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권하는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탁선미, 남덕현,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출간 자체가 '사건'인 책입니다. 1975년에서 1981년까지 세 권이 잇따라 나온 이 소설은 터키,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도 1권만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어판 <저항의 미학>은 터키를 제외하면, 비유럽권에 최초로 완역된 소설입니다.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 세 명의 독문학자가 마치 투쟁하듯 대한민국에서 이 소설을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소설은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던 1937년부터 1945년까지를 평범한 스무 살 노동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와 그의 동료는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좌절하고 결국 패배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은 배신하고, 은둔하고, 차라리 비겁해지기로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과 참으로 닮지 않았습니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이 좌절되어가는 슬픈 여정을 페터 바이스는 대담하고 과감하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느냐고 또 무엇을 할 것이냐고?
<프레시안>은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저항의 미학>을 먼저 읽은 분의 독후감을 공개합니다. 두 번째 독후감은 <저항의 미학> 속 등장인물과 겹치는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이 썼습니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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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되었다. 바이스가 이런 대작을 남겼다는 것부터 이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됐다는 것까지 모두 뜻밖의 일이었다. 한데 정작 더 놀라운 것은 작품 자체였다. 분명 형식은 소설이다. 그것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지하 조직 활동가들이 게슈타포에게 쫓기는 3권 2부에서는 장르 소설을 읽을 때의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단지 소설만은 아니다. 등장인물 거의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다. 독일 내 반(反)나치 저항 운동의 역사 기록을 연상시킨다. 독일만이 아니다. 화자가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고 프랑스를 거쳐 사회민주당이 집권 중인 스웨덴에 머물기 때문에 유럽 전체의 반파시즘 투쟁을 조망한다. 반파시즘 진영 내의 논쟁도 웬만한 역사서보다 더 깊이 있게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저항의 미학>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미학서이기도 하다. 첫머리에서부터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소장된 헤라클레스 부조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 전개된다. 이후 책 곳곳에서 문학과 회화, 조각에 이르는 예술 작품에 관한 상념이 긴박한 정치 이야기와 서로 긴밀히 얽히며 이어진다. 해당 부분만 떼어놓고 읽으면, 소설이 아니라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다룬 이론서라 생각될 정도다. 소설이면서 역사서이고 또한 미학서인 것이다. 이야기와 사유가 이렇게 혼융된 대작은 최인훈의 <화두>를 읽은 이후 처음 만나본다.
그런데 <저항의 미학>의 독서는 얼마간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량이나 난이도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번역 탓도 아니었다. 번역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문장은 유려하기만 했다. 고통의 원인은 이 작품이 거대한 정치적 패배'들'의 이야기라는 데 있었다.
화자의 아버지 세대가 참여한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의 독일 혁명은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에 실패했다. 사회민주당 다수파와 군부의 타협의 결과로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대공황의 해일이 정치적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실패했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적절한 시점에 반파시즘 연합 전선을 결성해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실패들이 쌓이고 쌓인 탓에 이 소설 속 등장인물은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저항 운동을 펼쳐야만 자신들의 인간됨을 지킬 수 있는 처지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실패의 역사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뒤늦게 협력을 모색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인민 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협력이 성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좌파 통합 노력은 각 정파들 내부의 모순과 한계 때문에 번번이 교란됐다.
그럴수록 파시즘은 승리의 깃발을 더욱 높이 치켜들었다. 독일에 남아 지하 활동을 벌이던 이들은 과거의 당적을 불문하고 저항 태세를 갖춘 이들이라면 누구든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지만, 이때에는 이미 저항할 이들 자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우유부단함이 문제였다. 저자 바이스는 본래 개혁보다는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이기에 사회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독일 사회민주당은 욕먹어 싸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은 나치 집권 이후에도 공산당에게 주도권을 뺏길까 봐 줄곧 연합 전선 결성이나 국내 저항 운동을 기피했다.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달리 이 시기에 이미 복지 국가를 건설하고 있던 스웨덴 사회민주당조차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바이스는 대외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가 나치 독일의 눈치를 보느라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공산당 계열의 반나치 활동을 탄압한 사실을 아프게 파헤친다.
그렇다고, 바이스가 무작정 공산당 쪽을 편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 노선에 더 동정적이기 때문에 사회민주당에 대한 언급은 단편적인 반면 공산당의 오류는 더욱 치열하고 준엄하게 짚는다. 처음에 화자는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방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 중에 공산당이 다른 좌파들에게 가한 탄압, 10월 혁명 주역들의 대숙청, 소련 방어 논리에 따른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체결 등을 겪으며 이 믿음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특히 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인상 깊게 반복된다. 독일 공산당 간부였던 빌헬름 뮌첸베르크(1889~1940년)와 헤르베르트 베너(1906~1990년)가 그들이다. 뮌첸베르크는 망명 중이던 레닌과 막역한 사이였을 정도로 오랜 투쟁 경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문화 산업에 뛰어들어 '붉은 자본가' 행세를 해서 빈축도 샀지만, 그만큼 배포가 큰 대중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눈 밖에 나 당에서 쫓겨났고, 프랑스에서 소규모 반나치 망명가 그룹을 이끌다가 독일군이 프랑스로 밀고 들어올 무렵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베너 역시 공산당의 저명한 활동가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사회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의원단 대표로서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 정책을 뒷받침했다. 겉으로는 베너가 공산당을 배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당이 베너를 쫓아냈다. 베너는 반나치 지하 활동을 위해 사회민주당과 적극 협력하자고 주장했다. 소련에 망명 중이던 공산당 집행부는 이런 단독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로 인해 베너는 자칫 숙청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베너는 살기 위해 사회민주당으로 옮긴 것이었다.
