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는가? 이 물음의 답을 찾는 일은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일본의 혁신 정당(일본에서는 좌파 대중 정당을 '진보 정당'보다는 '혁신 정당'이라 불렀다)이 동아시아 자본주의에서 진보 정당 운동의 첫 번째 주자라서 그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다른 사회 영역과 마찬가지로 좌파 정치에서도 자꾸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번역된 일본 사회과학자 신카와 도시미쓰의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 사회당-총평 블록의 흥망>(임영일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이러한 상념을 보다 정돈된 고민으로 가다듬어주는 훌륭한 길잡이다. 요 며칠 이 책을 읽으면서, 거울마냥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을 만큼 일본사회당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선명히 정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 거울에 떠오른 우리의 현재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사회당의 운명을 결정한 노동 운동의 선택
그러나 읽는 데 좀 노력은 필요하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이웃나라 현대사의 시시콜콜한 내용이 곳곳에 나와 그렇기도 하지만, 사회당의 실패를 분석하는 저자의 시각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카이 도시미쓰는 사회당이 정통 마르크스주의 교리를 좀 더 빨리 버리고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했더라면 성공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거나, 사회당 특유의 호헌 평화 이데올로기를 견지하는 게 옳았는지 아닌지 쉽게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당이 현실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때는 기존 관성에 머무르고 원칙을 고수해야 할 때는 너무 쉽게 이를 버렸다고 평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따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가 사회당 실패의 원인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은 일본 노동 운동의 선택이다. 책의 부제가 '사회당-총평 블록의 흥망'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 운동 변수에 주목하는 게 단지 사회당이 제1노총이었던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에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은 진보 정당의 핵심 권력 자원이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성공한 진보 정당은 모두 발전된 노동조합운동에 단단히 뿌리 내렸다. 반면에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이 벽에 부딪히거나 특유의 한계를 지닌 곳(미국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에서는 진보 정당의 성장도 더디거나 아니면 아예 싹을 틔우지 못했다.
일본 노동 운동은 1950년대까지는 다른 서방 자본주의 국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온건 좌파 노선과 급진 좌파 노선이 경쟁하다가 노총을 따로 차렸지만, 이것은 전후 노동 운동의 보편적 양상이었다. 급진 노선인 총평이 제1노총이 된 것도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한 동안 공산당을 지지하는 노총이 노동 운동을 주도했다.
일본만의 독특한 경로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였다. 이때부터 좌파 내의 온건/급진 균열 대신 새로운 균열선이 나타났다. 총평의 급진 노선은 총평 안에서도 주로 공공 부문 노동조합만의 입장으로 한정됐다. 고용이 안정된 대신 집단적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공공 부문에서는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기조가 계속 이어졌다.
반면 총평 소속이든 비총평이든 민간 부문 노동조합은 이와 정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고 총평 공식 노선과 대별되는 온건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 게 아니었다. 일체의 '사회'주의적 접근과는 다른 흐름이 대두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별 노동조합이 자본과 타협했다. 이들은 생산성 향상에 적극 협력하는 대가로 종신 고용과 기업 복지를 보장받았다. 서유럽에서는 노동 운동이 국가 전반에 영향력을 관철시켜 얻어낸 것들을 일본 민간 부문 노동조합들은 회사 안의 타협을 통해 획득했다.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기였다. 기업별 타협으로 따낸 성과들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성과를 누리게 된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게 '사회' 복지인지 '기업' 복지인지, 혹은 국가 정책에 따른 고용 안정인지 기업 차원의 종신 고용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핵심 산업 노동자의 이런 선택 때문에 일본이 서유럽과는 다른 역사 경로를 밟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는 이 대목에서 일본사회당의 비극을 포착한다. 사회당은 총평의 정치 부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기업별 타협이 확산되자 총평은 점점 공공 부문 노동조합만의 조직이 돼갔다. 덩달아 사회당도 기반이 약화됐다. 사회당은 노동계급 전체의 당이기보다는 총평 내 공공 부문 노동자의 당처럼 되어갔다. 그 결과 사회당은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으로는 지지층을 늘리지 못하는 만년 야당, 수동적 저항 정당에 머물고 말았다.
사회당의 이런 현실에 불만을 품고 분당을 감행한 당 내 우파가 있었지만, 이들의 앞날은 더 순탄치 않았다. 민주사회당, 흔히 줄여서 민사당이라 불린 이 세력은 사회당보다도 훨씬 당세가 미약했다. 총평 공식 노선을 따르지 않은 노동조합이 함께 해야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별 타협으로 이미 많은 것을 따낸 민간 부분 노동조합이 굳이 민사당을 적극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사회당의 무산된 기회 : 60년대 구조 개혁론
신카이 도시미쓰는 사회당 전체가 민사당식 노선을 추진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웠을 것이라고 냉정히 평가한다. 사회당으로서는 민간 부문 노동자들을 지지층으로 규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선 전환을 꾀하느니 총평 주류 노선과 호응하는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는 노동 운동과 정당 정치의 상호 관계에서 전자를 보다 근본적인 결정 요인으로 바라보는 이론적 관점이 깔려 있기도 하다.
