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이야말로 '기시감(데자뷔)'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1998년 경제 위기 때 그랬고,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그랬다. 아니, 정확하게는 1998년 이후에는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졌다(예를 들어 쌍용자동차의 정리 해고). 이른바 '구조 조정'이라는 익숙한, 그러나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폭력.
그 구조 조정이 다시 등장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조선 산업이라는 것, 그리고 정부가 몇 번 변죽을 올리기는 했으되 선수를 뺏겼다는 점이 정도다. 선거를 통해 엉겁결에 제1당이 된 야당이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시동을 건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와 정치가 뒤범벅이 되어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우선, 우리는 이 말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구조 조정'은 비겁한 표현이다. '요금 현실화'나 '정상화', 또는 '정치적 올바름'과 마찬가지로, 중립을 앞세우며 진실을 숨긴다. 현실 정치인과 관료의 특기이기도 하다. 그 어떤 정책과 조처가 '구조'와 무관한 것이 있던가. 언제는 조정이 없던 때가 있는가.
게다가 폭력적이다. 구조를 앞세우면, 급진적 변화 그리고 이를 위한 시장 개입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비틀어진 '구조'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근본 문제를 제기하면 수구 꼴통이나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니, 기껏해야 '조건부' 반대가 최선이다. "신중하게, 부작용이 적게, 대책을 마련하면서" 또는 "고통 분담". 구조 조정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처음이 아니니, 1997~1998년의 경제 위기와 구조 조정을 뒤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경제 위기를 극복한다는 이유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수용했고 기업은 물론 공공 부문까지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한보철강, 삼미그룹, 진로, 대농그룹, 한신공영, 기아자동차, 쌍방울, 해태, 뉴코아, 한라 등의 대기업이 해체되거나 사라졌다. 또한 '5대 그룹' 빅딜이란 이름으로 전자와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회사가 합치거나 없어졌다.
구조 조정은 공공 부문까지 밀어닥쳤다.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한국전력, 담배인삼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의 공기업을 민간에 팔았고, 공공 부문 전체 인력의 20% 가량을 감원했다. 심지어 '철밥통'이라는 공무원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월간 참여사회> 1998년 10월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관련 기사 : 공무원 조직 및 인력 감축의 허와 실)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공무원 조직 및 인력 감축 지침'에 따라 공무원 사회에도 '감원, 퇴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안에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의 지방공무원을 감원한다. 더 나아가 2002년까지 정원의 30%인 8만7300여 명을 연차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공무원이야말로 안정적인 '평생 직장'이라는 믿음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셈이다."
지나간 뉴스는 구조 조정의 구조와 과정, 그 결과를 인격이 없는 기록으로 남기지만, 그 흔적은 각 사람 개인에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때로 그 상처는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리 해고와 감원으로 공식 실업률만 7~8%에 이르렀고(외환 위기 이전에는 2~3%), 실제 실업률은 20%를 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인당 국민 소득은 1만 달러에서 6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삶의 한 요소로, 질병과 죽음도 완연했다. 가장 명확한 지표는 자살이다. 1990년대 말의 경제위기는 높은 자살률이 굳어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다음과 같은 연합뉴스의 기사. (☞관련 기사 : 하루 40명꼴 자살…고령화, 경제난 탓)
"한국의 자살률이 과거에도 이처럼 높았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만 해도 자살률은 8.8명으로 당시의 일본(17.5명)과 독일(17.1명)의 절반을 밑돌았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며 급증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0년 13.6명으로 는 데 이어 2003년 22.6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9년 31.0명, 2010년 31.2명, 2011년 31.7명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2012년 28.1명으로 줄어든 이후 2013년 28.5명으로 다시 상승했다."
이것이 무감각한 숫자라면, 더 생생한 증언도 있다. 2002년 프레시안이 보도한 여러 사례들에는 해고, 실직, 부도, 사채 등이 빠지지 않는다. (☞관련 기사 : IMF 자살일지, "그 때를 아십니까?") 움직일 수 없는 인과관계는 이런 것이다.
"실업자가 되면 처음에는 퇴직금과 명예금,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생활을 합디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음에 집에 손을 댑니다.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그 다음에는 전세를 월세로 옮긴 뒤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돈을 만들 길이 없으면 거리로 나앉아 노숙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곤 했어요. 공황 발발에 따른 자살은 사회적 타살인 것입니다."
건강과 질병, 사망 효과는 구조 조정이 사회에 남기는 그 많은 상처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지만(가족 해체나 범죄, 그 밖의 수많은 상처들!), 유난히 불평등에 민감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교육이나 직업적 지위, 소득 수준에서 불리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병들고, 다치고, 죽음에 이른다.
지난 시기 구조 조정의 효과를 분석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다시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조 조정은 사람을 차별한다는 점만 확인해 두자. 그리고 한 가지 더, 병이나 죽음의 불평등이 이 정도니, 그것은 다른 불평등이 깊어지고 심해져서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온 것이다. 생활의 물질적 조건, 불안과 스트레스, 가족 관계, 자존감 등등. 온갖 고통은 차별적이다.
모든 것을 구조 조정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터. 특히 1998년의 경제 위기에서는 경제 위기와 구조 조정의 효과가 겹쳐 있다. 하지만, 경제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사회와 개인에 대한 효과도 달라진다. 다르게 표현하면, 어떤 구조 조정인가에 따라 위기의 의미가 다르고 삶과 죽음이 나뉜다.
이런 사실 또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이다. 2008년의 금융 위기와 유로존의 경제 위기에서 배운 것이 크지만, 특히 그리스와 아이슬란드의 대조적 구조 조정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두 나라가 갔던 길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고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원칙은 다를 리 없다.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가 쓴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안세민 옮김, 까치 펴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관련 기사 : 긴축이 불황의 특효? 건강해야 경제도 낫는다!)
"경제 위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아이슬란드는] 정부 지출을 오히려 늘렸고, 공중 보건 예산을 줄이지 않았다. 아울러 음식, 일자리, 주택을 보장하는 사회 보장 체계를 계속 유지했다."
"무슨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이는 구조 조정의 불가피성과 대책의 중립성을 강변한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백 걸음을 양보해 이른바 '구조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선택할 길은 '주어져' 있지 않고 개방적이다.
'공적' 자금은 왜 회사와 은행에만 투입되어야 하는가? 실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과 그 재정은 왜 불가능한가? 고통 '분담'인가 고통 '전담'인가? 무슨 고통을, 어떻게 나누자는 말인가? 다르게 상상하고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그 어떤 정책과 조처에도 (그 알량한 통계가 아니라) 사람과 그의 살아있는 삶이 첫 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업과 경제를 살린다고 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라! 눈과 기준을 이렇게 맞추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몫이다. 다시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에서 배우는 교훈으로 돌아간다.
"현실에서는 정책의 관점과 그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슬란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긴축 정책을 거부한 것이 또 다른 좋은 예다. (…)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해, 또는 정책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집단과 피해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고려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예에서 보듯, 흔히 정책적 대응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증거를 넘는) 한 국가의 기본적인 정책 기조다. 그리고 그런 정책 기조가 더 크고 넓은 범위에서 정치적, 경제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 위기와 그 대응이라는 면에서 볼 때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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