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나섰다. 인터넷, SNS 등 공론장을 휩쓸고 있고, 정의당을 직격한 '메갈리아' 논란에 대해서다. (☞관련 기사 : 메갈에 대한 마녀 사냥, 이래도 되나?)
심 대표는 29일 오후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렸다. 현재 정의당 내부에서는 당 문화예술위가 게임회사 '넥슨'으로부터 '목소리 삭제' 조치를 당한 성우에 대해 지지 논평을 낸 것을 공격하는 이들과, 문예위 논평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정의당 지도부의 논평 철회 결정이야말로 잘못이라는 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예위를 공격하는 이들은 '당원비대위'를 자처하며 인터넷 당원 게시판에서 200여 명의 연서명을 모았고, 이에 대한 비판자들은 '여성주의자 당원들'이라는 이름으로 130여 명의 연서명을 모았다.
심상정, '당원비대위' 요구 일부 수용
심 대표는 당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한 게임 회사의 성우 교체와 이에 대한 문예위 논평으로 당이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며 "당의 하부 단위에서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고, 또 논평으로 야기된 당 안팎의 파장에 대해 중앙당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의 최종 관리·책임자로서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리게 된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사과했다.
이는 '당원비대위'가 요구한 △당 지도부의 사과 및 입장 표명과 △'해당 행위자'(문예위 논평 작성 책임자 및 동조자들)에 대한 징계 가운데 '사과' 부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심 대표는 또 "조직 혁신 작업 와중에, 이제 정비를 시작하고 있는 부문위원회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해 참 아쉽고 아프다"면서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개개인의 당적 책임의 문제가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사실상 문예위 논평 발표와 관련된 당직자들을 공개 질책했다.
심 대표는 그러나 "개인에 대한 징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권한에 따른 책임을 제도화하는 일"이라며 '당원비대위'의 징계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혐오적 방식 반대 선언? 성차별 개선 책임이 전제돼야"
심 대표는 "이번 혼란과 갈등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이 당혹스러웠다"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이 훨씬 더 허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당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당 게시판을 보니, 지도부가 이번 일을 대충 넘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신이 큰 것 같다. 또 당이 표방해 온, 성 평등과 같은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는 것 같다"고 '당원비대위'와 '여성주의자' 그룹 양 쪽의 비판을 언급한 후 "상임대표로서 둘 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다짐을 뒀다.
심 대표는 "정당은 사회운동 조직들과 달리, 문제 제기 집단이 아니라 문제해결 집단이 되어야 한다"며 "기존의 갈등 라인을 재확인하고 자신의 신념으로 대중을 계몽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우리 당이 성 평등 가치 실현을 중심 과제로 삼고 있는 정당이고, 또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혐오적 방식에 반대한다는 선언에는 동시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 당의 책임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라고 사실상 '당원비대위' 그룹을 겨냥했다. 이는 '정의당이 메갈리아에 반대한다고 공식 천명하라'는 이들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리 당이 성 평등 사회를 위해 앞장서 실천하고, 우리와 함께하면 여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극단적 방법을 제어해 나가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로 심 대표는 사실상 '여성주의자' 그룹을 향해 "우리 당이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아직 뚜렷한 실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성 대표로서 이 점에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젠더 의제에 대해 조직적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달래면서도, "과거 진보 정당의 실패는 외부의 요인보다는 내부의 요인에서 주로 일어났다. 옳고 그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사소한 의견 충돌로 조직적 분열을 키웠던 과거 진보 정당의 실패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심 대표는 양쪽 모두를 향해 "당내 존재하는 다양한 선호와 이견은 다른 거대 정당이 갖지 못한 정의당의 자산"이라며 "이견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가기 위한 첫 번째 사업으로 전당적 교육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내부 상황, 어땠길래?
그러나 심 대표가 이같은 글을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당원비대위' 성향에 가까운 당원들은 "그래서 정의당은 메갈당이냐 아니냐", "왜 정의당은 (메갈리아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할 수 없다는 것인지 글을 보고 망연자실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정의당은 문예위에 대해 사실상 당 지도부 차원에서 문책성 조치를 단행했다. '여성주의자' 그룹 등 당 내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취해진 조치였다. 정의당 지도부는 전날 상무위원회에서 문예위를 사고위원회로 지정하고, 공석인 위원장을 대신해 위원회를 이끌어 온 부위원장들 대신 문예위를 김세균 당 공동대표(서울대 명예교수)가 직접 관장하기로 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현재 문예위의 위원장 외 임원은 위원회 내부의 임의 직책으로서 당 대표의 임명을 받은 자가 아니"라는 입장이기에 이번 결정을 기존 부위원장들에 대한 '당직 박탈'이나 '해임'으로 부를 수는 없지만, 효과는 같다. 또 당 상무위는 "최근 문예위 내부에서 임의로 구성한 임원들이 당 안팎으로 여러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사실상 부위원장들을 공개 질책했다.
