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진영 의원이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더민주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긴 조경태 의원의 사례와는 비교 불가다. 노골적인 '공천 보복'이 있었다. 합리적 성향인 진 의원의 입장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 의원의 더민주 입당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북한 대북 송금 특검을 반대하며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으로 옮긴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김부겸, 김영춘,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의 사례와 비교될 수 있다. '명분 있는 탈당'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부영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다만 김부겸, 김영춘 의원 등은 당내 선거 때마다 더민주에서 이른바 '주홍글씨'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이는 진 의원의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진영 의원은 자타 공인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꼽힌다. 그가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도 자신의 뿌리인 호남 인맥보다 '보수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1950년 생인 진 의원은 서울 출신이지만 원적은 전라북도 고창이다. 진 의원의 부친은 고창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인사로 알려져 있다. 진 의원의 집안에는 언론인이 많았다. 전북 지역에서 존경받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무초 진기풍 선생(전 전북일보 사장)이 그의 작은 아버지다. 진기풍 선생의 매부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KBS 사장(김대중 정부 시절)을 지낸 박권상 전 사장이다. 두 인물 모두 전북에서는 진보적 성향에 가까운 거물 언론인이다. 진 의원은 사석에서 진 선생과 박 전 사장이 자신의 '인생 멘토'라고 말한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정치에 입문할 당시 야권에서 진 의원을 탐냈던 적이 있다. 야권에서 '러브콜'도 많이 받았었지만 그는 결국 '보수주의자'를 자처하고 보수 정당에 투신했다.
진 의원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언론인과 법조인의 길 중, 법조인을 택했다. 진 의원은 1980년 판사에 임용됐고, 이후 변호사로 변신했다. 1997년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의 정책특별보좌역을 맡아 정계에 입문했지만,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이회창 총재와 결별한다.
2004년에 서울 용산에 출마, 당선된 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된다. 이때부터 그는 '원박(원조 친박)'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진 의원은 그간 '원박'이라는 평에 걸맞지 않는 '소신 발언'을 자주 해 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수정 파동 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안 고수' 입장과 다른 입장을 냈다. 이 때문에 진 의원이 '짤박(잘린 친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그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핵심 요직에 기용된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 박근혜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 때는 "민간병원이 공공의료 영역을 대신한다고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공공의료는 더 강화되는 게 맞다"면서 "그런 취지에서 보면, 진주의료원 폐업은 상당히 애석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주류의 입장과는 정 반대의 '소신'이며 사실상 야당의 당시 기본 입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실패 논란 때는 "용산코레일 땅만 재개발하면 문제가 없는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하룻밤 사이에 서부이촌동까지 포함시켜버렸다"며 "오세훈 전 시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거침없는 비판을 했다. 오 전 시장은 현재 '친박'으로 변신,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진 의원은 결국 기초연금 국민연금 연계 논란 과정에서 장관직을 던지고 나왔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진 의원의 (국무위원들이)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친박 파문' 선언을 했다. 박 대통령이 진 의원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이번 진 의원 공천 배제는 박 대통령의 정치 보복에 의한 것이라는 정황이 또렷해지고 있다.
뿌리가 전북라는 점 등 때문에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인 김종인 대표와도 가깝게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서는 김종인 대표가 행복추진위원장을, 진 의원이 부위원장을 지냈었다. 진 의원에 대해서는 야당 의원들도 후한 평가를 내려왔다.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최재천 의원 등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주변 상황과 진 의원의 성향 등을 종합해 보면 무소속 출마 대신 더민주를 택한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용산 지역은 야권 입장에서는 무주공산이다. 진 의원이 17대부터 내리 3선을 하는 동안 야당 후보는 계속 바뀌었다. 17대 총선에서는 김진애 전 의원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18대 총선에서는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통합민주당 후보로, 19대에는 조순용 전 KBS 앵커가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서 패했다. 이 지역은 빈촌과 부촌이 공존하는 곳이며, 다른 여당 강세 지역에 비교했을 때 호남향우회 등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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