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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혐오'와 '박정희 공포',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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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 혐오'와 '박정희 공포', 닮았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스피노자의 뇌>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강양구 기자가 오늘의 과학 고전으로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를 독특한 방식으로 읽어봅니다.

▲ <스피노자의 뇌>(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씁쓸했던 경험 한 가지. 2008년 거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며 시민의 촛불이 환하게 밝혀졌을 때의 이야기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고 나서 쇠고기 수입이 금지됐을 때부터 거의 5년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를 추적해왔던 나로서는 이런 갈등이 일어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기자의 의무로 여겼다.

자연스럽게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 조건의 하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경제 민주화'를 한다는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사로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언급하자마자, 차마 옮길 수 없는 욕들이 댓글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부의 열성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이 작성자였다. 노무현 정부 때나 이명박 정부 때나 나는 무차별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 초래할 위험을 지적했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어떨 때는 욕설을 퍼붓고, 어떨 때는 칭찬을 하는 현실.

씁쓸하게도 기자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런 일이 갈수록 많아진다. 아무리 여러 가지 사실(fact)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이런 나를 더욱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스피노자의 뇌>를 읽는 방법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는 관심사에 따라서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바로 그래서 고전 대접을 받아 마땅한 책이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서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근대 철학사에만 익숙했던 독자라면 근대 철학의 '별종'이었던 스피노자의 삶에 입문하는 책으로 이 책을 읽어도 좋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에 대한 충만한 '팬심'으로 책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해서 그의 짧은 평전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심신이원론, 즉 몸(육체)과 마음의 이분법을 반박하는 책으로 <스피노자의 뇌>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한한 몸과는 다른 영원불멸한 마음(영혼)의 존재는 여전히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통념인데,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분법의 통념을 깨려는 의도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다마지오는 과학자 역시 이런 통념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당수 과학자가 마음의 자리에 영혼 대신 뇌를 가져다 놓고서 몸과 뇌의 이분법이라는 통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새로운 이분법을 깨려는 논쟁 속에 놓인 책이기도 하다. (이 논쟁은 내로라하는 뇌 과학자 사이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맥스웰 베넷과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의 <신경 과학의 철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참고하라.)

'이성'보다는 '감성'이 먼저!

이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을 말할 차례다.

다마지오가 <스피노자의 뇌>에서 공들여 설명하는 대목은 감정, 느낌, 정서의 중요성이다. (그는 이 셋을 세심하게 구분하고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런 사실만 언급하자.)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감정'이 중요한 열쇳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제 이 책에서 왜 스피노자가 중요한지도 감을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감정, 느낌, 정서인가? 다마지오는 뇌의 정서 담당 부분이 손상을 입은 환자가 인지, 계산, 지능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도 의사 결정, 대인 관계, 사회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지적한다. 즉, 인간의 사고 체계에서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감성의 힘은 훨씬 더 세다. 이 책에 소개된 연구 결과를 하나 더 살펴보자. 예를 들어, 정서적으로 유효한 자극을 일으키는 대상을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뇌의 상태를 관찰해 보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보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뇌의 한 부분인 편도는 활성을 띠는 모습을 보였다.

뇌 깊은 곳에 위치한 편도는 공포나 분노의 정서 촉발에 관여하는 자물쇠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공포나 분노의 느낌부터 가졌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바로 그런 공포나 분노의 느낌에 맞춤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나중에 덧붙였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인 것이다.

'노무현' 혐오감 vs. '박정희' 공포감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노무현' 세 글자에 공포나 분노의 느낌이 덧씌워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사진만 봐도 온 몸에 혐오감이 돋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혐오감에 맞춤한 이야기를 만들고 찾는다. '이명박' '박근혜' 혹은 '박정희' 세 글자에 공포나 분노의 느낌이 덧씌워 있는 사람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덩치가 큰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찌꺼기조차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당연히 순간순간마다 생존 투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효과적인 재능은 무엇이었을까?

맞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수상한 움직임이나 갑자기 맞닥뜨린 낯선 동물의 첫인상을 포착해 재빠르게 피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생존 재능이었을 것이다. 뇌의 편도 신경 세포가 유쾌한 자극보다는 불쾌한 자극에 반응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의미심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불쾌한 반응에 예민한 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유리했다.

호모 사피엔스, 이렇게 몰락하는가?

이렇게 한 때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능력이 달라진 환경에서도 도움이 되리란 법은 없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21세기에 생존하려면 첫 느낌으로 아군과 적군을 파악하는 능력보다는, 일단 '소통하고' 최선을 다해서 '이해하고' 가능한 한 '공감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소통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감성이 필수적이다.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스피노자의 또 뇌 과학을 통해 감정을 재조명한 다마지오의 의도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다.

그런데 어쩌랴. 마치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사바나가 재현된 것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또 종합 편성 채널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물어뜯는 데만 여념이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넘치는 것을.

이렇게 한반도 또 지구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운이 다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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