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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누가 왜 다시 소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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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누가 왜 다시 소환했나?

[서리풀 논평]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리고 국가와 기업 '연합'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리고 국가와 기업 '연합'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갑자기(?)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러 가지로 의아한 점이 많다. 우선,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시 '사건'이 되었나? 사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2011년 이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초기부터 사건의 성격은 비교적 명확했지만, 싸움은 외로웠다. 업체는 발뺌하고 정부는 수수방관하는 사이, 피해자들만 애를 태워야 했다. 작년(2015년)에는 실상을 알리기 위한 항의 시위대가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까지 갈 정도였다. (☞관련 기사 : <가디언> "'옥시'는 왜 살인을 인정하지 않나?")

그래도 '국가'가 강하다. 검찰이 조금(?) 관심을 보이는 정도만 가지고도 사건은 다시 폭발했다. 2016년 1월 검찰이 '전담 수사 팀'을 만들어 수사를 시작했더니, 온갖 문제가 다 튀어나온다. 업체와 학계가 일차 대상이었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정부 다른 부처에도 손을 댈지.

권한(권력)은 의무와 책임을 달리 나타낸 말이다. 이제 본격 수사에 나섰다고는 하나, 검찰 또한 책임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가 불거진 것이 언제인데, 이제와 정의를 가리는 것처럼 나서는 모양이 가소롭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위층 권력 비리를 척결하는 특별 수사도 중요하지만 국민 생명 안전과 직결된 사건은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지휘부의 뜻에 따른 일"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살균제 사망'전담 수사 팀 가동) 어떤 '지휘부'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치적 결정이란 것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다른 책임 당사자들은 더 우습다. 보건복지부는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오고도 피해 문제는 제조사와 소송하라며 직접 개입을 미뤘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환경보건법상의 환경성 질환으로 결정된 이후에도 피해 신고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관련 기사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5894) 이 힘없는 부처들은 아마도 시대정신에 충실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기업'과 '반(反)규제'라는 그 완고하고 강건한 정신에 저항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검찰을 비롯한 국가 기구가 불려 나오고 대통령과 국회가 나섰지만, 그 풍경은 낯설다. 그러니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곳은 노동부가 반(反)-노동적이고, 환경부가 반-환경적이며, 보건복지부가 반-건강인 희극적 상황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더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사건이 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준에 이른 때문일 것이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개별 기업의 일탈로 한정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한 가지 의아한 점은 기업의 행동이다. 그에 앞서 당연한 일들 몇 가지. 사실 이번 사건을 두고 기업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정도다. '사후약방문'이 따로 없으니, 지금까지 '숨기기' 전략이 제대로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가습기 살균제라는 이름, 그리고 '옥시'라는 브랜드. 광고나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지가 넓고 깊이 들어와 있다. 어떻게 독성이나 건강 피해를 생각하고, 무지와 무능력, 부정과 악의를 떠올리겠는가.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내면화 전략이다.

그보다 더 교묘한 브랜드 전략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싶다. 옥시의 모기업인 영국의 레킷벤키저.

국내에서 직접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국제 구호, 기후 변화, 조림 사업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는 상상 이상이다.

"2013년 4월, 국제 어린이 구호 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은 5살 이하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를 치유하겠다고 발표했다. (…) 그 고결한 뜻에 공감해 캠페인 비용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기업이 있었다. 3년 동안 235만 파운드(약 39억 원)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 이 기업이 레킷벤키저였다. 한국 어린이들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고통을 겪게 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영국 모기업이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살균제 앞에 선 사회 책임 기업)

사실 이 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사회적 책임' 전략은 기업이 져야 할 본업과 본질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분산하는 기술처럼 보인다. 따지고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과 개념 자체가 의심스럽다. 형용 모순에 가깝다.

의아한 것은 이 상품에 대한 처리 방식이다. 적어도 이번 경우에는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 판매하는 단계에서 그 어떤 견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아무리 비민주적이라 해도,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기업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살균제의 원료 물질은 국내에서 카펫 항균제 용도로 개발했고 용도를 바꾸어 가습기 살균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법률과 규정, 정부의 감독과 허가 등이 허술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상품을 직접 다루는 기업이 '인체'와 '안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큰 사고가 왜 생기는지를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한 가지가 '스위스 치즈' 모델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를 여러 장 겹치면 구멍의 부위가 달라 아래위가 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부위가 맞아 떨어지면, 전체 치즈를 꿰뚫을 수 있다.

한 가지 원인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결함이 동시에 작용할 때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 이 모델의 핵심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리고 그것을 만든 회사 내부에 적용하면, 여러 과정에서 동시에 부정, 오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주 우연히 여러 구멍이 일치한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상상하기 어렵다.

스위스 치즈 모델을 해체해 보자.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치즈 그 자체 또는 치즈 바깥이다. 그림에서 화살표가 반드시 치즈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치즈의 구멍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도, 그리고 각 장의 치즈가 스위스 치즈가 아니어도(즉 구멍이 없어도) 문제(사고)가 생긴다.

이번 사건의 과정을 보면, 한 장 한 장 치즈의 구멍이 아니라 전체 틀과 구조가 결과의 주범인 것으로 보인다. 치즈에는 구멍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화살표는 그 치즈 자체를 비켜갔다. 안전성 평가를 아무리 꼼꼼하게 해도, 그런 평가는 면제하면 그만이 아닌가. 치즈 낱장을 치워버리는 힘, 그 체계와 원리에 주목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문화. 혹시 문제가 있더라도 '사고 처리' 쪽이 돈이 덜 든다는 생각. 정부의 규제가 느슨할 것이고, 처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별 것 아닐 것이라는 자신감. 이 모든 것은 개별적 현상이 아니라 체계이자 원리다.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만큼, 기업 활동의 최대 자유와 규제의 최소화라는 원리와 그를 구현하는 체계는 일관되고 통일적이다. 그리고 힘이 세다. 정부 부처와 기업 모두가 이 원리를 따랐고, 다시 기업의 내부 구성원은 이 원리를 내면화했을 것이다.


이런 원리와 체계 속에 있다면 개인, 개별, 미시적 주체는 부차적으로만 중요하다. 한 기업이나 그 속의 한 개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와 각각의 치즈 구멍을 메꾼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리이자 체계이니 다른 차원, 다른 영역의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시대적 병리가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면, 치유도 체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배상과 처벌도 중요하다. 비슷한 사고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녁을 터무니없이 벗어나 있는, 이 넓고 일상적인 체계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국가와 기업의 결합, 또는 야합을 해체해야 한다. 특히, 권력 관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식적이고 분명한 사건조차 역학 조사와 검찰 수사가 그냥 시작되지 않았다면, 조직된 힘없이 공고한 권력 관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와 기업이 아닌, 그 힘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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