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평생에 걸쳐 독점 자본과 싸우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온 한 상원의원이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후보로 독자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출마의 변은 "미국 민중의 정치, 경제 생활을 지배하는 독점 자본의 결합된 힘을 깨부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천연자원과 철도를 공공 소유로 만들고 부자 증세를 단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 선거가 아니라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정치 개혁을 역설했고, 군비를 대폭 축소하자고 외쳤다.
그 동안 기성 양대 정당에 실망했던 많은 이들이 제3후보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노동조합총연맹이 조직적으로 지원했고, 중서부에서는 부채로 신음하는 농가들이 지지하고 나섰다.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던 사회주의자들도 이번에는 한 목소리로 제3후보 주위에 결집했다. 제3후보는 공화당, 민주당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강 구도를 만들었다. 성급한 이들은 미국 정치에 드디어 공화당-민주당 양당 구도를 흔들 도전 세력이 등장한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한 세기 전의 '샌더스', 로버트 라폴레트 안타깝게도 이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야기는 아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 돌파구가 열리길 갈구하던 세계인의 바람과는 달리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낙마했다. <프레시안> 지면에 이미 썼던 것처럼(☞관련 기사 :
샌더스 열풍? 제국의 장벽은 높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이 월스트리트 정당의 본분을 저버리지 않도록 보장하는 장치들은 강력했다.
그렇다고 샌더스가 위의 이야기처럼 독자 후보 출마를 결행할 것 같지도 않다. 샌더스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클린턴 선거 운동에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샌더스 진영의 강경파 사이에서도 대선 이후 신당 건설을 주장할지언정 아예 이번 대선에 독자 출마하자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1964년 대선의 배리 골드워터(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선구자 격이었던) 이후 가장 문제적인 극우파이기 때문에 독자 출마는 말도 꺼내기 힘든 형편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제3후보'는 실은 샌더스가 아니라 한 세기 전 그의 선배다. 1924년 대선에 '진보당(실제 창당은 하지 않은 종이 정당이었다)'이라는 제3당 명의로 출마한 로버트 라폴레트 상원의원이다.
라폴레트는 위스콘신 주지사를 역임하고 상원에서 20여 년간 위스콘신 주를 대변한 원로 정치인이었다(1924년 출마 당시 69세). 본래 당적은 공화당이었다. 한데 이 시절의 공화당은 지금 공화당하고는 좀 달랐다. '공화당은 보수파, 민주당은 개혁파'라는 대립 구도는 뉴딜 이후에 뿌리 내린 상식이다. 20세기 벽두에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에도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혁신주의자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라폴레트는 이러한 혁신파 공화당원 중 한 사람이었다. 독점 규제, 노동권 보장, 여성 참정권 등을 위해 싸워온 그의 정치 역정은 이미 전설이 돼있었다. 그는 이름보다는 '싸우는 밥(로버트의 애칭)'으로 통했다.
라폴레트는 1924년 대선이 미국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혁신주의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양당 안에서 사회 개혁에 진력했지만 부와 권력은 더욱더 월스트리트에 집중되기만 했다. 온전히 노동자, 농민의 입장에 서서 독점 자본과 대결할 새 정당이 필요했다. 라폴레트는 정치 인생 마지막을 이 과업에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대선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라폴레트가 출마를 결행하자 순식간에 진용이 꾸려졌다. 하원에 한 석의 의석을 지니고 있던 미국 사회당은 오랫동안 재창당을 염원하고 있었다. 1901년 창당 이후 20년 넘게 활동해온 사회당은 미국 정치 지형에서는 영국 노동당처럼 노동조합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 진보 정당을 새로 창당해야만 공화당, 민주당과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일부 젊은 노동조합 간부와 시민운동가들을 모아 '진보 정치 활동을 위한 회의(진보 회의)'를 꾸렸다.
마침 분위기도 좋았다. 중서부 곳곳에서 '농민-노동당'이라는 공통 당명을 내걸고 노동자와 소농의 지지를 받는 주차원의 정당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진보 회의에 속속 모여들었다. 진보 회의는 라폴레트의 출마 선언을 당연히 두 손 들어 환영했다.
