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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끝까지 가서 '기적'을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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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끝까지 가서 '기적'을 만드나?

[박영철-전희경의 국제 경제 읽기] 샌더스, 뉴욕 경선 패배 이후

'이변'은 없었다.

지난 4월 19일 뉴욕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42%를 얻어 58%를 얻은 힐러리 클린턴에게 크게 패했다.

선거 다음날 미국 주요 언론의 1면 기사는 힐러리의 승리를 다음과 같은 형용사로 포장했다.

"뉴욕 경선, 힐러리의 압승이다. 대승이다. 결정타이다. 힐러리의 후보 지명은 이제 따 놓은 당상이다."

반대로 샌더스 진영은 이렇게 대꾸하며 힐러리 진영과 민주당 지도부가 끈길지게 강요하는 유세 조기 포기를 단연 거부하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뉴욕 전투에서 졌지만, 선언 대의원 확보 측면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7월 전당 대회까지 끝까지 간다."

이제 남은 최대 관심사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 샌더스가 전당 대회까지 가는 경우 이길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둘, 전당 대회까지 가서 지는 경우, 2016년 대선에서 샌더스의 돌풍이 향후 미국 정계 개혁에 의미 있는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이 두 문제를 깊이 짚어보기 위해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이변은 없었습니다. 지난 3주간 8개 주에서 연속 승리하며 파죽지세의 모멘텀을 과시하던 샌더스가 뉴욕 경선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미국 여론 조사의 예측이 맞은 셈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영철 : 그렇습니다. 미국 여론 조사가 예측한 평균 차이가 15.2%포인트였는데 실제로 힐러리가 16%포인트 차로 이겼군요.

전희경 : 지난번 인터뷰에서 교수님은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나고 대의원 수에서 크게 밀리고 있는 샌더스에게 뉴욕 경선의 승리는 절체절명의 기회라고 진단하셨는데 생각보다 크게 진 이유가 있는지요? (☞관련 기사 : "힐러리는 만만한 악마, 샌더스는 무서운 악마!")

박영철 : 특기할 사항은 없었다고 봅니다.

▲ [표 1] 민주당 예비 경선 : 클린턴, 뉴욕에서 승리.
물론 힐러리가 뉴욕 주의 상원의원을 두 번 했고, 힐러리의 열성 지지자인 흑인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샌더스를 지지하는 무당층은 투표할 자격이 없었고, 투표 등록 제도가 까다로웠다 등 여러 변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샌더스의 근원적인 패배 요인은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지도부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 흑인 정치 지도자의 반샌더스 전략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특히 "샌더스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는 등 막판에 쏟아져 나온 인신 공격적인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역부족이었다'가 가장 정확한 진단이라고 봅니다.

전희경 : 뉴욕 경선의 결과를 포함한, 두 후보의 대의원 확보 현황을 수치로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샌더스를 16%포인트 차로 크게 이긴 힐러리는 선언 대의원 139명, 샌더스는 106명을 확보했습니다. 따라서 4월 19일 현재 각 후보의 대의원 수는 아래 [표 2]와 같습니다.

▲ [표 2] 2016년 미국 대선 대의원 수 현황.

[표 2]에 의하면 힐러리는 총 대의원 수 1948명, 샌더스는 1238명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당 대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2383명의 대의원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힐러리는 435명, 샌더스는 무려 1145명의 대의원(선언 대의원과 슈퍼 대의원의 합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샌더스의 '대의원 수의 덫'입니다.

전희경 : 대의원 수만 보면 게임은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언론이 이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인데, 너무 대의원 수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박영철 : 맞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 [표 3] 남은 경선 일정과 대의원 수.
샌더스 진영의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직 남은 경선에 걸려 있는 선언 대의원 수가 1668명, 즉 샌더스가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해 필요한 대의원 수 1145명 보다 훨씬 많다. 거기에 아직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슈퍼 대의원도 229명이나 된다. 또 현재 힐러리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대의원 중에서도 전당 대회 당일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따라서 샌더스가 이길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전희경 : 수치상으론 맞는 말이지만 과연 샌더스의 승리가 가능한가요? 교수님의 전망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영철 :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측해 보았습니다.

우선 현재 힐러리 지지를 선언한 슈퍼 대의원이 샌더스 지지로 바뀌는 경우를 제로(0)라고 가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남은 슈퍼 대의원의 50% 30%, 그리고 15%가 샌더스를 지지할 경우를 가정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샌더스가 후보 지명에 필요한 선언 대의원 수를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 1 : 남은 선언 대의원 수 1668명 중 1030명, 즉 61.8%를 얻어야 합니다.
시나리오 2 : 남은 선언 대의원 수 1668명 중 1076명, 즉 64.5%를 얻어야 합니다.
시나리오 3 : 남은 선언 대의원 수 1668명 중 1110명, 즉 66.5%를 얻어야 합니다.

▲ [표 4] 샌더스가 승리할 수 있는 3가지 시나리오.

전희경 : 다시 요약하면 남은 경선에서 평균 61.8%, 64.5%, 그리고 65.5%의 득표로 힐러리를 이겨야 후보 지명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군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미 언론의 제목처럼 거의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요?

박영철 : 동의합니다. '기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전희경 : 이런 상황에서 샌더스 진영이 전당 대회까지 가겠다는 결의는 무모한 모험이 아닌가요?

박영철 : 그건 아닙니다. 전당 대회까지 가려는 샌더스의 전략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이유를 가집니다.