굳이 규정력의 정도를 말하라면, 정당 정치에 대한 노동 운동 쪽의 영향이 더 크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의 현재를 고민할 때마다 항상 생각이 닿는 곳은 노동 운동의 한계와 모순이다. 전체 노동자의 단지 5%만이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조직돼 있는 상황에서 2004년 총선 이후 '진보'를 내건 정치 세력들이 매번 5~10석은 지키는 게 오히려 대단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반대 방향의 규정력이 없거나 미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당 정치가 노동 운동에 충격을 주고 노동조합 토대를 넘어선 영향력을 펼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는 1960년대 사회당을 평가하면서 주의주의적 편향(무엇이든 다른 결단을 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라는)을 피하려고 너무 비극적인 숙명론에 기운 감이 있다.
이 책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듯이, 이 무렵 사회당에는 노동조합 운동의 변화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그러한 변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본 사회를 이끌려 한 중요한 시도가 있었다. 1960년에 에다 사부로 서기장(우리식으로는 사무총장)이 제시한 구조 개혁 노선이 그것이었다.
에다 사부로는 1960년 임시 당 대회에서 "생활 향상, 반독점, 평화 중립"을 3대 축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자고 주창했다. 핵심은 호헌 평화 과제에 집중하면서 자본주의 위기가 닥치기만 기다리자는 정통 노선에서 벗어나 노동권과 복지 확대를 중심으로 개혁 투쟁에 앞장서자는 것이었다. 에다 사부로가 언급한 구체적 과제들은 복지 확충, 완전 고용, 최저 임금제, 노동 시간 단축, 대외 무역 통제 등이었다.
에다 사부로는 사회당 좌파 출신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사회당 좌파-총평 전통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입법 활동만큼이나 대중 운동을 강조했고, 호헌 평화 원칙과 복지 국가 건설을 결합시켰다. 또한 굳이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쓰던 '구조 개혁'이란 표현을 차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일본사회당도 그 시기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처럼 복지 국가 건설에 주력하자는 것이었다.
구조 개혁론은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자민당이었다. 이들은 사회당이 저항 정당에서 대안 정당으로 변화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막상 사회당과 총평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복지 국가는 자본주의의 회유책일 뿐이며 변혁 운동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구조 개혁 노선이 당론으로 채택되기는커녕 에다 사부로와 지지 세력만 당 안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당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기준에서는 '(좌파) 사회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도 'Social Democratic Party of Japan(일본사회당의 공식 영어 명칭)'에서는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이다.
일본사회당의 교조주의 체질을 뒤늦게 성토하는 게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짚고 싶은 것은 사회당 내에서 모처럼 등장한 이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사회당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중대한 역사적 기회가 무산됐다는 점이다. 구조 개혁론이 제창된 시점은 바로 민간 부문 노동조합이 기업별 타협으로 기울어가던 무렵이었다. 일본형 노동 체제가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때였다.
이런 때에 등장한 구조 개혁 노선은 신카와 도시미쓰의 지적처럼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기도 했지만, 또한 노동 운동 일각의 선택에서 비롯된 역사 경로를 굴절시킬 수 있었던 시도이기도 했다. 민간 부문 노동자들이 기업별 타협에 기울어졌다고 해도 보편적 복지 국가의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앙 정치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1970년대에 지방 정치에서 분 혁신 지방자치단체 바람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당의 시의적절한 변신은 이 바람이 지방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사회당이 1960년대라는 결정적 시기에 방향을 달리 잡았더라면, 일본도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사회 국가' 경험을 축적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기에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후퇴를 겪지 않을 수 없었을지라도 평화 진보 세력의 수세가 지금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일본 사회가 경험한 것은 두 세대 넘게 지속되는 '회사(기업) 국가'이고, 사회당의 소멸에 뒤이은 우파 정치의 폭주다.
우리에게 남은 기회의 문을 확인한다
글 첫 머리에 한국이 일본을 뒤따르는 것만 같다고 썼지만, 잘 들여다보면 실은 상당한 틈이 있다. 기업별 협상 때문에 강화된 한국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는 일본형 노동 체제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하지만 일본의 노동 체제가 최소한 한 세대는 넘게 지속된 것에 반해 한국의 현 상황은 고작해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리 잡은 것이다.
차이를 낳는 것은 역시 한국 사회가 겪은 압축 성장의 그 속도다. 일본이 몇 세대에 걸쳐 지나온 과정을 한국은 거의 한 세대 안에 관통했기 때문에 체제, 제도, 의식 모두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하다. 노동 운동도 그렇고, 정치 지형도 마찬가지다.
'불안정성'은 '혼란'과 연관된 단어이지만, '변화'와도 가까운 관계에 있다. 한국의 노동 운동이 일본을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일본보다는 현 궤도로부터 방향을 틀기가 더 쉽다. 여기에 한국 진보 세력에게 남은 기회가 있는 것 아닐까.
진보 정당 운동에게 이 기회의 문은 폭이 더 넓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사회당이 기회의 문을 닫은 후 반세기가량이 지났다. 더구나 그 세월 동안 기업별 타협이 깊이 뿌리내리고 자민당이 제 나름의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진보 세력이 새삼 사회 국가 건설을 주창하며 지지를 모으기 쉽지 않다. 반면 한국의 복지 정치는 이제 시작이며, 전 세계적으로 사회 국가의 르네상스가 감지되는 정세와 겹쳐 있다.
억지 희망일까? 하지만 일본 좌파 정치와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다 보면, 현재가 늘 과거의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에 짓눌리지만 그만큼 현재의 또 다른 선택의 무게가 엄청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을 확대해 보자면, 참된 역사는 항상 지금 여기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나머지 모두는 전사(前史)다.
심지어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조차 일본에서 새로 시작되는 비정규직 노동 운동 이야기로 끝맺으며 이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희망의 근거를 그보다 작게 잡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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