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기업의 '기능 조정' 문제로 시끄럽다. 올 것이 왔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에너지 신산업 드라이브와 해외 자원 개발 실패 여파로 에너지 산업에 상당한 변화가 일 조짐이 보였다. 신기후 체제 출범이라는 좋은 명분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런데 막상 하나둘씩 들리는 소식과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한국전력공사 발전 자회사의 지분 상장,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자원 개발 사업 매각, 대한석탄공사 폐업, 발전용 댐과 일반 댐의 한국수자원공사 일원화,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폐지가 쟁점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한전 독점 전력 판매 시장 개방과 민간 기업의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라는 경쟁 체제 이슈까지 맞물리니, 에너지 산업 구조 개편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싶다.
정말 그렇다면 2000년대 초반 전략 산업 구조 개편 이상으로 파급력이 클 것이다. 전력 부문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시스템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줄 것이며, 에너지 산업계와 노동계의 이해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에너지 공기업 기능 조정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사이의 '온도차'도 변수가 되겠지만, 관련 산업과 노동의 반대 움직임에도 주목해야 한다. 해당 공기업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이 다르겠지만, 개별 기업에게 부과될 정책 변화는 현재의 경영 활동과 노동 안정을 유지하려는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 노동조합은 일리 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이 강요하는 민영화와 선진화와 정상화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 공공성'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노동권의 방어라는 차원에서 일방적인 '구조 조정'에 대한 저항은 옹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그리고 어떤 결실을 일구었는지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어느 순간 에너지 공공성 담론이 주로 민영화 반대의 도피처 역할로 멈춰 서게 된 것은 아닐까.
에너지 전환에서 공공성은 중요한 가치임에 분명하지만 능동적인 자기 개혁 없이는 방어적 경향성을 갖기 마련이다. 정치인과 관료가 에너지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고 경영자 역시 경영 실패에 쉽게 면죄부를 받고, 대신 그로 인한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라도 에너지 공공성에 우호적인 사회 진영에 다가서야 한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 변경은 시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요금과 가격과도 관계가 있다. 그런데도 사회적 공론화 과정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지극히 폐쇄적이다. 갈등을 유발하는 정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밀양'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일수록 정치적 논의가 충분해야 함은 상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에너지를 사용한다. 최근에는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참여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두가 에너지 민주주의의 주체여야 한다.
이제 에너지 민주주의는 전환적 공공성을 지향한다. 탈핵, 탈석탄, 탈석유를 추구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와 협동의 가치가 출현하고 확산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이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에너지 산업의 사회화는 민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기업 독점 유지도 아니다.
2015년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추진한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에 참여한 시민들이 합의한 결정 사항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시스템과 거버넌스는 "시장보다 사회가 중심이 되어 결정 추진되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였다.
최근에는 에너지 협동조합과 지역에너지공사의 실험이 주목 받고 있다. 이들에게 에너지 공기업 구조 조정과 에너지 신사업은 어떻게 이해될까. 민영화의 폐해를 피하면서도 지역 에너지 자립을 위한 긍정적인 계기를 구상할 수 없을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면 대화는 언제든지 시작될 수 있다.
정부는 6월 중으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갈등이 격해지다가 적당한 선에서 봉합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업계의 구조 조정 분위기와 합쳐지면 더 복잡한 국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
굳이 정부의 정책 일정에 맞출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에너지 산업 구조 조정 대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 로드맵을 작성하자.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모두에게 제 몫과 제 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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