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천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어떤 노동이 필요하고,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파업에 나섰는지를 말이다. <편집자>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탑승 수속을 밟고 탑승동 건물에 도착한다. 게이트 앞에 항공기가 도착하고 탑승동의 승객들이 안전하게 항공기에 몸을 싣는다. 이때 환하고 깨끗한 통로를 통과한다. 인천공항 간접 고용 노동자 중에는 이 통로(탑승교)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탑승 게이트에서 항공기로 이동할 때, 승무원 복장은 아니지만 탑승교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인천공항의 탑승교는 고정식이 아닌 이동식이기 때문에 매번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탑승교를 연결하는 노동자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에 있는 탑승교는 총 144개. 비행기가 쉴 새 없이 인천공항을 오가는 동안 탑승교 노동자들도 쉴 새 없이 이 다리, 저 다리를 오가며 승객이 안전하게 항공기에 오르고 내리는 업무를 맡아서 한다.
▲ 인천공항 탑승교.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난 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등과 냉난방이 꺼진 탑승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탑승교지회 |
4, 5, 13, 25, 29, 44 없는 탑승교…시설물 취급받는 노동자
탑승 게이트의 전등과 냉난방 시스템은 항공기 이착륙 일정에 따라 30분 전후로 자동 예약되어 있다. 3시에 이륙하는 항공기에 탑승교를 연결한다면, 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탑승 게이트 안의 전등과 냉난방 장치가 가동된다. 항공기가 지연되어 3시 30분에 이륙한다면, 탑승 게이트 안에 노동자들이 있더라도 전등과 냉난방이 꺼져버린다.
"우린 시설물 취급을 받는 거예요. 시설물. 아니, 사람이 있는데 그 추운 겨울에 온풍기 꺼버리고, 그 더운 여름엔 에어컨 꺼버리고 불도 꺼버리고 시설물이 아니고 뭐예요."
항공기에 접현(이현)하는 전후 30분의 시간 외에는, 탑승 게이트의 냉난방과 전등은 당연히 꺼져 있다. 하지만 탑승교를 연결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탑승 게이트가 바로 근무 대기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설물 대우를 받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을 만든 후, 탑승 게이트에 전등 스위치가 생겼다. 탑승 게이트에 사람이 있는 만큼, 안에서 전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탑승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다. 시설물 취급이 아니라, 사람대우를 받고 싶다고 말이다.
탑승교가 비행기와 육지를 직접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사고를 피하고 무사 귀환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탑승교에 담겨 있다. 탑승교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각국에서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번호 '4, 5, 13, 25, 29, 44'가 빠져 있는 것.
탑승교가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주문을 거는 것이 아니다. 탑승교 노동자들은 항공기와 연결이 잘못되거나, 항공기와 탑승교가 부딪치는 사고로 인해 승객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을 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대체 인력 투입된 후 사고 발생, 그리고 느닷없는 '패스 정지'
탑승교가 멈추면 비행기가 뜰 수 없다. 그래서 탑승교는 현재 '필수 유지 업무'로 지정되어 파업 중에도 57%의 인원은 일하고 있다. 부족한 자리에 공사 직원들과 대체 인력이 급하게 투입되었다. 기존 직원들이 3주 교육과 1차, 2차 시험을 통과하여 하는 일을 2~3일 교육 받은 직원들이 하려다 보니 사고가 발생한다. 12월 9일 말레이시아 항공기 왼쪽 동체와 탑승교 간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항공기 하부가 30cm 찌그러졌는데, 항공기는 다른 운송 수단과 달리 찌그러진 부분이 비행 중 상공에서 고압을 이기지 못하고 찢길 수 있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사고 항공기는 임시방편으로 수리하고 예정 시간보다 3시간가량 지연되어 본국으로 출발했다. 이때 탑승교를 운전한 것은 대체 인력으로 투입된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직원이었다.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발생하자 파업 4일째인 12월 10일 공항공사는 대체 인력을 철수했다. 그 후, 지금까지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 대체 인력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57%가 더욱 안전하게 탑승교를 운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하던 일이라 얕봤던 것인지, 파업해도 공항 운영은 전혀 지장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공항공사는 사고가 일어나자 탑승교지회 조합원 3명을 '패스 정지' 하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간부까지 포함하면 탑승교에서만 6명이 패스 정지를 당했다. 공항 직원이 공항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패스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정지시켜버리면 일터에 들어갈 수가 없다.
"출근하려고 패스를 찍는데 갑자기 안 된다고 뜨는 거예요. 심장이 덜컹했죠. 이건 해고도 아니고, 징계도 아니고.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너는 여기 들어오지 말라'는 거잖아요. 10년 동안 울고 웃으면서 한솥밥 먹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패스 정지를 시킨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이렇다. 대체 인력으로 투입된 정규직 직원들이 탑승교 접현(이현)을 잘못하고서 상황일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까맣게 지워놓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고, 그것이 화근이란다. 감히 비정규직이 정규직한테 '지적질'을 한 것이 이유였을 거라는 말이다.
▲ 인천공항 탑승교.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탑승교지회 |
10년 가까이 일했지만 매년 신입 사원 대우
10년을 일했는데 급여에는 차이가 없다. 인천공항공사의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건비'로 책정되어 있지 않다. '사업비'로 책정되어 있다. 해당 사업이 없어지면, 노동자들도 없어진다. 일종의 '프로젝트 사업'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탑승교를 연결 및 관리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항공기가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업무이지만, 사업비로 책정된 돈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보통 사업비, 관리비, 인건비, 기타, 이윤 뭐 이런 식으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근데 우린 사업비예요. 항공기에 탑승교를 연결하지 못 하면, 승객도 이동 못 하고 비행기가 뜰 수도 없어요. 근데, 그 일을 하는 우리 임금은 사업비로 책정된 거예요."
공항공사는 3년마다 한 번씩 탑승교를 연결하고 관리할 업체를 선정하고 해당 업체는 노동자들과 1년 단위로 계약한다. 10년 가까이 일했지만, 1년마다 재계약하고 3년마다 업체가 바뀌니 신입 사원처럼 임금이 똑같다. 인건비 항목으로 책정되어 있다면 물가 상승률이라도 반영되겠지만, 사업비는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파업하는 탑승교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근속 수당' 도입이 있다. 1년마다 재계약하고 3년마다 업체가 바뀌어서 매년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근속 수당'이라도 만들어서 1년에 2만 원이든지 3만 원이든지 임금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이는 사고를 내지 않고 탑승교를 접현(이현)하는 숙련과 기술, 오랫동안 일한 경력을 인정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로 책정된 사람들, 승객이 없을 때는 시설물 대우를 받는 사람들, 10년을 일해도 매년 신입 사원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파업하고 있다. 탑승 게이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전등을 켜고 냉난방 시스템을 가동하고 1년에 2만 원이라도 근속 수당을 받는 일터를 요구하며 파업하고 있다. 공공 기관이니 당장 정규직 시켜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임금을 몇 십만 원 올려달라는 요구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근속이 늘어날 때마다 2만 원이라도 근속 수당을 올려달라는 소박한 이야기다.
파업이란 게 힘들고 지치지만, 오늘도 탑승교 노동자들은 즐겁게 투쟁한다. 시설물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으며 파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수 유지 업무로 근무하는 57%의 탑승교 노동자들은 비행기가 착륙할 때 주고받는 랜딩 사인도 요즘은 '카피' 대신 '투쟁'이다.
관제실 : 3게이트 17번 (비행기) 랜딩했습니다.
탑승교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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