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의 무산 계급 문화대혁명(문혁) 50주년이다.
1966년에 문혁의 신호탄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지'가 발표됐던 5월 16일을 전후해서 국내 각 언론도 문혁을 돌아보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이 기사들은 하나같이 문혁을 '광기', '혼란', '참사'의 이미지로 기억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도 이런 기억 때문에 문혁 50주년을 되도록 쉬쉬하며 지나보내려 한다고 전했다.
그럴 만도 하다. 문혁의 발단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권부 내의 권력 투쟁이었고 그 결말 역시 최상층의 권력 재편이었다. 수많은 인민의 운명을 뒤흔든 대사건으로서는 발단도 석연치 않았고 결말 역시 허망했다. 문화대혁명이 말 그대로 '혁명'이라면, 이는 20세기에 가장 '엇나가고' '실패한' 혁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문혁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에게 '공(功)7 과(過)3'이라는 사후(死後) 평가를 내렸지만, 실은 '과'가 이보다는 더 크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혁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부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문혁이 궁정 암투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이는 어쨌든 수억 인민이 참여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경험이었다. 과연 이들 대중이 모두 정권 내 특정 분파의 권력 탈취에 꼭두각시처럼 동원됐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사건이라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얼굴들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1960년대 당시에 중국을 넘어 전 세계에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이라면 말이다.
보황파의 문혁, 조반파의 문혁
이런 문혁의 또 다른 면모들을 증언하는 책들이 있다. 첸리췬(錢理群)의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연광석 옮김, 한울 펴냄, 2012년)나 천이난(陳益南)의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 어느 조반파 노동자의 문혁 10년>(장윤미 옮김, 그린비 펴냄, 2008년)이 그런 책들이다. 너무 묵직한 이런 저작들 말고 소설도 있다. 작년에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차오정루(曹征路)의 <민주 수업>(연광석 옮김, 나름북스 펴냄, 2015년)이다.
이 책들에서 접하는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흔히 문혁의 주역이라 이야기되는 홍위병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혁 초기의 홍위병은 당 간부 자제들로 이뤄진 '보황파(保皇派)'였다. 이들은 1950년대 말 반우파 투쟁의 연장선에서 이른바 '우파'를 적으로 돌렸다. 당의 지령에 따른 대중 동원이라는 도식에 딱 들어맞는 것은 이들 보황파 홍위병이다.
하지만 문혁이 진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앞장선 것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었다. 보황파와 구별해서 이들은 '조반파(造反派)'라 불렸다. 조반파는 국가-당 바깥의 '우파'가 아니라 국가-당 안의 '주자파(走資派)'를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그때까지 당 관료는 반우파 투쟁 등에서 항상 심판자였지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조반파는 처음으로 이 당 관료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 수업>의 여주인공 소명도 조반파의 한 사람이다. 문혁 초기에 그는 당 간부들로부터 '우파' 분자라며 공격당한다. 부친이 혁명 전에 국민당에 입당한 적이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절망에 빠졌던 소명은 베이징의 홍위병 집회에서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는다. 자신을 '우파'라 무고한 당 간부들이야말로 문혁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확인하고 그는 조반파 홍위병으로 거듭 난다. 지난날의 '우파'가 한 사람의 조반파가 된 것이다. 문혁은 이런 식으로 혁명의 약속으로부터도 배제 당했던 이들을 혁명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웠다.
<민주 수업>은 소명의 발언을 통해 당시 조반파의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전한다. 그 중 몇 대목을 인용해본다.
