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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해외 여행, 누구한테 공항 서비스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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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추석 해외 여행, 누구한테 공항 서비스 받으셨나요?"

[공공부문 비정규직 ②] 인천국제공항 서비스 직원

추석 황금연휴를 앞둔 인천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행 가방을 든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들뜬 표정으로 줄을 섰다. 지난 16일, 수많은 해외 여행객들이 오가는 여객터미널 8번 게이트. 그 자리에 초췌한 얼굴들 몇몇이 서성이고 있었다.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김치훈(46) 씨도 그 중 하나였다.

"저기 '시큐리티(security)' 적힌 제복 입은 저 사람, 공무원 같잖아요. 비정규직이에요. 안내데스크에 있는 사람도 비정규직, 심지어 공항 소방대원도 공무원 같지 않아요? 비정규직이에요. 아무리 돌아다녀도 정규직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어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선글라스 낀 여행객들 사이로 비정규직들이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청소 노동자와 젊은 남성 보안관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일하는 곳. 인천공항 풍경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경찰서에서 경찰 업무 보는 저보고 '미스 리'래요"

"얼음 썰매장…일은 우리가 하고, 내세우긴 공항공사가"


▲ 추석을 맞은 인천공항 풍경. ⓒ프레시안(김윤나영)
김 씨는 7년째 인천공항에서 토목 시설 유지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도로를 포장하고, 겨울에는 제설하고, 여름에는 배수구를 관리한다. 홍수가 나거나 폭설이 내릴 때 그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공항이 마비된다고 했다. 섬에 있는 공항의 배수관문을 조절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밀물 때는 수문을 잠그고, 썰물 때는 수문을 연다.

겨울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썰매장도 운영한다. 겨울에 얼어붙은 배수로를 이용해 썰매장을 만든다. 인천공항이 제공하는 '무료 사회 공헌 서비스'다. "(초과 근로) 수당 줘서 불만은 없지만, 일은 다 우리(비정규직)가 하는데 '추억의 얼음 썰매장'이라고 내세우는 곳은 공항공사예요."

김 씨는 용역업체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면서 요즘 밤에 잠이 안 온다. 김 씨가 고용된 업체는 공항 외곽 도로를 담당하는데, 다음 달부터는 공항 활주로를 담당하던 업체가 외곽 도로 담당 업체로 들어온다. 그는 "명절 보너스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5년마다 잘릴까 봐 불안해하기 지겹다"고 했다.

업체 정규직(관리직)이 몇 명 오느냐에 따라 임금도 들쭉날쭉하다. 공항공사가 업체에 주는 임금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정규직 임금을 보존하고 남은 돈으로 비정규직 임금을 준단다. 정규직이 늘면 비정규직 임금이 깎이는 구조다. 5년 전에도 업체가 바뀌면서 그는 새로 입사 지원서를 내고 전보다 깎인 임금을 받아야 했다.

"승객 가면 에어컨 꺼…직원만 우두커니"

김치훈 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객의 편의를 위해 일했다면, 조웅길(35) 씨는 13년 동안 대민 업무를 해왔다. 그는 비행기 출입구와 공항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인 '탑승교'를 놓는 일을 한다. 승객이 내리고 타기 30분 전에 탑승교를 설치하고, 승객이 타거나 내릴 때까지 통로에서 대기했다가 탑승교 연결을 끊고 비행기를 떠나보낸다.

탑승 절차를 밟을 때는 줄 서느라 정신없고, 비행기 안에서는 좌석 찾느라 정신없는 승객들은 탑승교를 지나갈 때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마침 통로에서 '공항공사 마크'가 찍힌 제복을 입은 조 씨는 승객들 눈에는 영락없는 공항공사 직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부탁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비행기 환승 시간 문의, 공항에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 승객들이 이용하기 좋은 편의 시설 문의, 짐 들어달라는 부탁이 많이 들어와요. 사실 공항 규정상 우리는 승객의 짐을 들어주면 안 되거든요. 밀수품 반입 우려 때문에 그러는데, 연세 있으신 분들이 하는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들어드려요."

가끔 승객들이 칭찬하는 글을 올리면 기분이 좋다는 그는 "공항에서 일하는 게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물론 일하면서 억울한 일도 겪는다. 비행기 서비스의 질이나 비행기 연착 문제를 조 씨에게 '직원인데 왜 모르냐'고 따지는 승객이 많다고 했다. 그는 "고객이 공항 바닥에서 미끄러지면 나도 모르게 부축을 하는데, 혼자 넘어진 승객이 '나 다쳤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할 때도 난감했다"고 말했다.

고객의 불만 접수보다 더 서러운 건 공항공사의 태도다. 공항공사가 승객이 내리고 타는 시간에만 냉난방을 하는 탓에 "탑승교 직원들은 감기를 상시로 달고 다닌다"는 것이다.

