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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잡으려면,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장석준 칼럼] 아옌데, 21세기 리더십의 길을 열다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 국민 투표가 실시되고 며칠 뒤(6월 26일)에 스페인 총선이 있었다. 선거 전 여론 조사 추이로는 신생 좌파 정당 포데모스(이번에는 공산당이 중심이 된 정당 연합인 '연합좌파'와 함께 '우니도스 포데모스'라는 선거 연합을 결성했다)가 기존 좌파 제1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제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1.6%포인트)로 이런 드라마는 실현되지 못했다. 작년 12월 총선과 마찬가지로 인민당(우파, 33.0%), 사회주의노동자당(22.7%), 우니도스 포데모스(21.1%)가 나란히 1, 2, 3위를 기록했다.

아쉽게도 꽁지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끈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무총장(이자 총리 후보)이 총리가 되는 모습은 당분간 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창당한 지 만 2년 만에 지지율 20%대의 강력한 정당으로 도약한 포데모스이니만큼 당장의 실패보다는 앞으로 이들이 써나갈 또 다른 역사가 더 주목된다. 우니도스 포데모스 지도자들의 나이(이글레시아스는 1978년생, 연합좌파 사무총장인 알베르토 가르손은 1985년생)를 보면,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이제부터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들이 만들어갈 역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물음에 힌트를 주는 이글레시아스의 발언이 있다. 선거 운동 중에 "당신의 정치적 모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글레시아스는 두 이름을 댔다. 둘 다 라틴아메리카의 전 대통령이다. 한 명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이고, 다른 한 명은 1970년에 칠레 대통령에 당선돼 '사회주의로 가는 칠레식 길'을 추구했던 살바도르 아옌데다. 아옌데와 무히카의 길, 이 길을 지금 포데모스가 뒤따르려 한다.

아옌데가 열고 포데모스가 뒤따르려는 길

▲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마침 아옌데의 전기가 우리말로 나왔다.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의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펴냄, 2016년)다. 나는 몇 년 전에 1970~80년대 좌파 정부와 초기 신자유주의의 대결 사례들을 다루는 책을 쓰다가 아옌데 전기로 참고할 만한 게 있나 찾아본 적이 있었다. 한데 아무리 검색해 봐도 영어로 된 전기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야 클라크의 책이 나왔다는 광고를 봤다. 모르긴 해도 영어권에서 나온 첫 번째 아옌데 전기가 아닌가 싶다. 바로 이 책이 <한겨레> 정인환 기자의 깔끔한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을 찾게 된 것이다.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이름은 어렴풋이나마 들어본 분들이 적지 않을 줄 안다. 1973년, 그것도 공교롭게 9월 11일(30여 년 뒤에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진 그날)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이에 끝까지 맞서다 장렬히 산화한 대통령. 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는 묘한 발언이나 한 대통령이나 홀로 몸을 피한 총리와 자주 비교되기도 하고, 광주 항쟁 마지막 밤에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지구 반대편 머나먼 나라 사람이지만, 결코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애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기억이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는 아옌데와 칠레 민중이 일진일퇴를 거듭했던 숱한 전투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다름 아니라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3년이 끝이 아니었던 것처럼 시작도 1970년은 아니었다. 아옌데를 후보로 내세운 사회당, 공산당 등의 선거 연합 '인민연합'이 1970년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까지 이미 투쟁과 모색과 시행착오의 긴 역사가 있었다.

청년 의사 아옌데가 대권 4수생 아옌데가 된 이 세월 동안 그를 이끈 한 가지 목표는 칠레에 사회 국가(복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칠레는 남미에서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나라였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광풍이 일 때에도 칠레에서는 선거와 의회 제도가 계속 작동했고 반파시즘 인민 전선(중도 우파 급진당+사회당, 공산당)이 집권하기도 했으니 웬만한 서유럽 국가보다 대의 민주제의 역사가 더 길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칠레는 좀처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어느 나라든 형식적 민주주의가 쟁취되고 나면 이 장치를 통해 어떻게 다수 대중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할지가 시험대에 오른다. 1920년대 초에 보통 선거 제도 도입으로 등장한 서유럽의 대중 민주주의 체제는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중이 바라는 경제 현실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에 10년 만에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 전쟁을 겪고 복지 국가가 들어선 뒤에야 서구 민주주의는 일단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즉, 노동, 복지 등 사회권을 보장하는 단계로 나아가야만 대의 민주제 자체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됐다.

서유럽과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했던 칠레 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열린 세상에서 서유럽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복지 국가가 정착된 데 반해 칠레는 농지 개혁조차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있었다. 서유럽과 칠레의 역사 경로가 갈라지던 이 시기에 인민 전선 정부의 보건부 장관을 맡고 있던 아옌데는 다른 누구보다 더 이 문제를 절실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칠레 사회의 과제는 분명했다. 그간 칠레가 성취한 대의 민주제의 지반에 발 딛고서 다음 단계, 즉 사회 국가 건설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칠레에서는 지구 자본주의의 등에 탄 거대한 자본 권력이 이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칠레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광물 자원(구리 등) 채굴권을 독점하여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로 유출하는 초국적 자본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칠레 사회에 단단하게 구축된 기득권 동맹이 일체의 사회 개혁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들에 감히 맞서고 마침내 이들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사회 국가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옌데를 비롯한 칠레 좌파는 전후 수십 년간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한 가지 핵심 과제에 뜻을 함께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초국적 자본이 소유, 경영하는 주요 광산의 국유화였다. 구리 광산 등을 전 국민의 공동 자산으로 만든 뒤에야 이 수익을 출발점 삼아 농지개혁에도 착수하고 복지도 늘릴 수 있을 것이었다.

