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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이 호출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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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이 호출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도대체 왜?

[분석] 현실에서 사라진 '정의', 드라마에서는 찾을 수 있을까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며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의 후속작인 tvN의 <시그널>이 방영 첫 주부터 최고 시청률 8.5%(2화,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1화 시청률은 6.3%를 기록해 <응답하라 1988>의 6.1%보다 높았다.

드라마는 지난해(2015년) 7월 31일 형사소송법 개정 후 사형에 해당하는 살해 범죄에 공소 시효를 적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경찰청이 장기 미제 사건 해결을 위한 전담 팀을 꾸린다는 설정을 심었다. 여기에 현재와 과거의 경찰이 무전기로 연결된다는 판타지를 덧붙였다.

이런 설정 위에서 드라마는 2회에서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을 조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악행을 저지른 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당위의 배경을 만든 셈이다.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영구 미제 사건은 과학 수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말고도, 여러모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상징적 순간이다.

우선 독재 정부 아래에서 민초의 삶보다 정권의 안온이 더 중요했던 시기 발생해 치안의 공백이 있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사건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각별하다. 또 영국의 '잭 더 리퍼', 미국의 '조디악 킬러'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쾌락 연쇄 살인마의 한국형 등장이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모방범을 낳았다는 점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면서 탄생한 여러 연쇄 살인 사건의 시초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 한국의 상징적 이미지인 도심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났다는 점 역시 급속한 근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들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영화 안에 녹여 한국 영화의 손꼽히는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이 영화에 이어서 <시그널>의 모티프가 된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 드라마 <시그널>은 현대사 한가운데서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다. ⓒtvN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생했나?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은 총 10차례에 걸쳐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일대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며, 이 가운데 1988년 9월에 일어난 사건은 모방범 윤 아무개(22) 씨의 소행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9차례의 살인 사건은 1986년에서 1991년 사이에 발생했으며, 범인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피해자의 연령대를 보면, 범인은 혼자 있는 여성을 노렸다는 점 외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첫 사건 피해자는 당시 71살의 고령이었으나, 1990년 11월 태안읍 병점리 야산에서 시신이 발견된 피해자는 14세의 청소년이었다.

2000년 8월 8일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은 공소시효법 개정으로 시효가 백지화되었으나, 이 사건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 범인을 찾아서 처벌할 길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일지

1차(1986년 9월 15일) :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 / 피해자 이모 씨(71세)
2차(1986년 10월 20일) :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 피해자 박모 씨(25세)
3차(1986년 12월 12일) : 태안읍 안녕리 축대 / 피해자 권모 씨(25세)
4차(1986년 12월 14일) :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 피해자 이모 씨(23세)
5차(1987년 1월 10일) :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 피해자 홍모 씨(19세)
6차(1987년 5월 2일) : 태안읍 진안리 야산 / 피해자 박모 씨(29세)
7차(1988년 9월 7일) :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 피해자 안모 씨(54세)
8차(1988년 9월 16일) : 태안읍 진안리 자택 / 피해자 박모 양(14세)
9차(1990년 11월 15일) : 태안읍 병점리 야산 / 피해자 김모 양(14세)
10차(1991년 4월 3일) : 동탄면 반송리 야산 / 피해자 권모 씨(69세)
범인은?

현재까지 우리 사회가 밝혀낸 이 사건 범인의 프로파일링 결과는 ▲165~170센티미터의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성 ▲사건 당시 20대 중반 ▲손이 매우 부드러움 ▲혈액형 B형 정도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 점을 모티프로 피해자의 증언에서 손이 부드럽다는 점을 부각했으며, 유력한 용의자로 그려진 박현규(박해일 분)에게는 유약한 인텔리 남성의 이미지를 덧댔다.

범인이 단 9차례의 범행에 그치지 않았으리라는 유력한 증거도 이후 나왔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800회 기념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사건'의 첫 번째 사건으로 이 사건을 다뤘는데, 연쇄 살인 사건 발생 전 일대에서 연쇄 강간 사건이 발생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범죄학자들은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연쇄 강간 사건 용의자 또한 손이 부드럽고 욕을 잘하는 20대 남성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아울러 범인의 거주지는 수원시였으며, 시외버스를 타고 화성으로 내려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범인이 가장 큰 범행 공백기를 보인 시기는 1987년 5월 2일 태안읍 진안리에서 30세 여성을 살해한 7차 사건과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리에서 14세 여성을 살해한 9차 사건(중간의 8차 사건은 모방 범행) 사이의 3년 6개월이다.

이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시기 수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점 또한 밝혔다. 19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근처 야산에서 여고생이 발견되었는데, 사건 용의자로 추정된 인물은 2주 뒤 수사 중 고문 때문에 사망해 추가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전근대적 수사 기법으로 인해 진범을 잡을 결정적 기회를 놓친 셈이다.

<뉴스메이커> 2006년 688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사이코패스라는 용어 회자의 원인이 된 연쇄 살인마 유영철은 이 사건 진범이 "다른 사건으로 오래전부터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쇄 살인의 쾌락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충격적 범행

이 사건은 그 잔혹성과 연속되는 전개로 인해 경기도 남부를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범인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묘사되듯, 성폭행 후 여성의 속옷을 안면에 씌우고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살해하는 잔혹성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서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정 범인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붙잡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 게 언론에 보도된 건 이때가 처음이다. 범인이 단지 쾌락을 위해 이토록 연이어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 역시 사회를 떨게 하기 충분했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 살인범으로 거론되는 이는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여름 한 달 사이에 남자 어린이 두 명을 성폭행 후 살해한 이관규다.

