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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에 대한 마녀 사냥, 이래도 되나?

[기자의 눈] 정의당의 '논평 철회' 사태를 보며

의석수 6석인 원내 유일의 '진보 정당' 정의당이 공개적으로 발표한 당의 입장을 철회하는 등 내홍을 빚었다. 이른바 '메갈리아 성우' 사태와 관련해 발표했던 당 문화예술위원회 차원의 논평이었다.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지난 19일, 유명 게임 업체 '넥슨'은 자신들이 발매한 게임에서 한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성우 김모 씨가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이 티셔츠가 여성혐오 반대 그룹을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취지로 제작·판매된 것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이에 다음날인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는 "넥슨의 결정이 부당하며 철회돼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문예위는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그 개인의 직업 활동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유로 직업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당연한 권리는 배제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넥슨은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논평은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삭제된 문예위 논평 전문은 기사 하단 박스 참조)

삭제 이유는? 정의당의 일부 당원들과 다수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 논평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당원들은 탈당계까지 제출했고, 이 과정에서 탈당계를 제출한 당원들의 계좌에서 출금일에 맞춰 당비가 자동이체된 것이 '강제 출금'이라는 지엽적 해프닝까지 있었다. 결국 정의당은 25일 오후 당 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문예위 논평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정의당은 상무위 회의 결과 "당사자인 예술인(성우)은 지난 19일 본인의 블로그에 해당 회사와 원만하게 합의한 사실을 밝힌 바 있고, 당사자의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며 "20일자 (문예위) 논평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당의 논평으로서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확인했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정의당은 "이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이 '친(親)메갈리아'인가 아닌가 하는 수많은 논쟁만 야기시키고 '부당한 노동권 침해'라는 본 취지의 전달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 논평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의당 상무위 입장 바로보기)

당 문예위의 논평은 다른 보도자료들처럼 출입기자들에게 메일로 발송됐으나, 이 논평을 철회한다는 상무위 결정은 당 홈페이지와 SNS에만 공지됐다.

메갈리아가 뭐길래?

이 사태에서 눈여겨볼 점은, 정의당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거기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고 피해 갔다. '메갈리아'가 대체 어떤 논쟁의 중심에 있기에, 박근혜 대통령이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까지 '대차게' 비판하는 정의당조차 입장을 내기 꺼려하는 걸까?

정의당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성우 김모 씨에 대한 논란은 처음부터 '메갈리아'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넥슨의 '목소리 삭제' 조치나, 이를 옹호한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메갈리아는 비윤리적 집단이므로, 이 집단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은 문제가 있다.'

정의당 문예위의 논평은 (전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메갈리아의 성격에 대한 언급은 신경 써서 피했다. 다만 '메갈리아를 지지한다'는 것이 하나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런 특정한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것이 그가 문화예술 노동자로서 받는 처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식의 다소 건조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최소한 '메갈리아 지지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정치적 주장'이라는 판단이 전제된 것으로 봐야 한다. 만약 성우 김 씨가 '일베' 티셔츠를 입었다거나,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거나,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다면 정의당 문예위는 이런 논평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당의 주장처럼 거기에 아무런 가치 판단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민중은 개돼지'라는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이 공공영역 노동자(공무원)이라는 나향욱 전 국장의 처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성립해 버리게 된다.

모두 아다시피 '메갈리아'는 여성혐오(미소지니)에 대한 '미러링'을 표방하며 만들어진 사이트다. 한국 여성을 '김치녀'라고 비하하면서 외국 여성과 한국 여성을 비교하는 여성 대상화에, 이들은 한국 남성을 '한남충'이라는 비하적 신조어로 지칭하며 맞선다.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여성, 페미니즘에 공감을 표하는 여성, 여성 차별의 경험을 털어놓는 여성을 '그건 너희들이 못 생겨서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공격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에 대해, '메갈리아'는 '너희 남자들이 그렇게 못나게 구는 것은 너희 스스로 남성적 매력이 없다는 열등감 때문이다'라는 조롱으로 응수한다. ('남성적 매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없는지 묘사하는 '메갈리아'의 언사는 언론 지면에 소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기에 생략한다. 다만 '열등감'이란 단어에서 충분히 추측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넥슨과 페이스북, 메갈리아 반대를 공언하는 네티즌들은 이 지점을 붙잡아 메갈리아를 공격했다. 위의 사례에 대입하자면 '남성적 매력 운운하다니, 이건 인신공격이고 성폭력이다' 정도가 된다. '혐오에 혐오로 대항했다', '메갈리아가 하고 있는 것도 폭력이고 혐오다' 등의 주장이 이와 같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도 "메갈리아가 하고 있는 방식이 오히려 여성주의(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를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은 이 한 장의 사진이다.

'메갈'은 '운동권'이다

과연 '메갈리아'가 하고 있는 것이 '남성 혐오'인지, '남성 혐오'라는 말이 성립 가능한지 등에 대한 좀더 본질적인 논쟁은 미뤄두고라도, '메갈리아'에 대해 이뤄지고 있는 이런 공격은 본질적인 것보다 부차적인 것에, 주장의 대의보다 형식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있을 수 없는 공격은 아니지만, 과하다는 것이다. '너는 메갈이냐, 아니냐?'라는 마녀사냥 식 질문이 SNS에 떠돈다. 뭔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주장을 하려면 '나는 메갈은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아야 그나마 받아들여질까 말까 하는 분위기다.

