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금) 첫 방송 된 tvN <갑동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사건 중 하나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잘 알려졌듯 연극 <날 보러 와요>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만들어진 사건이기도 하다. <갑동이>의 제목은 ‘잭 더 리퍼’나 ‘조디악’처럼 미제사건으로 남은 연쇄살인범에게 붙여진 닉네임을 의미한다. 이름도 얼굴도 직업도 모르기에 그 놈이라고도 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 누군가에게는 짐승으로 불리는 범인은 ‘갑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어느 밤, 시골길을 걷던 소녀를 덮친 검은 그림자 하나. 결국 주검이 되어 발견된 소녀. 하지만 그 밤의 피해자는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범죄 현장을 지나가다 목격자가 된 또 다른 소녀. 그리고 범인은 잔인한 게임을 건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둘 중 주검이 된 이는 누구이고 살아남아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게 된 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소년 한 명이 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현장을 달려간 그는 동자승이다. 그런데 손에 어울리지 않게 쌍절곤이 들려 있다. 그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공격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17년 후의 세월이 흐른 뒤 동자승은 ‘똘중(또라이중)’이라 불리는 강력계 형사가 되었고, 소녀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내가 진짜 갑동이다’라는 낙서와 함께 돌아온 갑동이의 기억 앞에서 만난다. 형사가 된 무염(윤상현)은 갑동이 용의자 중 한 명의 아들이다. 소위 ‘동네 바보’라 불리는 모자라는 아버지였지만 그의 무죄를 믿는 무염은 진짜 갑동이를 잡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경찰 양철곤(성동일). 무염의 아버지를 유력한 용의자로 여긴 이유로 무염과 질긴 악연을 맺은 그는 사실 무염만큼이나 갑동이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수사도 인권도 익숙한 단어가 아니던 시절,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이고 그래서 미숙했던 젊은 철곤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무염과 철곤이 재회한 지금은 갑동이의 공소시효마저 지나버린 시점이지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이유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사실 <갑동이>의 초반 시선을 끄는 무염과 철곤의 날 선 대립은 그들의 캐릭터만큼이나 다소 전형적이었다.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잊어야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무염과 “마누라 잃고 자식새끼 아픈 것”이라는 대사를 통해 그 역시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철곤의 갈등은 영리하지만 예상 가능한 한 수였다. 그럼에도 <갑동이>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건 연쇄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이 캐릭터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권음미 작가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2011년 MBC <로열 패밀리>를 쓴 권음미 작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그가 한 이야기 중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어떤 인물상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으로 들려준, ‘자기가 처한 운명보다 더 나은 인간이고자 하는 욕구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권은미 작가가 <로열 패밀리>의 인숙(염정아)을 통해 보여줬던, 어떤 상황과 선택으로 인해 극한의 처지로 몰리는 와중에도 자신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나오는 처연함과 강인함 같은 것을 <갑동이>에서도 만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릴러물로서 평타 이상을 치며 출발하긴 했지만 <갑동이>가 ‘미스터리 감성 추적극’이라는 애매한 장르명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입장에서 권음미 작가의 분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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