첫 번째, 샌더스는 이번 유세 중에 수많은 젊은층, 진보층, 소득 하위층, 제조업 노동자에게 뜨거운 열정과 '영감'을 불러일으킨 자신의 '메시지', 즉 정치 혁명을 통해 재벌과 대기업, 기득권 정치인을 위한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를 청산하자는 메시지를 민주당 '대선 공약'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 지명에 실패하더라도 후보가 전당 대회에 참여하여 자기 메시지를 대의원들에게 직접 강력하게 주장하고 호소하는 길이 최상의 방법이 됩니다.

두 번째, 샌더스는 아직 남은 경선이 치러지는 19개 주의 유권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의무를 수행하고 그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고자 합니다. 지난 2개월간 샌더스의 유세장에 구름처럼 모인 군중의 열정과 호응은 미국 대선에서 드문 현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샌더스 진영은 이런 기회를 유권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자평합니다.

전희경 :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지도부, 그리고 재벌 언론은 샌더스의 유세 중단을 강요하고 있군요. 4월 21일 <워싱턴 포스트>의 1면 기사 제목은 "이제 샌더스는 어떻게 할까? 많은 것이 그의 대답에 달려있다("What's next for Sanders? Much rests on his answer)"였습니다.

이 기사는 샌더스가 이제 유세를 그만 두는 것이 민주당의 본선 승리에 큰 도움이 되고, 대선 후 정치인 샌더스의 세력과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샌더스가 유세를 시작할 무렵, 미국 언론은 샌더스 유세의 최종 목적은 후보 지명보다는 힐러리 후보의 정치적 성향을 좌로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제 그 목표를 달성한 셈 아닌가요?

박영철 : 재미있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게 아닙니다.

우선 샌더스는 힐러리의 정치 성향을 좌로 이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고려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샌더스는 유세 도중 힐러리의 정책이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대응으로 좌로 이동했다는 미 언론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BBC가 이 같은 샌더스 진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 차트를 보면 샌더스의 진보 성향 점수가 8점, 힐러리의 진보 성향 점수는 4점입니다. 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6점) 보다 낮습니다. 특이한 점은 미 국민의 다수가 매우 '진보적'이라고 알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BBC의 눈에 가장 보수적(겨우 3점)인 정치인으로 비친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오바마의 진보 성향에 대한 점수가 이렇게 낮게 나온 것은 매우 충격적인데요?

박영철 : 그런 반응도 있습니다만, 미 언론의 시각도 BBC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7년간 오바마는 평소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정책을 채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매번 타협을 통해 보수적인 정책을 관철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적과의 동침' 전략으로 얻어낸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TPP)입니다. 현재 유세 중인 대선 후보 네 명 모두가 이 협정의 의회 인준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미국 재벌 언론에 매우 비평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며 정치 평론가 빌 모이어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샌더스는 전당 대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벌써 승리했다."

해석하면, 샌더스가 유세 중 미국의 장래를 짊어질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내었다, 그의 혁명적인 개혁 '비전'과 메시지는 향후 미국의 진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가 됩니다. 교수님의 의견을 어떠신지요?

박영철 : 빌 모이어의 진단에 일단 '조심스럽게' 동의합니다.

샌더스가 주창한 선거 공약은 과연 '혁명적'이라고 할 개혁 정책이 많이 포함되었고, 젊은 층과 진보층, 노동자와 백인 남성이 이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선거 후에 얼마나 이 비전과 메시지가 민주당의 정책에 실제로 반영될 것이며 현재 지지자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들의 시행을 위해 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가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전희경 : 샌더스의 공약 중 향후 미국 정계와 경제계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 제안을 설명해주십시오. 일종의 샌더스 돌풍의 '유산'이 되겠군요.

박영철 : 매우 적절하고 중대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깊이 검토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질문입니다.

샌더스 돌풍의 유산으로 다음 여덟 가지 제안을 꼽고 싶습니다.

1.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는 정당 간 그리고 후보 간의 '공약 대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 특히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진솔한 비전과 메시지가 국민에게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어야 한다.

2. 선진국 중 가장 심각한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미 언론에 의하면 미 국민의 다수가 이번 샌더스의 유세 현장에 나가서야 미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았다고 합니다.

3.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 날로 악화하는 소득 불평등의 주범인 월스트리트의 강력한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금융권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강력한 규제 제도와 부자 증세 제도를 도입하고 해외 조세 도피 책략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4. 가난하고 소외된 빈곤층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복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5. 전 국민 의료 보험 제도와 무상 등록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6. 선거 모금 법률을 개정하여 선거가 '부자와 기성 정치인'들의 투기장이 되지 않고 민의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7. 민주당의 슈퍼 대의원 제도가 기성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풀뿌리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8. 정치인의 정직성과 호감도가 기술적인 경험보다 더 귀중하다는 인식을 확장해야 한다.

전희경 : 샌더스 유세의 '영감 있는' 메시지와 이 메시지에 열광적인 호응을 보인 지지자들의 합작품이 샌더스 돌풍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박영철 : 며칠 전 한국 정계에 큰 변화가 있었더군요. 지난 4.13 총선에서 '4.13 투표 혁명'이 있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 입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 관해서는 더 큰 욕심을 내 봅니다. 2017년 11월에 있을 대선에서 미국의 샌더스와 같은 '우리가 믿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후보가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현재 논의 중인 미적지근한 '경제 민주화' 수준을 2배, 3배 뛰어넘는 경제 정의의 실현을 주창하는 후보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이번 미 대선에서 나타난 특성 중 하나는 기득권인 정치권과 금융 재벌에 대한 일반 국민의 극심한 혐오증과 불신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경제 정의에 대한 갈증입니다. 이를 해결할 비전을 가진 분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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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
전희경

조지아서던 대학교 겸임교수로 보건 정책, 역학을 연구 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경제 분석 및 산업 안전 보건, 노동 환경 정책 연구원으로 일했다. 보스톤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노동 환경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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