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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의역 참사 전엔 전혀 안 만나줬죠"

[박점규의 수다] 서울지하철 비정규직 유성권 지부장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 긴 여행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들어온 전동차. 1500볼트 전기 공급이 차단되면 그는 공구가방을 들고 열차에 오른다. 형광등을 갈고 고장 난 안정기를 바꾼다. 풀린 에어컨 필터 나사를 조이고 손잡이를 교체한다.

그가 차량 내부를 정비하는 동안 다른 정비사들은 차량 지붕과 밑바닥을 살핀다. 하루 운행을 마친 전동차를 정비하는 일을 ‘일상 정비’라고 부른다. 2010년부터 이곳에서 정비사로 일하고 있는 유성권(38)씨. 그는 서울메트로 소속이 아닌 ‘프로종합관리’라는 하청업체 소속이다. 그는 서울지하철노조 비정규직 지부장이다.

안전문을 고치던 열아홉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5월28일 구의역 9-4번 승강장. 그날부터 성권 씨는 어떻게 한 달을 보냈는지 모른다. 광화문의 후미진 골목 선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프레시안(최형락)

"구의역 참사 이후 하루 전화만 150통"

박점규 :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유성권 : 구의역 참사 이후 하루에 전화만 150통 정도씩 받았다. 받지 못한 전화까지 하면 200통이 넘는다.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도 세 번이나 참가했고, 7월1일에는 더민주당이 정부 관계자들까지 불러서 하는 토론회에 나간다. 노조활동시간이 없기 때문에 전동차 정비를 하면서 기자회견, 회의, 인터뷰를 했다.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린 진상조사단에도 들어간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지냈다.

박점규 : 서울시청 앞 천막농성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떤가?

유성권 : 지난 6월14일 서울시에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천막을 쳤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이 돌아가고 비정규직만 남자 경찰이 천막을 강제로 철거해 빼앗아갔다. 이를 막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병원에서는 금이 간 것 같다고, 약물을 투여해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하자고 하는데, 시간이 없다. 병가를 쓰면 월급이 안 나오니까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다.

박점규 : 노동조합 일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유성권 : 2011년 가을, 회사에 근로계약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12월에 나가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3년 계약직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를 내보내고 새로운 전적자(서울메트로 출신)를 받으려고 한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서울지하철노조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당신네는 여기서 해고되면 안 된다, 노동조합 만들어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좋은 회사도 아닌데, 무턱대고 만들어서 될까 싶었다. 고민 끝에 노동조합 교육을 받고 2012년 2월17일 조합원 셋이서 노조를 만들었다. 다른 동료들은 노조 만들면 바로 해고된다는 얘기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 무렵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우리는 동료들 탄원서를 제출하고 다산콜센터에 민원을 접수했다. 여러 방면으로 서울시에 살려달라고 했다. 서울시에서 비정규직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고용 승계하라고 해서 살아남았다. 그랬더니 조합원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조합원이 51명이다.

박점규 : 그 뒤로 어떻게 보냈나?

유성권 : 하청업체는 교섭에도 나오지 않았다. 전적자 위주로 만든 노조와 교섭하겠다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시정 진정을 냈다. 당시 성북동에 있던 시장 공관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생각해보면 오만 짓을 다 한 것 같다. 서울시가 2015년 4월부터 경정비 업무를 정규직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첫 번째 약속이었다.

그런데 서울메트로가 도시철도공사와 통합 논의를 이유로 정규직 전환을 보류했다. 2015년 3월부터 서울시청역 지하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중재에 나섰다. 4월29일 서울메트로 사장, 서울시 교통본부장, 서울시의원 4주체로 경정비 직원들을 2017년 1월1일부로 서울메트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했다. 두 번째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정규직 노사와 서울시가 서명한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경정비 업무를 자회사 수준으로 만들어 임금과 처우를 맞추고 4년 후에 직영화한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4년 뒤에 누가 책임질 거냐고, 지금 행자부 지침을 뛰어넘지 못하는 서울시와 공사가 4년 뒤에는 넘어설 수 있냐고 문제제기를 했다. 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앞두고 우리는 조합원 40명이 투표에 참여해 100%가 통합안을 반대했다. 정규직노조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양 공사의 통합안도 부결됐다.

