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핵무기 승인권자가 제거되면 핵전쟁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일까? 아찔한 질문이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고 말았다. 바로 김정은 '참수작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돌입한 군 당국은 "참수작전이 이번 훈련에 포함되었다"고 언론에 계속 흘리고 있다.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다간 네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내고 싶은 것일 게다. 순수하게 해석하면 대북 억제의 한 방편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응은 가장 우려할 만한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4일 신형 대구경 방사포 시험사격을 현지지도하면서 "지금 적들이 '참수작전'과 '체제붕괴'와 같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마지막 도박에 매달리고" 있다며, 핵탄두 발사 항시 준비 및 선제공격 방식으로의 전환을 명령했다.
북한이 핵 대포에 관심을 갖는 이유
발언만 놓고 보면, 북한이 신형 방사포에 핵탄두 탑재를 시도하고 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진위 여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대표적인 전술핵인 핵 대포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에게 전술핵은 한미동맹에 대한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이퀄라이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 힘의 균형을 이룩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더구나 핵탄두 방사포는 사드(THAAD)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제(MD)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식이다.
또한 북한은 전술핵 보유로 ‘헤드 게임(head game)'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헤드 게임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두뇌적·심리적 영향을 미치려는 전술을 의미한다. 만약 북한이 핵탄두 방사포를 보유한 상태에서 국지전이 발생하면, 한국군이나 한미연합군은 북한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조선인민군은 섬멸의 포문을 열어두고 박근혜의 생존욕과 생존방식을 지켜볼 것"이라고 위협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방사포에 핵탄두를 달 수 있을까?
그렇다면 북한은 신형 방사포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을 확보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게 방사포의 구경이다. 구경이 클수록 핵무기 소형화의 부담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신형 방사포 구경은 300mm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최근 시험 발사한 방사포 구경이 최대 400mm에 달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다른 나라의 선례를 보면, 북한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개발한 핵 대포의 구경은 280mm였다. 파키스탄은 하프트-9(Hatf-9)에 핵탄두를 장착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방사포의 구경은 360mm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방사포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문턱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살아 있는 자의 손'보다 무서운 '죽은 자의 손'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반도 유사시 북핵 사용 승인권자인 김정은을 제거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제거한다면, 한국은 북한의 핵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김정은 참수작전은 북한의 핵 보복 위협을 키우게 된다. 그 이유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죽은 자의 손'(dead hand)이 핵 공격 버튼을 누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냉전 초기에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유사시 상대방의 지도자를 제거한다는 참수작전을 강구했다. 그러자 암호명 '죽은 자의 손'이 부상했다. 핵무기 승인권자가 제거되거나 지휘통제체계 마비로 승인권자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자동적으로 핵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최고 지도자의 결사 호위를 공언하고 있는 북한이 과연 예외일까?
또한 실전용으로 개발된 전술핵은 그 사용권이 야전 사령관으로 사전위임(pre-delegation)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유사시, 특히 한미연합군이 김정은 참수작전을 시도한다고 북한이 판단하면, 핵 대포 사용 문턱이 그만큼 낮아질 위험이 크다.
정리하자면 참수작전과 핵대포는 전형적인, 아니 가장 위험한 안보 딜레마를 잉태하고 있다. 참수작전은 '핵무기를 쓰려고? 그러다 네 목이 날아간다'는 메시지를 김정은 앞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답장 내용은 이렇다. '내 목을 친다고? 그러다 핵 불벼락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공할 상황은 우리에게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참수작전이 자멸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북한이 핵 대포를 갖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건 바로 협상을 통해 우선 핵 동결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물질 생산이 중단되면 방사포에 장착할 핵탄두를 만들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 위 글은 <내일신문>에 기고한 원고를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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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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