더 중요한 것은 노총(전미노동조합연맹, AFL)의 결합이었다. 실리주의자 새뮤얼 곰퍼스가 이끌던 당시 미국 노총은 사회당의 바람과는 달리 노동자 정당 창당에 동조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민주당 정부와 협력하는 데 맛들인 노총 집행부는 섣불리 영국 노동당식 실험에 나서서 기성 정당들과의 밀월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라폴레트 운동은 사정이 달랐다. 젊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진보 회의를 통해 라폴레트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한데다 이 정도 대중적 흐름이라면 유력한 독자 정당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싶었다. 노총은 이례적으로 라폴레트 후보에 대한 지지, 지원을 천명했다.
1924년 대선에서 라폴레트 후보는 438만 표, 16.6%를 획득했다. 정치 거점인 위스콘신 주에서는 1위를 했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투표용지에 '사회당 후보'로 나왔는데도 2위를 했다. 미국 역사상 진보 좌파 성향의 제3당 후보로서는 전무후무한 득표였다.
다음해인 1925년에 사회당은 대선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 정당을 창당하자는 안건을 진보 회의에 제출했다. 그러나 대선 기간과는 달리 노총 집행부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들이 결단하도록 만들기에는 500만 표로도 부족했나 보다. 사회당이 제출한 안건은 진보 회의에서 부결됐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라폴레트 의원이 노환으로 사망했다. 대선 운동의 피로가 노(老) 정치가의 건강을 급속히 악화시킨 것이다. 라폴레트 없는 진보 회의에는 이제 더 이상 어떠한 구심점도 없었다. 미국에도 강력한 진보 정당이 등장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이렇게 무산되고 말았다.
기존 대중운동의 혁신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사회당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지만, 이들의 진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새 정치 세력 구축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은 분명 노동조합이었다. 영국 노동당이나 캐나다 신민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운동이 뒤늦게라도 독자 정치 세력화에 나선다면 진보 정당이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1924년 라폴레트 선거운동으로 진보 정치의 성장 잠재력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선택 때문에 진보 정당 없는 정치 지형이 굳어졌다. "미국 노동계급과 민주당의 불임의 결혼"(마이크 데이비스)이 시작됐다.
라폴레트 바람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2015년에 미국에서는 돌연 샌더스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클린턴의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과 함께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샌더스는 대선 후보 경선을 접으면서 오히려 "정치 혁명은 계속된다"고 부르짖었다. 대선 본선에서는 클린턴의 당선(이라기보다는 트럼프의 낙선)을 돕는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민주당 내부 개혁 투쟁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독자 진보 정당의 길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기대가 크다. 하지만 자꾸 라폴레트 운동의 기억이 떠오른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던 그 때의 악몽을 과연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샌더스 바람을 출발 삼아 미국 현실 정치 안에 진보 세력이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누군지는 분명하다. 이번에도 이는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된 대중운동이다.
물론 샌더스 운동에는 이미 나름의 사회적 토대가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질서에 회의를 품게 된 청년층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개 기성 대중 조직들 바깥에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들 조직에 비판적이며 자기 세대에 익숙한 문법에 따라 새로운 대중운동을 표방한다. 스페인에서는 이런 흐름이 포데모스로 나타났고,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대표 당선으로, 미국에서는 샌더스 돌풍으로 나타났다.
21세기의 세계 상황에 더없이 어울리는 지지 기반이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샌더스 진영이 맞부딪힌 두 개의 거대한 장벽에서 이게 드러났다. 두 장벽이란 바로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지역 사회)다. 물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 안에도 샌더스 지지파는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엘리트들과 함께 '불임의 결혼'을 이어가는 지도부 아래서 다수는 클린턴 지지층으로 남았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두 장벽의 위력이 이러했다면, 이후 일상 정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싸우든 새 정당을 건설하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를 뒤흔들고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샌더스 운동은 청년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라폴레트 운동이 갇혔던 숙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란 지난 세대의 대중운동이 시민 사회에 남겨놓은 진지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들은 변혁의 진지라기보다는 월스트리트를 대변하는 민주당 주류의 진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바깥에서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은 이 오래된 진지들을 통째로 적으로 돌리거나 우회해서는 결코 미국 사회 전체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없다. 비록 수고롭더라도 이들 기성 대중운동을 혁신해서 새 세대 운동과 연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100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어떻게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 진영을 변화의 정치 쪽으로 끌어당겨야 하는 것이다. 샌더스 바람이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은 오직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게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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