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언론 가리지 않습니다. 한목소리로 태산 같은 걱정을 토해냅니다 12.5%. 사상 최악을 기록한 청년실업률 앞에서 한국사회 전체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수치가 좀 더 커졌을 뿐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청년 일자리 창출' 공약이 감초처럼 등장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청년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수저계급론'과 '헬조선' 탄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청년 문제는 여러 선거 이슈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러던 차에 더불어민주당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청년비례대표 선출 과정이 불공정 논란 끝에 중단돼 버렸습니다. 남녀 각 2명씩 모두 4명의 경선 후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이른바 '빽'이 작용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김규완 후보는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이 17대 국회의원을 지낼 때 7급 비서로 4년간 근무한 경력이 드러났고, 최유진 후보는 비례대표 심사 담당 당직자로부터 자기소개서 등을 첨삭 지도받았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악성 중의 악성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공천관리위원장 '빽'이 후광 효과를 발휘했을지 모른다는 얘기, 심지어 심사담당자가 과외 교사가 됐다는 얘기는 훍수저 물고 태어난 절대 다수의 청년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립니다. '청년의 꿈과 어려움을 대변할 사람'을 뽑는 과정이 청년에게 염장 지르는 과정이 돼 버립니다.
분석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이런 정당이 무슨 낯으로 청년을 상대로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한 표 달라고 호소한단 말입니까? 청년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내보인 문제는 누워서 침 뱉기를 넘어 우물에 침 뱉기입니다. 투표율을 끌어올리고 지지표를 긁어모으는 핵심 동력원인 청년들의 반감을 샀다는 점에서 당 전체, 당 소속 출마자 전체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힌 것입니다.
더민주 지도부가 그랬죠? 이해 못 할 공천 결과가 나오고, 이에 지지층이 반발하면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정무적 판단'이라고, 더 이상은 묻지 말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런 더민주 지도부에게 되돌려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 '정무적 판단'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상에게 발휘하는 겁니까? 정치적 잠재 수요층인 청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접근조차 엉망으로 하는 판에 도대체 어디서, 어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한단 말입니까?
더민주 지도부가, 특히 김종인 대표가 공천을 마무리한 후 경제실정론을 집중 제기할 계획이라고 하죠? 부질없습니다. 경제실정론의 골격을 민생파탄으로 잡고 있다면 부질없습니다. 경제 실정으로 민생을 파탄지경으로 몰고 간 박근혜 대통령을 심판하자고 외치기 위해서는 입이 깨끗해야 합니다. 최소한 민초들 사이사이로 울려 퍼지게 출력 좋은 마이크라고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청년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의 '뻘짓'과 '갑질'로 경제실정론을 올리는 입은 부르터 버렸고 마이크 출력은 떨어져 버렸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뒤에선 똑같은 짓거리나 하는 집단으로 내몰리는, 신뢰의 위기를 자초해버렸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개인적 일탈이라는 식의 변명은 먹히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일만 터지면 내놓은 안면몰수형 변명을 표절한 것임을 온 국민이 다 압니다. 게다가 그런 변명을 늘어놓을수록 집 단속도 못하는 '콩가루' 정당의 한심한 몰골만 부각됩니다.
선출 과정을 중단한 더민주가 청년비례대표제도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제도의 운영 폭과 운영 효과가 달라집니다. 제도를 보기 이전에 거울부터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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