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재갈들
땡 아홉시 시보가 떨어지기 무섭게
쏟아지는 푸른집 소식을 담기에
튀비 화면은 언제나 모자란다
채 활짝 피지 못한 사백열여섯 송이 꽃들
제주 해군기지로 가는 쇳덩이를 베고
차가운 맹골수도에 잠든 모습
한 자락이라도 마이크로 옮기려 해도
앵무새의 말들 불쑥 끼어들어
오리무중 주워들을 수 없다
강남 룸살롱의 음탕만 도도리표를 단 채
며칠째 미궁을 들락거리고 있다
엎드려라 엎드려라
차가운 칼끝을 겨눈 사드 레이저 앞에
성주 참외들 제철 모른 채 시들어도
새로 출시된 포켓몬 가능 지역을 찾아
속초로 모여드는 게이머들 부산한 소음
말풍선을 팽팽하게 부풀어 올린다
끊어진 백두대간을 이어 하나로 잇는 말들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려 사라지고
다시 한 사람을 위한 말의 성찬으로
겹겹이 차린 상은 언제나 비좁다
그 거짓의 벽을 넘어 새벽이 오는 건
재갈 물려도 상처를 마다않으며
행간에 숨어 견디고 있는
금싸라기의 말들 덕분이다
99간 처마와 치마 사이에 묻혀 버렸을
황제들의 흉계와 목마른 그리움
수천년 넘어 전해질 수 있었던 건
궁형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사마천이 피로 써내려간 죽간 덕분이다
문득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범람하는 앵무새의 언어들 저편
차가운 칼에게 상처를 맡기며
그가 지킨 순금의 언어 하나
무기의 울울한 숲을 넘어
끊어질 뻔한 시간을 잇는다
꼬박 뜬눈으로 어둠을 밝힌 사람들에게
깨끗한 새벽 빛을 안긴다
시작노트
군부독재 시절에 횡행하던 '보도지침'이 재등장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들이 누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동안 위정자의 행적은 오리무중이고, 국민들의 빈약한 유리지갑을 비웃으며 머슴들은 검은 돈을 서슴없이 챙기기에 바쁘다.
사정이 이런데도 언론들은 재갈이 물린 채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일러주는 대로 말하고,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 속보가 톱뉴스가 차지하는 세상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다.
이런 난세에 즈음하여 궁형의 쓰라림을 당하면서도 황제의 전횡과 음탕을 죽간에 새겨넣은 사마천을 생각한다. 상처를 마다않으며 붓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검은 장막 걷히고 깨끗한 새벽 해가 뜰 것을 믿기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