▲ 화성의 연쇄 살인마는 한국에 과학 수사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한 악마로 인해 수사의 전근대 시대가 저물게 된 셈이다. ⓒtvN

왜 못 잡았나

간단하다. 과학 수사 기법은 물론, 그 개념조차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범인의 머리카락이 곧바로 발견됐다. 정액 또한 수집됐다.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범인은 곧바로 붙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살인 사건 수사는 탐문 정도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정액 샘플은 국내에서 DNA 검사를 하지 못해 일본에 보냈으나, 몇 차례 검사 후 모두 소실됐다.

당시는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기였다. 독재 정부는 올림픽 경비와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 진압을 위해 주요 경찰병력을 모조리 대학가로 보내놓은 상태였다. 이 기간 범행이 연달아 발생해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부는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뒤늦게 총력을 기울인다. 무려 연인원 18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됐고, 이들은 3000명의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당시 화성 인근에 살던 남성 상당수가 용의자가 되어 수사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전근대적 수사 스트레스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 당장 유족에게는 진범을 잡지 못했다는 아픔을 줬다. 용의자가 된 남성 상당수도 깊은 트라우마로 정상적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1990년 11월의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수사받았던 38살 남성은 철길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1991년 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32살 남성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차 사건 용의자는 아버지의 무덤 인근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한때 현장 검증에까지 불려갔던 당시 19세 남성은 1997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경찰 역시 이 사건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다. 이 사건 수사 본부 관계자 상당수가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후 얼마 안 되어 숨졌다.

괴담

사건 초기, 당시 전두환 군사 독재 정부는 이 사건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내려온 간첩의 소행으로 간주하는 황당한 실책을 저질렀다. 무턱대고 북풍에 기대던 전형적 행태를 보인 셈이다. 이처럼 군부가 낳은 괴담으로 인해 사건 초기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이 사건 해결에 투입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범인의 실마리가 워낙 묘연했던 탓에 점쟁이에 의존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점쟁이 말을 따라 경찰서 위치를 옮기기까지 했다. 수사 본부 풍수가 좋지 않아 범인을 못 잡는다는 이유였다.

사건 당시 범행의 잔혹성으로 인해 갖가지 괴담이 나돌기도 했다. 범인이 비 오는 날 붉은 옷을 입은 여성만 살해한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붉은 옷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도 이 이야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붉은 옷을 입은 피해자는 한 명이다.

사건의 교훈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으면서 우리나라 살인 사건 수사에 과학수사 기법 도입이 시급하다는 공론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사건 수사 기법은 긴 시간 동안 뚜렷한 발전을 보여, 현재는 한국의 과학 수사 기법도 매우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사이 관련 증거가 모두 사라져 진범은 끝내 잡지 못했다.

이 사건 이후 성장한 과학 수사 필수론은 우리나라에도 FBI(미국 연방수사국)와 같은 중앙 과학 수사 본부를 둬야 한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에서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의의를 가진다. 통상 사회적으로 처음 연쇄 살인 사건이 주목받는 시기는 전근대가 산업화로 인해 해체되는 시기로 꼽는다. 성장의 그늘에 감춰졌던 욕망과 사회적 박탈감, 도시화에 따른 사람의 밀집이 연쇄살인의 배경이 된다는 이유다.

영국의 '잭 더 리퍼'가 빅토리아 시대에 '연쇄 살인 사건의 탄생'으로 꼽히는 인물로 해석되는 점이 대표적이다.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즈의 모티프가 된 미국의 엽기적 시체 애호가 에드워드 게인 사건은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조디악 킬러와 찰스 맨슨은 청년 세대 혁명의 상징으로 묘사되던 히피 문화 말기에 사회적으로 대두해 역사 전과 후를 나누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1968년 권총으로 네 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일본의 연쇄 살인마 나가야마 노리오도 전쟁 후 급성장기를 걷던 일본 현대화의 어두운 이면이 됐다. 한국의 경우 이 사건은 농촌의 도시 식민지화가 완료되고, 이를 기념하는 서울올림픽 직전 발생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지닌다.

정의는 되찾아야 한다

<시그널>은 드라마라는 장치로 "시간이 지나도 아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죄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제 의식을 녹여냈다. 김원석 PD 등 드라마 <미생> 제작진과 드라마 <싸인>(2011년) 등을 통해서 한국형 수사물의 가능성을 연 김은희 작가가 손을 잡은 것도 화제다. 공중파에서 볼 만한 드라마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시대에 사회적 메시지를 과감하게 던지는 드라마가 케이블 채널에서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더 이상 상처받는 피해자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희망과 바람을 토대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그늘에서는 성장의 피해자가 나온다. 88 서울올림픽의 그늘에는 화려한 아파트촌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군부에 의해 강제로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난 빈민의 삶이 있고, 근대화의 이면에는 도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농촌의 아픔이 있다.

제작진의 말은 세월호의 아픔 역시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은 반드시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단호함도 읽힌다. 좀처럼 정의로움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시그널>이 과거를 재구성하자는 욕망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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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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