아옌데는 바로 이 공약으로 1970년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세상의 흔한 정치인과는 반대로 이 공약을 철저히 이행해나갔다. 구리 광산 국유화를 단행했고, 노동권 보장과 복지 확대에 전념했다. 이런 개혁에 민심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1971년 지방 선거 결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평소 35% 정도의 득표에 머무르던 인민연합 소속 정당들은 지방 선거에서 약 50%를 득표했다. 좌파 정당을 한 번도 지지한 적 없던 중간층 가운데 상당수가 인민연합 정부 지지로 돌아선 것이다.

빛나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게 오히려 문제가 됐다. 아옌데 정부의 너무 찬란한 성과에 개혁의 적들은 초조해지고 말았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현대의 비극이다. 미국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고, 자본가 파업이 벌어졌으며, 결국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옌데는 때로 타협에 너무 목매단다고 같은 편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유연하게 반대파의 공세에 대응했지만, 이미 쟁취한 개혁 성과에 대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본 권력과의 일전에서 그는 단호했다. 목숨을 건 약속에 실제 목숨을 내던졌을 정도로 말이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분명히 지적하는 바이지만, 이것은 결코 패배는 아니었다. 승리와 패배란 인간의 규칙 안에서 판가름해야 하는 법이다. 쿠데타는 승리가 아니었다. 미국과 우파가 그토록 선전하던 대의 민주주의의 규칙 안에서 저희들이 승리할 수 없으니 민주주의라는 판 자체를 엎어버린 격이었다.

바둑판을 엎어버린 자들을 우리는 승자라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록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운명을 떠안았을망정 아옌데와 칠레 민중이 인류의 맨 앞에서 내딛은 한 걸음은 절대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 국가 건설을 위해 감히 자본 권력과 대결하는 리더십


사회과학 서적 전성기이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국내에도 칠레 인민연합 정부 사례를 다룬 책이 몇 권 나왔었다. 내가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책들을 통해서였다. 한데 이 시기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아옌데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 책들은 아옌데를 사회 변혁의 실패에 책임져야 할 유약한 지도자, 개량주의자, 의회주의의 환상에 눈 먼 인물쯤으로 그리곤 했다.

그러나 아옌데 대통령 시절 민중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은 사뭇 달랐다. 아리엘 도르프만, 이사벨 아옌데,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로베르토 볼라뇨, 루이스 세풀베다 등의 칠레 작가들은 하나같이 사랑과 존경의 어조로 '대통령 동지'를 회상했다.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칠레의 전투>가 전하는 아옌데의 생전 모습도 그러했다. 거기에는 정치인과 연예인의 직업상의 차이가 모호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생경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상과 결의에 찬 한 사람의 정치가가 있었다.

클라크의 전기를 읽으며 이러한 인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아옌데는 자본 권력에 감히 맞선 '사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 행위를 때맞춰 감행할 줄 알았던 '여우'이기도 했다(니콜로 마키아벨리).

지방 선거 승리 후 아옌데는 인민연합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헌법 개정 국민 투표를 밀어붙이자고 주장했다. 승기를 잡았을 때 부단히 밀어붙여야만 하는 법이다. 인민연합의 대선 공약대로 국가 기구 민주화를 위한 개헌을 국민 투표에 붙이는 승부수를 띄웠더라면(정부안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보는데) 인민연합 정부는 정국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당과 공산당 집행부 다수가 국민 투표를 주저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주장은 관철되지 못했다.

급진 좌파 성향 논자들은 이후 아옌데가 중도파인 기독교민주당에 연립 정부 구성을 제안하고 그 협상에 주력했던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아옌데의 이 노력은 야당이 분열된 상황에서 그나마 개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그 전에 아옌데의 국민 투표 방안이 성사됐더라면 굳이 이런 타협 전술에 의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단계 혁명론을 주창하던 사회당 좌파(당시의 당권파)도, 2단계 혁명론을 내세우던 공산당도 정치의 생리에 대해서는 아옌데만큼 명철히 체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혁명론 공식이 옳은지를 놓고 칠레 사례를 평가하는 글들에서 결코 배울 수 없었던 진실이기도 하다.

이런 진실들을 확인하고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이제 더 이상 아옌데가 한 세대도 더 전의 옛날 사람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서 미래의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뭔가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날 세계인의 공통 과제는 껍데기만 남은 민주주의에 다시 속을 채워 넣는 일이다. 한 마디로 저마다의 조건에서 사회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데 그러자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30여 년을 거치면서 더욱 집중되고 거대해진 저 자본 권력과 대결해야만 한다. 사자의 용기로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실제로 무릎 꿇리기 위해 온갖 여우의 수에 능통해야 한다.

미국의 '샌더스 정부'는 그렇게 월스트리트와 싸워야 한다. 영국의 '코빈 노동당'은 그렇게 시티(런던의 금융 중심가)와 싸워야 한다. 스페인의 '우니도스 포데모스 정부'는 그렇게 유럽연합 엘리트들과 싸워야 한다. 이 땅에서도 역시 그렇게 재벌 지배 연합과 싸워야 한다. 아옌데와 칠레 민중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권한다. 21세기에 필요한 정치 리더십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살바도르 아옌데>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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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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