함은 서로가 돌보고 아끼고 그 구성원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아프다고 상처가 나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울부짖는데, 너희들은 우리 집 마당에서 아파할 자격이 없는 것들이니 여기서 나가라고 쫓아내는가? 그리고 명절날 선물이라고 주는 냉면 그릇에 들어 있는 그 집주인의 편지에 공항 가족이라는 그 가증스러운 단어를 쓸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집 지키는 강아지마냥 때마다 주는 밥에 꼬리 치고 그 주인에게 아양을 떨어야만 가족이고, 단 한 번이라도 '왜?'라는 질문을 하면 또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 어떻게 '우리는 당신들과 제3자의 입장입니다'라고 말하는가.
나는 그 뒤로 스스로를 '인천국제공항 직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인천공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항의 그 누구도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동지라고 불렀다.
'세계 공항 서비스평가 11년 연속 1위'
그 속에는 화장실에서 간식을 먹어 가며 하루 종일 청소하는 청소노동자 동지들의 땀이 있었고, 아무 잘못 없이 짜증 난 승객에게 육두문자 욕을 들어가며 자기 일을 다 한 보안요원 동지들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기계 속에서 현장에서 피땀을 흘려 가며 단 한 순간도 공항의 시스템을 멈추지 않기 위해 노력한 엔지니어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불러 공연을 하고 수많은 대기업들의 광고와 자본의 이벤트가 이룬 그 세계 최고 공항이 아닌, 노동자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만든 세계 최고 공항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그 허울 좋은 가족이 아닌, 우리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동지'로 뭉쳐 슈퍼 '갑'인 공항공사와 또 다른 '갑'인 용역회사와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이제 곧 '제2 여객터미널'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 동지들은 또 다른 투쟁을 시작한다. 지난 15년간 노동자가 당하고 노동자가 눈물 흘린 그 일들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다시는 '가족'이라는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또 감시하고 싸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말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공항은 우리가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 최고 공항을 만드는 '노동자 동지'다"라고….
몇 년 전 어느 나이 지긋하신 승객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이렇게 좋은 공항에서 일하니, 참 자랑스럽죠? 월급도 많이 받으실 것이고. 그렇죠?"
나는 그저 고개 숙여 인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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