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마틴 유든(Martin Uden) 주한 영국대사가 발표자로 참석해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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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든 대사는 "국회의원들은 단순하고 대중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정책 그 이상의 대안을 생각해야 하며 단순히 국민 여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며 "정치지도자는 법과 정의를 위해서는 신문 머릿기사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든 대사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제 사형폐지는 근대화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의 잣대로, EU 가입을 위한 선결조건이기도 하다"며 "전쟁터에서나 자위를 목적으로가 아닌 국가의 이름으로 목숨을 뺏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이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생명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유든 대사는 이어 "사형제가 인간의 징벌 욕구를 채워준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사형제가 살인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유든 대사는 "특히 연쇄 살인자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의 생명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며 "연쇄살인은 사형집행으로 제어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유든 대사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유든 대사는 또 "영국에서 1969년 살인죄에 대한 사형제가 폐지됐는데 범죄율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이는 종종 사형제가 범죄 억지력이 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며 "그러나 모든 다른 요인을 배제한 채 사형제 폐지와 살인 범죄율 증가만 단적으로 연결 지을 순 없다"고 말했다.
유든 대사는 오히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50개 주 중 38개 주 사형제 유지)은 산업화된 사회 중에서 가장 높은 살인 범죄율을 보이고 있다"며 "단순히 사형제가 낮은 범죄율, 더 나아가 낮은 살인 범죄율을 의미한다는 논쟁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살인 범죄율이 5.5명인데 반해 영국은 1.4명, 독일은 0.9명, 캐나다는 1.9명이다.
"사형보다 더 많은 수의 더 잘 훈련된 경찰과 피해자 지원을"
유든 대사는 "세계의 정치인들은 더 나은 피해자 지원, 구제정책, 더 많은 수의 더 잘 훈련된 경찰, CCTV와 범죄자 DNA은행 설립과 같은 과학기술 투자,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범죄예방 교육 지원에 대한 투자, 범죄양성소가 되고 있는 교정 시설과 정책의 현대화와 같은 요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민들의 범죄에 관한 우려 때문에 부분적으로 사형제 유지를 정당화하곤 한다"며 "효과적이고 현대적인 사법제도는 단순한 만병통치약처럼 형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지원정책들을 총괄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유든 대사는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독재정치에서 인권국가로 탈바꿈했다"며 "다른 국가들의 모범이 되는 한국이 사형을 재집행하면 한국의 국가 명성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든 대사는 "한국의 사형수들은 이미 교도소에 갇혀 있으며 사회에 어떠한 위험도 초래하고 있지 않다"며 "사형집행은 냉혈한적인 사고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형제 지지 여론 불구 '옳은 일'이라 사형제 폐지"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프랑스의 사례를 들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사형제 폐지법안을 내놓았을 때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66%였으나 프랑스 국회는 "올바른 입법을 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라며 사형제 폐지법을 통과시켰다.
김 의원은 '범죄 억제력'에 대해서도 "1997년 살인사건이 789건이나 발생하자 그 해 12월 23명의 사형수를 처형했으나, 다음 해에는 살인사건이 177건이 증가해 966건이 일어났다"며 "범죄 억제력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16대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은 토론자로 참석해 "사형폐지론이 법률가와 국민의 감정에 대세를 이루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단계론적, 현실적 대응접근 방법이 함께 고려되는 것이 옳은 것 같다"며 '단계적 폐지론'을 제안했다.
정 고문의 제안에 따르면 법원은 사형선고를 하지 않음을 양형의 기본원칙으로 설정하고, 대통령과 법무장관은 사형집행에 서명하지 않아 집행을 유예하고, 사형수가 적체되면 5~7년마다 엄밀한 심사를 거쳐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며, 사형의 무용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수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저자 공지영 씨도 토론에 참석해 "살인을 저지르면서 사형선고를 받을 거라고 염려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며 "사형제도가 존속함으로써 살인이 줄고 극악무도한 범죄가 감소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공 씨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면 그 살인범들을 어떻게 처벌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며 "하지만 '용서'만큼 무서운 벌도 없다"고 말했다. 공 씨는 "피해자 지원에 좀 더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형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영우 신부도 "우리 사회는 범죄 피해자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사형집행으로 역할을 끝내는 국가, 필요할 때만 피해자 감정 운운하는 사형존치론자, 사건을 충격적으로 보도하며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해치는 언론, 이런 무책임한 현상이 피해자들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며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가해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선 "사형집행 않는 건 정부 직무유기"
반면 '사형 찬성' 토론자로 참석한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살인자에 대한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한 심정을 생각하면 이들에 대한 법의 처단은 필수적"이라며 "엄연히 사형제도가 규정돼 있으면서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은 엄연한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사형집행을 촉구했다. 박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현재로서 마지막 사형집행이었던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처형할 때 임석 검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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