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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남았으면 '이건희 성매매' 보도 못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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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 남았으면 '이건희 성매매' 보도 못 했죠"

[인터뷰]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보도 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뉴스타파>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보도다. <뉴스타파>의 또 다른 이름인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에 걸맞게, 3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탐사 보도한 결과물이다. 대다수 언론사의 대표적 성역인 삼성,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민낯을 <뉴스타파>는 거침없이 들춰냈다.

성역 없는 보도로 대중의 찬사를 받고 있는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 취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역 있는 보도'로 수년째 지탄 받고 있는 한국방송공사(KBS) 출신 기자들이다. 이 가운데 심인보 기자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KBS기자협회에서 보도개입 진상조사단 간사를 지낸 바 있다.

<추적60분> '천안함의 의문' 편 제작에 참여했고,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십알단'고발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 등 KBS에서 활약을 펼치던 그는 결국 2014년, 추악하게 무너져 내리는 공영 방송을 뒤로 한 채 <뉴스타파>로 적을 옮겼다.

심 기자는 22일 <프레시안>과 한 전화 통화에서 "KBS에 남았으면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는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KBS 소속 일원이었다면 취재는 물론이고, 제보조차 받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이날, KBS는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관련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했다가, 다시 석 줄짜리 아주 짧은 기사로 다시 올려 논란을 낳았다. 심 기자는 "KBS 후배들이 '이제는 정치 권력뿐 아니라 자본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구나'라고 하더라"며 한탄했다.

다음은 심 기자에게서 들은 이건희 회장 성매매 보도 뒷이야기, KBS 관련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뉴스타파

"삼성 해명, 이건희 사생활 문제로 국한시키고 있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취재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취재 보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무엇이었나.

심인보 : 우리가 받은 동영상의 진위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충격적인 내용이라도 이게 가짜라면 어마어마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진위를 밝히는 데 가장 공을 들였고, 취재 이후 보도 과정에서는 법적으로나 언론 윤리적으로 내용이 민감하다 보니 문제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폈다.

프레시안 : 취재에 착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심인보 :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영상을 받았는데,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보 관련한 내용은 지금은 밝힐 수 없다. 적당한 시점이 되면 보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이 보도로 인해 사드와 같은 다른 중요 사안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심인보 : 우리는 언론사다. 정당도 아니고, 운동단체도 아니고, 비당파를 추구하는 탐사보도 매체다. 정치적인 고려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취재해서 의미 있는 사실이 확인되고 제작이 완료되면 방송을 낸다. 다 제작이 됐는데 일부러 여러 사안들을 고려해서 방송 일정을 맞추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청와대나 국정원에서 일부러 우리 쪽에 흘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더라. 우리는 4월에 제보를 받고 취재를 했다. 청와대나 국정원의 기획설이 맞으려면, 그때 3개월 뒤인 지금의 정국을 예상했다는 건데,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이다.

프레시안 : 보도 이후 혹시 삼성 쪽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나.

심인보 : 보도 전에는 접촉을 했는데, 보도 이후에는 삼성 쪽에서 우리 전화를 안 받는 상황이다. 삼성이 낸 입장도 다른 언론 기사를 보고 알았다.

프레시안 :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여서 회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심인보 : 정확히 해명해야 할 부분이 빠졌다. 우리는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에 개입했을 정황까지 보도했다. 앞부분(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은 삼성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으니 인정을 한 것일 테고, 사실 더 중요한 건 뒷부분(삼성 개입 의혹)이다. 그런데 정작 뒷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 회장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국한시키면서 기업으로서의 삼성이 져야 할 수도 있는 법적인 부분을 피해가고 있다.

프레시안 :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나.

심인보 : 후속 기사는 고민 중이다. 사실 삼성이 성매매 의혹에 대해 인정할 줄 몰랐다. 만일 삼성이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후속 보도가 중요할 텐데, 지금 단계선 그게 필요 없어진 셈이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후속 기사로 내야 할지 여론도 살펴보면서 고민하고 있다. 아직.

▲KBS에서 다룬 이건희 성매매 의혹 기사. 3문장짜리 단신 기사로, <뉴스타파>라는 명칭 대신 '한 인터넷 매체'로 표현했다.

"삼성, 보도 나오기 전 미리 여러 언론사에 전화"

프레시안 : KBS에 계속 있었으면 이런 보도가 가능했을까.

