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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쓴 읽을 만한 과학 책이 없다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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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쓴 읽을 만한 과학 책이 없다고? 허허"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물리학 클래식>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중 잣대를 갖고 살고 있다. 과학 소설(SF)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서양 이름이면 자연스러운데 우리 이름이면 뭔가 어색한 것 같은 느낌말이다. 교양 과학 책에 대해서도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존재하는 것 같다.

가장 많이 팔리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김동광 옮김, 까치 펴냄)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어려운 책이다. 기회가 되면 '나의 <시간의 역사> 독서 체험' 정도의 제목으로 글을 한편 써보고 싶을 정도로 천문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나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교양 과학 책들 중에도 어려운 책들이 많은데 비교적 잘 팔린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어려울수록 잘 팔린다는 말도 떠돈다. 내용의 어려움은 그 책 저자의 권위에 막혀서 오히려 책에 가치를 더하기도 한다. 좋은 외국 교양 과학 책은 어렵지만 그 정도는 감내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묘한 지적 허영심이 생긴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은 번역서가 많지만 책의 서술 방식이나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엄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번역된 교양 과학 책은 사실 극히 드물다.

국내 저자가 쓴 책에는 다른 요구가 쏟아진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하고 수식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하고 등등. 그러면서도 과학적 핵심 개념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물론 가독성도 뛰어나야만 한다. 그런 책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한 친구의 말처럼 부력을 설명하는 과학책에 이에 대한 설명은 없고 '유레카'만 남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물리학 클래식>(이종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반갑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외국 교양 과학 책이 갖고 있는 완성도와 과학적 개념의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 정면 돌파의 미덕을 갖춘 국내 교양 과학 책이 한두 권씩 나오기 시작했다. 고무적이고 기쁜 일이다. <물리학 클래식>(이종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도 그런 책이다. 외국 교양 과학 책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그에 대한 고전적인 만족을 주면서 한편에서는 우리말로 재구성한 과학 이야기를 멋진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교양을 갖춘 현대 교양인이 능히 읽고 도전해볼 만한 적당한 난이도의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격조와 함께 가독성도 확보한 훌륭한 책이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물리학자들이 쓴 수많은 논문들 중에서 딱 열 편만 골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마 여기 선정된 논문들에 대해서 모든 과학자들이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논문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 자체가 사람들마다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대략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열 편의 논문을 정했다.

첫째, 획기적인 발견
둘째, 인식의 혁명
셋째, 이론적 완성"

<물리학 클래식>은 저자의 땀이 느껴지는 책이다. 평면적인 서술을 답습하지 않고 원전을 직접 읽고 땀 흘린 노동의 대가로 탄생한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종필이 열 편의 논문을 고르기 위해서 투자한 시간과 땀이 고스란히 책 속에 녹아들어간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종필이 고심 끝에 고른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열 편의 논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논문으로부터 말다세나의 최근 논문까지를 포괄한다. 그의 말대로 통계역학 분야가 빠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21세기를 만든 지난 세기의 지적 모험을 살펴보기에는 손색이 없다.

"학술적인 논문들은 비전문가가 직접 읽기에는 아주 어렵다. 아무리 훌륭하고 감동적인 논문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특정 분야를 다시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둘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논문들뿐만 아니라 최신의 과학 성과들도 모두 논문의 형태로 출판되기 때문에 그 다리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 책이 그런 다리를 짓는 데에 한 덩이 벽돌이라도 될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물리학 클래식>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위에서 지은이가 지적한 것처럼 일반인들이 물리학의 원전에 간접적으로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원전 해제 형식을 띄고 있는데 원전 논문을 중심으로 당시의 물리학적 쟁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겉핥기로만 또는 가공된 지식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물리학의 핵심 내용을 생생한 증언과 현장 해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20세기 물리학 논문 열 편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물리학 클래식>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지난 세기의 대표적인 지적 성취가 단박에 이해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허망한 것일 것이다. 이종필은 물리학의 어려운 핵심 내용을 은유적으로 뛰어넘지 않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원전 논문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하나하나 차분하게 해설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서 그와 관련된 그 이후의 성과들도 함께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일관된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면서 <물리학 클래식>은 격조와 함께 가독성을 높이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흑체라는 것이 있다. <물리학 클래식>에 쓰인 구절을 인용해서 설명하면 이렇다.

"흑체란 말 그대로 '검은 물체'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흑체란 표면의 색깔이 검은 물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빛을 완벽하게 흡수해서 반사되는 빛이 거의 없는 물체를 흑체라고 한다. 커다란 상자에 조그만 구멍을 하나 뚫어 놓으면 훌륭한 흑체가 된다. 그 구멍을 들여다보면 정말 검다."

문득 이종필이 흑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원전을 섭렵하면서 열 편을 골라내고 그것들을 온전히 흡수하는 흑체. 그런 후 그가 복사를 통해서 뱉어낸 것이 바로 <물리학 클래식>이 아닌가 한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당당하게 내어놓았다고나 할까.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든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 완성의 시점을 언제로 정할 것이냐, 어느 논문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1916년 논문인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를 생각했다. (…)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완성'의 순간을 꼭 집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완성된 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정식은 1915년 11월 25일에 발표된 '중력의 장 방정식'에 처음 나온다. (…) 그러니까 1915년 11월의 아인슈타인의 성과가 이미 학계에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 상대성 이론과 관련한 대표적인 논문은 1915년 11월 25일의 '중력의 장 방정식'으로 보는 것이 훨씬 합당할 것이다."

늘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발원 시점이 궁금했다. 어떤 글에서는 1915년이 다른 글에서는 1916년이 인용되고 있었다. 이종필의 노력을 통해서 내 궁금증 하나를 해소했다. 열 편의 논문을 고르는 그는 외롭고 힘들었겠지만 우리는 그의 땀을 통해서 달콤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리학 클래식>은 단순한 원전 논문의 해설서가 아니다. 한 물리학자의 땀이 배어난 흑체복사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미덕이 있다. 이종필은 자신의 관점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이 이론을 숱한 오류 속에 잘못 응용해서 쓰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에게 이렇게 일갈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을 오해해서, 관측자의 상대적인 운동에 따라 길이가 줄어들고 시간이 팽창하는 상대론적 현상을 가지고 과학적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현상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상관없이 물리 법칙이 똑같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법칙의 절대성을 고수하기 위해 현상의 상대성을 허용한 셈이다."

<물리학 클래식>은 교양 과학 책 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외국 교양 과학 책들 중에도 원전 논문을 해설하는 책들은 더러 있었지만, 이 책만큼 여러 가지 시대적 문화적 요구에 충실하게 답하고 있는 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원전 논문의 충실한 해제이자 훌륭하고 완성된 한 편의 현대 물리학 교과서가 될 것이다. 원전 논문을 바탕으로 한 교양 과학 책 쓰기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데 또 다른 의의가 있다. 앞으로 계속 <천문학 클래식>, <생물학 클래식>, <화학 클래식>, <수학 클래식>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책을 쓰는 내내 나는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 원전이 주는 감동이 그만큼 컸던 탓인 것 같다."

맺음말인 '순례를 마치며'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회상했듯이 나도 <물리학 클래식>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다. 열 편의 원전 논문 중에서 아직 읽어보지 못한 논문들을 꺼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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