바이스처럼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도달하는 마지막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두 세력 중 어느 편의 오류에도 연루되지 않는 제3세력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도 소수여서 오류를 저지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바이스는 이런 속편한 해법으로 기울지 않는다. 그는 반파시즘 좌파들 사이의 첨예한 토론을 이어가면서 연대와 통합을 모색하는 길을 견지한다. 파시즘이 가장 승리를 구가하던 현장에서 파시즘에 맞서던 <저항의 미학> 속 등장인물의 시야에서는 아마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전망은 나치가 패망하는 순간에조차, 새롭게 엄습하는 냉전의 먹구름에 의해 끝내 좌절되지만 말이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양쪽에서 좌파 통합을 추구하던 이들(가령 젊은 빌리 브란트 등)은 이제 분단을 책임지고 이에 적응하며 새로운 장기전에 돌입해야 할 운명이었다.
이 소개만 읽고도 숨이 탁 막힐지 모른다. 도대체 이런 실패담을 확인하려고 세 권짜리 장편 소설을 읽어야겠냐는 의문이 들 게 틀림없다. 한데 이 물음의 답은 다름 아니라 이 긴 작품을 읽는 가운데 찾을 수 있다. <저항의 미학>의 주인공들이 치열한 정치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과거의 예술 작품들을 사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먼저 실천했던 자들의 성취 그리고 그만큼의 실패의 기록이다. <저항의 미학> 역시 실패의 기록이다. 이런 기록들과 대화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완성되지 못한 고투를 후퇴가 아니라 한 발자국이라도 더 전진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이어갈 수 있다. 바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보다 앞서 활동했던 그 사람들과의 결합은 미래를 향해 길을 열어가는 일과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저항의 미학> 2권, 62쪽)
<저항의 미학>에서 화자의 아버지(1919년 혁명에 참여했다가 공산당 집행부에 대한 회의로 사회민주당원이 된 노동자), 바이스의 실제 스승이었던 좌파 정신의학자 막스 호단(1894~1946년)이 화자의 윗세대로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 이 메시지다. 가령 화자의 아버지는 토로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로자 룩셈부르크의 계획들이 중단된 그 지점, 룩셈부르크의 생각을 계승하려던 모든 사람이 쫓겨난 그 지점, 자의식을 가지고 동참하는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이라는 이념이 실종된 그 지점, 당이 개개인의 판단력을 향상시키기보다 자아가 매몰된 예배당이 되어버린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돼." (<저항의 미학> 1권, 190쪽)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자는 이렇게 지난번 패배의 기억조차 무기로 삼아 '저항의 미학'을 이어간다. 나치에게 이미 무참히 패배한 그곳에서마저 그랬다면, 이게 불가능한 곳이란 없다. 물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페터 바이스(Peter Weiss)는?
1916년 독일 베를린 근교에서 헝가리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스위스 바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4년까지 독일에서 살았으나 나치스 정권을 피해 영국,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공화국),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으로 이주했고, 1946년 스웨덴 국적을 취득했다.
연속적인 이주의 과정에서도 미술 창작과 문학 습작을 병행했으며, 스웨덴에 정착한 이후에는 몇 편의 실험 영화와 상업 영화도 만들었다.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내용, 형식적 실험을 시도했으며, 1960년 누보로망 스타일의 '마이크로 소설' 〈마부의 몸의 그림자〉로 독일 문단에도 데뷔했다.
1964년 혁명가 마라와 개인주의자 사드의 허구적 만남을 소재로 한 희곡 <마라/사드>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시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된 아우슈비츠 재판을 방청한 뒤, 본격적으로 정치적 참여 작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문제를 다룬 기록극 <수사>, 포르투갈 독재 정권을 겨냥한 <루지타니아 도깨비의 노래>, 베트남 해방 투쟁을 다룬 <베트남 논쟁>,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역사관을 겨냥한 <망명 중의 트로츠키>, 횔덜린을 좌절한 자코뱅파로 등장시킨 <횔덜린>을 발표했다.
1972년 마지막 역작인 장편 소설 <저항의 미학> 집필을 시작하여 총 3권으로 (1권 1975년, 2권 1978년, 3권 1981년) 출간했다. 이 소설은 '좌파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1982년 65세에 마지막 희곡 <새로운 소송>의 초연을 마치고 영면했다. 레싱 문학상(1965년), 하인리히 만 문학상(1966년),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1982년)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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