심인보 : 일단, KBS 소속이었으면 제보가 오지도 않았을 거고, 왔다 하더라도 추가 취재가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 우리한테 들어온 제보의 형태는 성매매 의혹을 확증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추가로 취재하면서 보도 단계까지 이르게 된 건데, KBS에 있었으면 추가 취재를 하지도 못 했을 것이고, 설령 취재에 성공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방송을 내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대다수 언론사가 침묵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심인보 : 저희 예상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은 돈 문제, 재정 문제니까. 미리 언질도 받았다. 보도가 어젯밤 10시쯤 나갔는데, 그에 앞서 저녁 6~7시경 몇 군데 전화를 받았다. 삼성에서 '오늘 저녁에 <뉴스타파>에 삼성 관련 보도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건 받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거다. 그래서 기자들이 대체 무슨 기산데 삼성에서 저렇게 하느냐고 확인 전화를 한 거다. 삼성에서 저런 전화를 하는 건 보통의 일반적인 출입처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언론사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출입처이지 않나. 그런 삼성이 아무래도 전화를 여러 군데 돌린 것 같다. 여러 군데서 저한테 연락한 걸 보면.

프레시안 : KBS에서도 기사를 올렸다가 내리는 일이 있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기사를 보류한 것'이라는 해명을 했고, 아주 짧은 단신 기사로 다시 올렸다.

심인보 : KBS 후배들한테서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정확한 팩트(사실)는 아니지만. KBS 같은 경우는 이명박 정부 이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통제와 압박은 많이 받았으나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압박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믿어왔다. 저도 그렇고 선후배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고 몇몇 후배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자본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구나'라고.

저희가 싫어서 (기사를) 안 받았을 수도 있고, 정말 신중한 취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우리는 보도에서 사실관계도 철저하게 밝혔기 때문에 신중함을 기한다는 이유로 안 받는 건 정당한 사유는 아닌 것 같다. 기사를 내린 건 아무래도 KBS 수뇌부의 세계관과 연결된 문제가 아닐까 짐작한다.

ⓒ프레시안(서어리)

"KBS, 2년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프레시안 : KBS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보도 개입설을 입증하는 '이정현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이정현 의원은 보도 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심인보 : 기본적으로 보도 국장은 사장이 임명하고 KBS 사장은 정부 여당이 사실상 임명하는 자리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홍보수석이었던 이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게 단순히 읍소나 부탁 혹은 오보를 바로잡으려 한 전화였을까. 삼성이 언론사에 '<뉴스타파> 기사 받지 말라'고 한 게 단순한 부탁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만일 단순한 읍소라면 국장이 녹음했을 일도 없었을 거다.

프레시안 : KBS는 이정현 녹취 파일 공개 관련 보도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기자에 대해선 보복 성격의 인사 발령을 냈다.

심인보 : 그렇지 않아도 (지방으로 발령 난) 그 후배와 엊그제 만나서 술 마셨는데, 일단 안타깝다. 사실 KBS라는 틀 안에서는 기자들이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단이 없다. 기껏해야 외부에 글 쓰고 기사 가지고 싸우는 그 정도다. 지난 몇 년 동안 파업이나 제작 거부나 싸움 수단으로 다 한 번씩 해봤다.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성과 없었고, 점차 전선만 밀려나는 상황이다. 지금도 이 건을 가지고 파업을 해야 하지 않냐, 제작거부라도 해야 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전 못 하겠다.

프레시안 : 본인이 나가기 직전 상황과 지금의 KBS 상황을 비교하자면 어떤가.

심인보 : 제가 나갔던 2년 전보다 훨씬 더 안 좋아졌다. 심각하다. 최근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후배들한테서 종종 연락을 받았다. 수뇌부와 기자들 사이에 예전엔 유지되었던 상식의 수준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다. KBS 기자들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프레시안(서어리)

프레시안 : KBS를 나오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심인보 : 길환영 사장을 퇴진시키고 난 후, 젊은 기자들 사이에 '사람을 바꾸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수용이 돼서 TF 안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전혀 관철이 안 됐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좌절했다. KBS기자협회에서 보도개입 진상조사단 활동도 하고 대안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KBS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좌절되고 나니, KBS가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그땐 내가 이미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프레시안 : <뉴스타파>로 옮긴 후 기자 생활에는 만족하는가.

심인보 : <뉴스타파>는 기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예전만큼의 대접은 못 받지만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 가서 대접받으려고 기자 생활하는 건 아니지 않나. <뉴스타파>는 기자가 취재할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지원해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고, 취재한 것에 대해 팩트가 틀리지 않고 기사 가치만 있다면 뭐든 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축적된 탐사보도의 노하우가 있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너무나 일하기 좋다. KBS에 있을 땐 취재에 들이는 공력과 취재를 한 것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설득하기 위한 공력의 비율이 3 대 7 정도 됐다. 취재보다 더 많은 힘을 방송 관철시키는 데 써야 했다.

프레시안 : KBS가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을까.

심인보 : 마침 어제 방송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일단은 KBS 지배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마 여러가지 안이 있을 거다.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 선출 방식이라든지, 임기 등을 잘 조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사장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되, 정권 절반 시점에서 바꾼다든지 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제도적인 장치 없이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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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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