'메갈리아'가 곧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메갈리아'가 동성애 혐오, 유아에 대한 성적 대상화, 고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 극단적인 공격적 성향의 언사 등의 악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물론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중대한 문제가 있다. '메갈리아'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빠져 있다. 공격자들의 대다수는,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의지가 없다.

이는 과거 '운동권'들에게 가해졌던 비난과도 흡사하다. '운동권'들은 결코 '노동자 정치', '반미', '통일' 따위의 그들이 외쳤던 구호 때문에 비난받지 않았다. 대학 신입생들에 대한 위계와 폭력, 동아리방과 MT(수련회) 등에서 이뤄지는 '혼숙', 경찰관과 프락치 의심자들에 대한 폭력 행위, 도로교통법 위반, 화염병 사용 등으로 인한 방화, 아름답고 깨끗한 길거리를 전단지와 벽돌과 자신들의 피로 더럽힌 파렴치함 등으로 비난받았다.

국회에 의석을 가진 정당이, 민심(여론)과 '당심'(당원들의 항의와 반발)을 억누르고 이들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메갈리아' 사태와 관련해서는 정의당이 문예위 차원의 논평을 냈다가 그마저 철회했을 뿐, 다른 정당은 이번 사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80년대에 어떤 정당이 '전대협을 지지한다'거나, 90년대 야당이 '한총련을 지지한다'고 했다면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 게 잘한 짓이냐", "내 아들딸이 대학 가서 혼숙 하고 다녀도 좋다는 것이냐", "대학교를 불태우고 경찰을 때린 게 잘했다는 거냐", "집회 쓰레기는 너희가 치워라" 등등의 온갖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다.

2000년대까지도 이런 공격은 마찬가지로 행해졌다. 노동조합은 '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의 주장 때문에 공격받지 않았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고급 승용차, 이들이 내뱉는 거친 언사, 노조 선거에서 저질러진 부정, 구사대나 '프락치'에 대한 쇠파이프 폭행, '귀족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 도심에서의 폭력 불법 시위 등이 공격의 이유였다. '메갈리아'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비난과 마찬가지로, 이들 '운동권'과 노조가 저지른 온갖 악덕들 역시 '사실'이다. 기존 정당, 제도권 정당은 섣불리 이들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이 중심이 된 진보 정당, 민주노동당의 등장 전까지는 그랬다.

정의당이 이번 문예위 논평 철회 사태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의당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강상구 정의당 대변인. 5.24)를 늘 비판해 왔다. 하지만 정의당 내부에 '여성혐오의 언어를 차용한 메갈리아의 언어 역시 혐오발화적 성격을 가진다'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자유주의적 문제 제기가 있고, 이런 목소리가 당 지도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도 '상향식 당내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좋은 일이다. 다만 자유주의적 시각이 대개 그렇듯,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전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돌아보는 반성은 여기서 빠져 있다.

정의당의 논평 철회 결정은, 그래서 역으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여성혐오와 '남성 혐오'를 모두 비판하거나, 진보적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장으로 인해 져야 할 정치적 책임까지 모두 세심하게 고려하는 정당은 이미 원내에 2개나 있고, 그 둘 모두 정의당보다 의석 수가 많다. 어쩌면 '메갈리아'가 저지르고 있다고 공격받는 온갖 악덕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표현조차 다수의 '메갈리아 공격자들'에게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점에 주목하는 게 '진보 정당'의 본령은 아닐까. '진보 정당'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김세균 정의당 공동대표. 3.21)하는 것이라고 그들 스스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혹시 그래서 '진보정의당' 아니라 '정의당' 아니냐면 할 말은 없다.

다음은 현재는 삭제된 정의당 문화예술위의 7월 20일자 논평 전문(全文).


지난 19일, 넥슨은 자사에서 유통하는 두 게임 '클로저스'와 '최강의 군단'에서 성우 김○○ 씨의 목소리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김 씨가 SNS에 올린 사진이 발단이었다.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인증한 사진이었는데, 해당 티셔츠가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공동 구매를 진행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넥슨의 결정이 부당하며, 이러한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출연료는 지불했으니 넥슨의 조치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노동으로 빚어진 결실이 부당한 사유로 배제되는 것에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그 개인의 직업 활동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유로 직업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하다.

김○○ 씨가 어떤 의견을 가졌느냐는 성우로서 김○○ 씨의 자격이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성우의 개인적인 배경이 성우가 연기한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 또한 아니다. 개인적인 공간을 통해 나타난 김○○ 씨의 입장이 논쟁적일지언정, 공공선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토론이었지, 일방적인 배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연예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인색했다. 정치적 의견이 활동을 제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더라도 상당한 부담을 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어진 방송인 김제동 씨에 대한 외압과 사찰에 대해 부당함을 느꼈다면, 김○○ 씨가 겪은 일에 대해서도 부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의견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하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37조의 정신도 잊지 않아야 한다. 당연한 권리는 배제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넥슨은 명심해야 한다.

2016년 7월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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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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