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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굽고, 경유차를 포기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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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등어는 굽고, 경유차를 포기하면 안 되나요?

[초록發光] 정부 미세 먼지 대책을 지켜보며

미세 먼지 문제가 중국 탓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정부가 미세 먼지에 대한 중국의 영향은 전체의 30~50%라고 공식 발표하고, 간만에 박근혜 대통령도 국내 석탄 발전과 경유 자동차가 문제라고 바른 지적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고정 관념은 잘 변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만난 환경 컨설팅 회사에서 대표를 역임했다는 분도 미세 먼지를 언급하면서 중국 이야기부터 꺼냈다. 중국으로부터 불어 들어오는 미세 먼지를 막을 수 없는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냐는 비관론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잇따른 외교 참사에 버금가는 또 다른 무능함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반박하기 힘들긴 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국내 발생량의 비중을 50% 정도로 낮춰 잡는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해결 노력 없이 중국 탓만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환경부는 고등어구이라는 엉뚱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등어를 구울 때 미세 먼지를 엄청나게 배출하여 실내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그 덕에 고등어 값이 폭락했다. 좀처럼 해결되고 있지 않은 미세 먼지 문제로 걱정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즉각적으로 행한 탓이다.

환경부는 고등어를 구울 때 창문을 30분 정도 열어두면 미세 먼지가 집 밖으로 빠져나가 안전한 농도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네티즌들이 응수했다. 집 밖의 미세 먼지 농도가 매일같이 위험한 수준인데 창문을 열어 놓으란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 사람들은 차라리 고등어를 굽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환경부에 분통을 터뜨렸다.

엉뚱하다고 했지만, 환경부가 고등어구이를 꺼내든 것은 나름의 논리가 있다. 국내 초미세 먼지(PM2.5) 발생량 통계에서 거의 10%(수도권으로 한정할 경우 15.6%)를 차지하고 있는 '생물성 연소' 부문을 잡겠다는 구상과 연결되어 있다. 생물성 연소는 "농업 잔재물 및 생활 폐기물의 노천 소각, 나무 등을 연료로 쓰는 아궁이, 화목 난로와 보일러, 고기와 생선의 직화구이, 숯가마에서의 숯 굽기 등을 포함하는 배출원"(국립환경과학원, 2014)으로 일상생활로부터 발생되는 대기 오염의 발생원이다.

환경부는 이런 '생활 오염원'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 조사를 벌여 관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 일부로서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직화구이 음식점에 대한 미세 먼지 배출 허용 기준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가 고등어구이 문제를 꺼내든 것은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선의도 있겠지만, 생활 오염원을 잡겠다는 정책을 예고하는 애드벌룬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고기도 맘대로 못 구워 먹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판이다.

그러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환경부는 중국발 미세 먼지를 막을 묘안은 없고, 기획재정부와 산업자원통상부 그리고 기업의 힘에 밀려서 석탄 화력 발전소나 경유 자동차도 규제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 이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꺼내든 것이 고등어구이와 직화구이 음식점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미세 먼지에 지친 시민들의 힘을 지렛대 삼아 그동안 불가능했던 일을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게 어디냐' 하며 보여준 비겁함 때문에 '역풍'을 맞고 있다. 곁가지인 고등어구이가 아니라 몸통인 석탄 화력 발전소나 경유 자동차와 싸워야 할 일이다.

오늘(6월 2일)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그리고 산업자원통상부는 미세 먼지 대책에 잠정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우선 경유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환경부와 이에 난색을 표해온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 부처 사이의 타협책이 나왔다. 환경부가 관할하는 환경 부담 개선금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경유 부담금 제도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차량이 아니라 연료 비용 부담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클린 디젤이라며 지금까지 환경 부담 개선금 제도에서 예외로 인정받는 유로5 및 유로6 기준의 경유 차량에도 경유 부담금이 적용된다. 폭스바겐 스캔들로 드러난 문제점도 이참에 바로잡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40년 이상 가동한 노후 석탄 화력 발전소의 가동 중지와 배출 가스 저감 장치 의무화에 관한 협의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얼마간의 진전이 있어 보여 반갑다.

그러나 이것으로 마음 편히 숨쉬기 위해 충분한 대책이 될지 의심스럽다. 우선 석탄 화력 발전소 대책부터 안일하다. 현재 40년 이상된 화력 발전소는 3기에 불과하며 그 용량도 작아서 미세 먼지 저감에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 게다가 향후 20기 이상의 대규모 석탁 화력 발전소가 건설 예정이다.

당장 미세 먼지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크게 적은 LNG 발전소가 가동률 40% 이하대를 유지하면서 놀고 있다. 그 설비 용량은 석탄 화력 발전소의 것(26.4기가와트)보다 큰 32.6기가와트나 된다. 석탄 화력 발전소를 고집하는 것은 대통령이 주문한 미세 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은 고사하고 상식적인 대책도 되기 어렵다.

한편, 오늘 있었던 당정 협의를 통해서 경유값 인상은 영세 자영 업자의 어려움을 이유로 중기 검토 과제로 돌리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미세 먼지 대책으로 경유 값 인상 주장에 절대 동의 못한다"고 단언한 바 있었다. 정부는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을 핑계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도 2020년까지 유예한 상황이다.

그런 탓으로 경유 자동차 대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경유 자동차 이용을 줄일 방안으로 제시된 경유 가격 인상 정책도 또다시 발목 잡힌 것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미세 먼지 관련 당정 협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기의 질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만들기 위한 종합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시행키로 뜻을 모았다"고 이야기했다. 대체 무슨 뜻을 모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제 리얼미터에서 미세 먼지의 심각성과 정부 대책의 적절성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했다. 미세 먼지가 불안하다고 76%가 답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대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한 비율도 74.9%나 되었다. 응답자들이 정부 정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획재정부 등의 경제 부처와 새누리당―그리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동참하고 있지만―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서민층에게 부담을 안겨다주는 경유 값 인상 정책을 추진한 탓일까? 환경부가 그럴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석탄 화력 발전소 신규 건설을 취소하고 현행 가동률도 낮추는 대신 LNG 발전소와 재생 가능 에너지 이용률을 높이자고 주장하면 어떨까? 역시 전기값 올라가서 경제와 서민 부담을 증가시킨다며 반대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경유 가격 인상 추진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갖는 원인은 아니다. 우왕좌왕, 일관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기업들 눈치를 보면서 비겁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출퇴근용으로 경유차를 구입한 이의 이야기다. 클린 디젤이니 친환경 자동차니 해서 구입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미세머지를 발생시키는 주범이 되어 있더란다.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노력하면서 살아 왔는데, 이 모양이 되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경유차를 팔려고 하는데 국가가 대신 사다가 폐기해줬으면 좋겠단다. 그는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싸움을 보면서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에 죄송하고 미안해하는 '에너지 시민'과 닮았다.

전기 요금을 조금 더 부담해서라도, 스스로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에 참여해서라도 '나쁜 전기'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들이다. 미세 먼지 대책은 이런 시민들을 믿고 그들의 지지를 결집해서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 정유 회사 그리고 발전 회사의 이익을 에둘러 투사하는 영세 사업자나 서민층의 어려움을 더 이상 핑계 삼지 않으면 좋겠다.

경유 자동차를 팔겠다는 그는 아마도 고등어도 더 이상 굽지 않을 것 같다. 마음 편히 고등어를 구울 수 있도록, 제발 미세 먼지 몸통을 잡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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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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