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은 강남처럼 꽂아주는 데가 아니다."
서울 용산구에서 4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 측의 말이다. 용산은 대표적인 '여당 텃밭'으로 알려졌지만, 새누리당 후보라고 무조건 당선이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용산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촌이 있다.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이 붙은 동부이촌동이나 한남동, 서빙고동, 이태원동은 신흥 부촌이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단독 주택 10곳 중 6곳도 서울 강남이 아닌 용산구에 있다. 용산 구민 10명 가운데 3명은 스스로 상류층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평균(16.5%)의 두 배 가까이 된다(2013년 서울 통계 정보 시스템). 하지만 용산에는 빈촌도 있다. 1평(3.3제곱미터)도 안 되는 방에 1000가구가 사는 동자동 쪽방촌도 이곳에 있다. 용산구는 대한민국 압축 성장의 축소판 같은 지역이다.
지역 현안도 복잡하다. 신흥 상권으로 떠오르다 보니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상가 문제가 크다. 대표적으로 2009년 철거민 운동의 상징이 된 '용산 참사'가 벌어졌다. 한남동 등을 중심으로 몇 년 새 임대료가 두세 배 뛰면서 용산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 같은 곳이 됐다. 건물 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 용산이다. (☞관련 기사 : "슈퍼 젠트리피케이션 진행…마을 파괴 잔혹사")
2014년 6.4 지방 선거 판세도 묘했다. 용산구청장으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성장현 후보가 당선됐다. 성장현 구청장은 당시 50.1%를 얻어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45.0%)를 5.1%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여당 의원과 야당 구청장이 공존하는 지방 선거와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용산 지역에는 최소 5~6%의 부동층 유권자가 있다는 얘기다.
용산에는 현재 5명의 후보가 등록돼 있다. 새누리당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경영 혁신 본부장,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 안철수 의원 정책 특보인 국민의당 곽태원 후보, 29세 청년 후보인 민중연합당 이소영 후보 등이다.
새누리당에서는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경영 혁신 본부장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으로부터 '여성 우선 추천'을 받았다. 황춘자 후보는 2014년 지방 선거에서 용산구청장에 도전했다가 더민주 성장현 후보에게 패한 바 있다. 황춘자 후보는 스스로 "박근혜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국회의 진실한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른바 '진실한 사람(진실한 박근혜계)'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이 지역에서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내리 3선을 했던 진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4선에 도전하고 있다. 진영 의원은 명목적으로는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내세운 기준인 "편한 지역 다선 의원"에 속해 공천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속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원조 친박근혜계'로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진 의원은 '기초 연금 항명 파동'으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장관직을 던진 바 있다. 그의 공천 배제가 '정치 보복'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관련 기사 : '호남 출신' 진영, 그는 왜 더민주를 선택했나?)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진영 의원 측은 "지역구민 사이에서 진영 의원에 대한 동정론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공천 배제 사유가 비리, 부정부패, 함량 미달 등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진박 내리꽂기 공천'에 주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진영 "강용석이 '위에서 보내서 왔다'더라")
실제로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용산구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28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진영 의원은 34.7%를 얻어 황춘자 후보(30.9%)를 근소하게 앞섰다. 국민의당 곽태원 후보는 5.3%, 정의당 정연욱 후보는 2.6%, 민중연합당 이소영 후보는 0.6%를 얻었다.
흥미로운 것은 용산 지역의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42.6%)이 더민주(23.0%)와 국민의당(7.0%) 지지율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무당파 18.5%). 하지만 황춘자 후보는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66.3%의 지지를 얻었고, 진영 후보는 더민주 지지층과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각각 73.4%와 14.4%의 지지를 얻어왔다. (표본 오차 95% 신뢰수준 ±4.3%포인트, 응답률 9.0%.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 선거 여론조사 공정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관건은 부동층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하고, 새누리당 지지층이 얼마나 결집하거나 이탈할 것인가로 보인다.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촌에서 만난 한 주민(남.58)은 "골치 아프니까 일단 1번을 찍겠다. 이 동네는 아무래도 보수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남.60)도 "진영 의원 골수팬이었는데 탈당 사태로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반면에 갈월동에 사는 안병인(여.66) 씨는 "이번 공천 사태로 새누리당에 등진 사람도 있고, 반대로 진영 의원이 새누리당을 배신했다는 사람도 있다"면서 "나는 진영을 찍을 것이지만, 더민주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낙후한 용산 지역, 재개발 규제 완화 vs. 도시 재생 사업
용산 지역의 이슈는 '재개발'과 '관광 활성화', '복지 공약'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는 "용산의 발전이 멈췄다"면서 "용산을 바꿀 진실한 진짜 일꾼 황춘자가 필요하다"고 홍보했다. 황춘자 후보는 먼저 이태원에 외국인 중심의 특화 공간을 만들며, 용산 전자 상가를 '최첨단 IT 청년 창업 밸리'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주민들이 재개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재개발 사업 절차를 단순화하고, 용산 관광 특구와 연계한 고급 주거 단지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도시 정비 사업의 정치화를 지양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진영 후보는 경기도 성남시의 공약을 받아 용산구에 '공공 산후 조리원'과 국공립 어린이집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원주민을 쫓아내는 방식의 재개발을 지양하고, 해방촌, 전자상가, 원효로, 후암동, 서울역 일대에 낡은 지역을 보수하는 방식의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같은 당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발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곽태원 후보는 미군 부지를 활용해 국제기구를 유치하고, 골목 둘레길을 만드는 등 용산을 '테마 관광 명소'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용산을 '혁신 교육 지구'로 지정하고, 용산에 창업 보육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재개발 지역에는 '주민 참여형'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황춘자 후보와 곽태원 후보는 둘 다 '용산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던 '용산 국제 업무 지구 개발' 사업을 다시 추진하고, 철도 시설을 지하로 돌리겠다고 약속했다. 반면에 진영 후보는 지하철 신분당선이 이촌역을 지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정의당 정연욱 후보는 학교 앞 '용산 화상 경마 도박장' 반대 싸움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대안으로는 전월세 인상률 3.3% 제한, 전월세 계약 기간 6년 보장, 재개발 사업 요건 강화, 분양 원가 공개·분양가 상한제 등을 내걸었다.
정연욱 후보는 이와 더불어 "쉬운 해고와 노동 개악을 막고, 영유아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며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한다"는 중앙 공약을 내놨다. 또 대형 마트 허가제를 도입하고 상가 임대차 기간 10년을 보장하며, 법인세를 올린다는 '경제 민주화' 공약도 내걸었다.
민중연합당 이소영 후보는 '탄저균 반입 중단을 위한 SOFA(주한 미군 지위 협정) 개정'과 '미군 기지 오염 수준 재조사 및 정화 비용 미군 전액 부담', '화상 도박 경마장 폐지'를 지역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후보는 "수년간 싸워온 전문가 주민들이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주민의 직접 정치를 위한 오픈 플렛폼'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중앙 공약으로는 "등록금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하고, 미취업 졸업생에게 실업 급여 제도를 실시하며, 재벌의 사내 유보금에 '청년 고용세'를 매기겠다"는 등의 청년 공약을 제시했다. 또 0~14세까지 병원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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