"탑승교가 통유리거든요. 여름엔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로 떨어지고. 감기를 상시로 달고 다녀요. 그렇다고 덥다고 그늘 찾아 다른 데 갈 수도 없어요. 근무지 이탈이거든요. 승객 다 타면 우리 있는데 밤에는 불도 안 켜줘요. 그래서 여직원들이 서럽다고 해요."

▲ 16일 출국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인천공항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8년 연속 세계 1위 명예 뒤엔 서비스 직원의 눈물"

'공항계의 노벨상'이라는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ASQ)에서 인천공항이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까지도 뒷이야기가 있었다. 조 씨는 "품질, 운송 능력, 청결, 승객 탑승 시각 등 서비스직 직원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1위"라며 "작년에 처음으로 비정규직 6000명 전원에게 성과급 50만 원을 지급한 것 외에는, 8년 동안 우린 거기서 한 번도 거론이 안 됐다"고 서운해 했다.

"사람들이 어떤 고생하며 평가받았는지 몰라요. 평가 기간에 종이 쪼가리 하나도 볼 수 없거든요. 닦고 쓸고 웃고…. 우린 정신없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평가 기간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름 하나 남기려고 너무 직원들의 고혈을 짜요. 1등 한 뒤에 처음에는 5000원짜리 햄버거 상품권을 줄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공항공사 이사장 편지가 담긴 그릇세트가 나왔어요."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국장은 "평가 기간에 청소 노동자에게 화장실에서 빵을 먹지 말라고 했다"며 "원래 밥 먹을 공간과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빵 먹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인데, 화장실에서 빵 먹어가며 일하는 걸 알긴 알았나 보다"고 비판했다. 신 국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새 일하는 분들도 있다"며 "전력, 조명, 통신, 승강기. 유지보수 업무는 다 새벽에 일한다"고 덧붙였다.

▲ 인천공항 청소 노동자에게는 서비스 평가 기간에는 "화장실에서 빵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온다고 한다. 밥 먹을 공간과 시간이 부족해서 '화장실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어야 하는' 청소 노동자의 비애를 보여준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인천공항, 국토부 산하 기관 중 비정규직·억대 연봉자 비율 모두 1위

조 씨는 계약직이고 5년마다 업체가 바뀌면 입사원서를 새로 써야 하는 신분이 한탄스럽다. 14년 차인 그의 임금은 상여금을 포함해 249만 원이고, 세금을 떼면 210만 원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0여 명으로 전체의 87%가 넘는다. 정규직이 900여 명이 채 안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국토해양부 산하 22개 공공기관 가운데 비정규직 채용 비율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한국도로공사 67.4%, 울산항만공사 53.7%, 한국해양과학기술원 53.7% 등이 이었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 중 억대 연봉자 비율 1위를 차지하는 기관이 인천공항공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공사 임직원 865명 중 14.5%인 125명이 억대 연봉자였다. 반면 같은 국토부 산하 기관인 한국공항공사의 억대 연봉자는 3.78%인 66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0.1%인 7명, 한국수자원공사 0.16% 7명, 한국도로공사 0.16%인 7명, 대한지적공사 0.1%인 4명에 불과하다.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또한 공기업 기관장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인 2억8528만 원을 받았다. 다른 공기업 기관장 연봉 평균은 2억2600만 원이다.

조 씨는 "탑승교 일자리는 14년 전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몇 달 전부터 아예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공기업인 인천공사가 애초에 이 분야에 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원청이 고용 관여 못해…외국에도 아웃소싱 있어"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인천공항만 아웃소싱하는 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도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은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며 "다만 그 나라의 노동법 체계에 따라서 보호받는 부분이 많이 다를 순 있겠지만, 아웃소싱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인천공항이 국토부 산하 기관 비정규직 비율 1위를 차지한 점이나 외국의 아웃소싱 규모에 대해서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인천공항이 8년 연속 평가 1위를 했지만 비정규직은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평가 기여는 공항에 근무하는 전 직원이 다 한 것이라서 기념품으로 아웃소싱 직원까지 포함해 그릇을 좍 돌렸다"며 "아웃소싱 직원에게 상여금 50만 원도 줬는데, 공사는 업체들의 인사나 급여에는 관여할 수 없기에 (직접은 못 주고) 업체를 통해서 줬다"고 말했다. '5000원 햄버거 상품권' 논란에 대해 이 관계자는 "어느 부서에서 고생한다고 이벤트 햄버거 쿠폰을 줬을 뿐, 전 직원에게 돌리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공사가 직접 고용 승계나 임금 문제에 대해서 관여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공사가 고용이나 임금 문제에 관여하면 불법 파견이 되고, (비정규직들이) '우리도 공사 직원'이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규직(관리자)이 늘수록 비정규직 임금이 깎인다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업체가 바뀌면 관리자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경찰서, 공항,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받는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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