"모두가 조반이 곧 탈권이라 생각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이 새롭게 대오에 서는데, 이는 어쩌면 문화대혁명의 본의가 아닐 수도 있다. 권력은 모두의 것이지 어떤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 인민은 언제든 불합격 받은 지도부를 소환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파리 코뮌의 가장 매력적인 정신이다." (125쪽)
"파리 코뮌의 원칙은 영원히 존재한다. 파리 코뮌의 지도부가 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지도부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1쪽)
문혁 과정에서 마오쩌둥이 강조하고 조반파가 우러른 역사적 선례가 파리 코뮌이었다. 문혁 전에도 사회주의 교과서에는 파리 코뮌 이야기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민이 자신의 대표자를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파리 코뮌의 원칙은 역사책 속의 아름다운 한 대목일 뿐 당면한 현실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문혁이 참으로 이례적인 사건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반파는 파리 코뮌의 원칙이 일체의 단서 없이 '지금 여기'의 이야기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수억 인민이 이렇게 외치고 나서자 그 동안 그토록 막강했던 관료 권력도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외침이 종내에는 문혁을 기획한 자들에게까지 향할 조짐을 보이자 곧바로 조반파 해산이 시작됐다.
다시 '민주 수업'이 필요한 때
근대는 엄청난 약속과 함께 시작됐고, 거듭 새로운 약속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약속에는 항상 단서가 붙었고,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약속보다는 오히려 단서들 쪽이었다. 막강한 장벽으로 버티고 선 단서들의 목록을 마주하다 보면, 실은 약속한 바를 금지하기 위해 애초에 약속을 내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가령 '민주주의'를 보자. 평생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싸운 영국 노동당의 토니 벤 전(前) 하원의원은 민주주의의 가장 간명한 정의(定義) 중 하나를 남겼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인지 아닌지 가르는 기준은 "통치자를 갈아 치울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지금 지상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통치자를 갈아 치우는" 일은 과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규범이 돼 있는가? 오히려 그런 일을 쉽게 꿈꿔서는 안 되는 이런저런 이유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문혁이 일어날 무렵, '사회주의'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파리 코뮌은 위대한 모범이었지만, 이를 다시 실현하기 위해 따라야 할 것은 코뮌의 원칙이 아니라 당 관료의 지령이었다. 조반파는 다름 아니라 이 근대의 배리(背理)에 항의했다. 이들은 단서들이 아니라 애초의 약속이 위에 서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망각을 거부"(<망각을 거부하라 : 1957년학 연구>, 첸리췬 지음, 길정행 외 옮김, 그린비 펴냄, 2012년)해야 할 문혁의 가려진 진실이다.
이러한 문혁의 또 다른 얼굴은, 비록 방식이야 문혁과는 크게 달라야 하겠지만, 우리 시대에 반드시 반복돼야 할 집단적 경험이다. 거대한 배반의 질서가 돼버린 근대에 틈을 내고 뿌리부터 뒤흔들며 젊음을 되살리려면, '민주주의', '자유-평등', 이런 약속들을 그 말 그대로 실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비유에 따른다면, 우리 손에 쥐어진 백지수표를 스스로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폄훼하지 말고 과감히 그 지급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 차오정루는 문혁을 돌이켜 보면서 이러한 집단 경험에 '민주 수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멋진 이름이다. 어쩌면 지금 지구 곳곳에서 분출하는 반란들, 가령 미국의 버니 샌더스 바람이나 남유럽 급진 좌파의 약진 역시 이러한 '민주 수업'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통치자를 갈아치우는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의가 실제 작동하길 요구하고 있다. 그 "통치자" 항목 안에 어떤 단서도 없이 실제의 통치자들, 그러니까 은행가, 재벌, 고위 관료들을 포함시키길 요구하고 있다.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는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천하대란'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의 더 보편적인 이름은 '민주 수업'이다. 이 수업을 거쳐야 우리 모두는 비로소 <민주 수업>의 여주인공이 만년에 도달한 다음의 이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민주가 무엇인가요? 민주는 강산을 호령하며 용감히 분노하고 욕할 수 있는 자기 믿음이자, 평등하게 참여해 말하는 게 효과를 갖는 작은 일상적 분위기이자, 자기 집처럼 주인이 되는 책임감이죠. 보통 사람들이 이를 얻지 못하면, 가위바위보로 X표시를 해 주인을 고를 수 있을 뿐이죠. 그들은 농락당하는 느낌밖에 들지 않을 거예요" (505~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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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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