유성권 지부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노조의 합의를 반대하는 일은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2010년 12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울산 1공장 점거파업을 하고 있을 때가 떠올랐다. 회사를 대신해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협박하고 회유하는 일이 25일 내내 벌어졌었다.

우리가 당신네 진짜 신경을 많이 써 준 거다, 위원장이 새벽까지 싸워서 받아낸 거다, 숨 고르고 자회사 가자, 4년 후에는 정규직 되는데 기다리면 안 되느냐, 다음 기회를 보자, 그럼 우리는 손 떼겠다, 비정규직이 알아서 해라….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상대로 했던 이야기들은 현대자동차에서도 서울지하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평소 연락도 안 하던 정규직들, 압박 들어와"

박점규 : 정규직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들었나?

유성권 : 평소에 연락 한 번 안하던 활동가들이 전화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처음에 우리를 만나서 노조를 알려준 사람들이었다. 그런 활동가들에게 엄청 압박이 심하게 들어왔다. 술 먹고 눈물도 흘렸다. 죽고 싶을 정도였다. 절대 굽히지 말고 싸우라는 활동가들도 있었지만, 정말 노동조합 그만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장의 반대도 이해한다. 우리가 정규직이 되면 진급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하고,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 했는데 인소싱되면 나이든 사람들이 그 일을 같이 해야 하니까 싫어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노동조합이 설득하고 토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후세대 미래가 달려있는 일인데.

박점규 :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나 서울메트로를 만난 적이 있나?

유성권 : 2012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까지 교섭과 대화를 요구했지만 하청업체도, 서울메트로도, 서울시도 단 한 번도 비정규직을 만나주지 않았다. 구의역 참사가 터지고 나서 서울메트로 운영본부장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군자차량기지 직원 식당 식권 얘기부터 꺼냈다. 정규직은 2000원 직원 식권으로 먹고 우리는 3000원 짜리 방문객 식권으로 밥을 먹는 걸 알고 있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직원 식권으로 바뀌었다.

박점규 : 열아홉 청년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서울시에서 안전업무를 직접 고용하겠다는 대책이 발표됐다. 그런데 직접고용이 안전업무직이라는 무기계약직이다.

유성권 : 은성PSD만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는 6월 말이면 계약이 끝난다. 그래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당신네들 시각에서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죽을 것 같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정규직노조를 설득했다.

천막을 빼앗기고 노숙을 했는데 도와주는 곳이 없었다. 청년전태일의 청년들과 고려수요양병원, 학교비정규직 등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지원했다. 차량지부장을 비롯해 몇몇 정규직 활동가들도 함께 노숙을 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아니라 안전업무직이라는 새 직군을 만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2017년 1월1일 정규직화 합의서도 있고 불법파견 관련 법률가 의견서를 있는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을 만나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정규직 힘들다, 노숙농성 접으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투쟁을 해보지 않은 조합원들이 움츠러들었다. 농성을 잠시 중단하고 서울시에서 자세한 내용이 나오면 다시 싸우기로 했다.

서울시 발표 이후 공사 안이 나왔다. 경정비 66명 중 61명만 직고용하겠다고 했다. 5명이 누구인지 얘기 안한다. 모터카에도 9명만 정규직화한다고 한다. 우리가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서울시로 올려서 그대로 추진될 것이다. 다시 싸우자고 현장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함께 싸웠으면....

ⓒ박점규
유성권 지부장은 시민들이 고맙다. 만약 구의역 참사 이후 청년들과 시민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자회사를 강행했을 것이고 정규직노조는 함께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정규직 간부들은 비정규직에게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하도록 규약은 바꿔놓고, 비정규직을 노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정규직들만 외롭게 싸우다 지쳐 떨어졌을 것이다. 포스트잇과 행동이 없었다면 성권 씨는 어쩌면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성권 씨와 비정규직 동료들이 정규직노조에 기대지 말고 당당하게 싸웠으면 좋겠다. KTX승무원을 비롯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안전업무 뿐만이 아니라 상시적인 업무는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우리 사회를 바꿔내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다. 정규직이 되고 나서도 또 다른 비정규직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정규직이 되어 8년째 연애하고 있는 여자 친구와 오래도록 기다렸던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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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기구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5일 점거파업에 함께 했고, 이후 한진중공업,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했습니다. 저서로는 <25일>, <노동여지도>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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