다만 정의당 지도부는 "징계는 당기위원회라는 별도의 규정과 절차가 있는바, 집행기구인 상무위가 별도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한창민 당 대변인은 "당원들이 당기위에 (다른 당원에 대한) 징계를 제소할수 있고, 그 부분은 당기위가 판단할 것이지 지도부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라며 "물론 중앙당에서도 (중앙당 명의로 특정 당원에 대한) 제소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지 않기로 상무위가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당 지도부의 결정은 '당원비대위' 그룹의 요구가 시발이 된 것이다. 전날 상무위에서 이혁재 당 사무총장은 '당원비대위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 보고하기도 했고, 이 보고 내용을 <여성신문>이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적잖은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이 작성한 문서에 "문예위를 사고위로 지정했으며 관련 당사자들이 문예위 활동을 지속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문예위 3인에 대해 (중앙당이) 당기위에 제소할 예정이다" 따위의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무위 회의에 참석한 지도부 내에서도 이 총장이 작성한 문서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며 난색을 표하거나 비판하는 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로는 공식 발표된 '상무위 결정 사항'으로 대체됐다. 한창민 대변인은 상무위 차원에서 직접 '당원비대위'에 대해 별도의 답변을 하는 대신 상무위 결정 사항을 공개 발표한 것으로 갈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 내 논쟁 가라앉을까? '난망'
정의당 내에서는 '당원비대위' 및 이들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성주의자' 그룹에서는 '무책임한 논평 철회에 대한 여성주의자 당원들의 입장'이라는 집단 논평을 내어 "당 문예위 논평은 철회되어야 할 만큼 중대한 문제 또는 오류를 담고 있지 않다"며 "그럼에도 '보고 체계' 같은 절차상 문제를 꼬투리 삼아 논평을 철회한 것은 폭력적이고 비겁한 결정"이라고 당 지도부를 정면 비판하고 있다.
이들 그룹은 "이 문제가 온전히 젠더 이슈라고 설명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면, 역으로 이것은 젠더 이슈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주장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이번 사태로 당내 여성주의는 공격받고 있고, 마녀사냥을 다시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가 '반(反)메갈리아'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연서명에 동참한 장석준 전 노동당 부대표는 "저는 정의당에서는 평당원"이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당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논쟁하는 사람들이 당원 중 몇 퍼센트나 되는지 모르겠다. '당원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데 과장된 면이 있고, 당 지도부가 이들('당원비대위')의 목소리에 과도하게 귀를 기울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역시 정의당 평당원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전날 <매일신문> 칼럼에서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남자들은 성우의 목소리를 (게임에서) 삭제하고, 가수 안예은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정의당의 공식 논평을 내리게 했으며, 몇몇 웹툰 작가의 입을 틀어막았다"라면서 "남의 밥줄 끊어놓겠다는 비열한 협박으로 얻어낸 '×아치' 같은 승리"라고 맹비난했다. (☞진 교수의 <매일신문> 칼럼 : 나도 메갈리안이다)
반면 '당원비대위' 쪽에서도 당 지도부가 문예위 관계자들을 더 강하게 징계해야 하는데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앞서 28일 오후 6시를 시한으로 정하고, 당 지도부 사과와 관련자 징계 등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심상정·김세균·나경채 공동대표단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까지 했다. 심 대표가 이들의 요구 중 '사과' 부분은 받아들이고 '징계'는 불가하다는 입장글을 올린 29일 오후 이후에도 이들은 연이어 실망스럽다며 탈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당원비대위'는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구 당권파였던 오병윤 의원 등이 강기갑 전 의원이 이끈 '혁신비대위'에 대항해 만든 조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2012년의 '당원비대위'와 현재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서 생겨난 '당원비대위'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인다. 당시 당원비대위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모두 통합진보당에 잔류했고, 혁신비대위 측 인사들은 후에 통진당을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세웠다. 정의당은 진보정의당의 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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