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펀딩 바로가기)
나에게 강은, 6년 전 풍경 속에 머물러 있었다. 초록의 침엽수림, 금빛 너른 모래밭, 허리께를 간질이는 갈대들, '쨍강' 얼음을 깨고 흐르던 맑은 강물.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을 지나고 있는 강은 여전히 푸르렀다. 도시를 떠나며 겨울 강은 메마르고 삭막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연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고 죽비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낙동강 숨결 느끼기' 1박2일 순례를 이끌던 지율 스님은 "'와서 한 번 봐라. 강의 숨결을 느껴라.'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라고 했다. 1년 가까이 매일매일 마주했던 강이 들려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다 전할 수 없으니 와서 직접 듣고 느끼라는 것. 바로 곁으로 가니 강이 속삭였다. '겨울의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흘러온 대로 흘러갈 뿐이지.' 믿음직스러웠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마. 그냥 너의 길을 가.' 위로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상주보 건설현장 앞에서 2/3가 모래인 모래 강에서 모래밭을 걷어내고 자연스러웠던 물길을 '럭키 플라워로 연출해 유토피아를 꿈꾸는 5가지 락(樂)을 선사하겠다.'는 청사진을 담은 공사 안내판을 만났을 때 코웃음을 쳤다. 한낱 철근 콘크리트로 세운 조형물을 꽃으로 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저 강이 '너희 인간들이 아무리 파헤쳐도 나를 어쩌지는 못해!'라고 버텨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포클레인이 모래를 파내 덤프트럭에 담아가는 것을 보고, "날마다 하루 천 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지는 걸 봤다."는 지율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리 믿고 싶었다. 나약한 우리들을 꾸짖듯 강은 유유히 흘러가주길 바랐다.
가을 강에서 삭막한 겨울 강을 보다
지난 가을, 다시 낙동강의 내성천을 찾았다. 바람은 바람일 뿐. 6년 전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굽이굽이 흐르던 강을 인간이 억지로 힘으로 곧게 펴자 고운 모래밭들이 자취를 감췄다. 강 옆은 황폐화된 땅에 제일 먼저 뿌리를 내린다는 붉은 풀들이 온통 자리를 차지했다. 근처에 들어선 '마지막 4대강 공사'로 불리는 영주댐 공사의 영향도 커 보였다. 댐에 물이 채워지면 사라질 마을들도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 수천 년 전부터 강물이 스며들어 삼모작도 가능한 옥토인 주변 농경지들도 마을들과 함께 버려졌다. 6년 전 상상했던 삭막한 겨울 강이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흐르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현장을, 파괴의 방조자가 되어 바라보는 참혹함에 휩싸였다. '후세대에 죄를 짓는다.'는 상투적인 말이 절로 떠올랐다.
6년 전, 1박2일 취재를 가면서 돌 지난 지 몇 달 안 된 아들이 눈에 밟혔다. 엄마 없이도 잘 놀지 걱정했다. 염려와 달리 이틀 동안 별 탈 없었던 아들이 벌써 커서 아홉 살이다. 자연의 변화 속도만큼이나 인간의 성장 속도가 무서운 나는 여전히 어설픈 엄마다. 아들과 유일한 소통의 시간은 잠자리 책을 읽을 때다. 지난밤 함께 본 그램책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사노 요코 글‧그림, 시공주니어)가 생각났다.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 옆 조그만 집에, 한 아저씨가 살았다. 봄이 되자 나무에 꽃이 가득 피었다. 아저씨는 성가시기만 했다. 커다란 나무에 작은 새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던 아저씨는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와 나무를 걷어차면서 말한다. "어디 두고 보자." 나무 아래에서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아저씨. 그런데 찻잔에 뭔가가 떨어졌다. 새똥이다. 다시 아저씨는 나무를 걷어차며 말한다. "어디 두고 보자." 봄이 가고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아저씨가 나무를 걷어차며 "어디 두고 보자."고 할 일이 꼭 생긴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아저씨인양 화난 목소리로 "어디 두고 보자"를 반복하자 아들은 "두고 보긴 뭘 두고 봐. 나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라며 나무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커다란 나무에 쌓였던 눈덩이가 툭툭, 아저씨 몸 위로 떨어지던 날 일이 벌어진다. 화를 참지 못한 아저씨가 집으로 뛰어가 도끼를 들고 나와 "두고 보자! 이 몹쓸 나무!" 하며 커다란 나무를 베어 버리고 만 것. 그 장면에서 아들과 함께 '헉!' 한 마디 내뱉고는 한동안 다음 장으로 넘기지 못했다.
뭐든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없애고 보는 인간의 잔인함은 동화 속에만 있지 않음을 아는 나로선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부러 아들에게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물었더니 '시크한' 아들은 "묻지 말고 그냥 읽어줘."라며 귀찮다는 듯 말한다. 우리집 상전이니 분부대로 할 밖에.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아저씨의 일상이 달라진다. 아저씨는 봄이 온 걸 몰랐다. 커다란 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아저씨는 아침이 온 것도 몰랐다. 작은 새들이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밖에도 커다란 나무가 없어서 아저씨가 하지 못하는 일은 많다. 이미 일은 저지른 상황. 나무의 부재를 느낄 때마다 아저씨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내뱉고 급기야 "흑흑흑" 큰소리로 울어버린다. 그의 눈물은 뼈저린 반성의 눈물이었을까,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체념의 눈물이었을까.
포기 대신 4대강 기록관을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에 왔던 한 참가자가 지율 스님께 "스님, 이제 막을 수 없는 거죠?"라고 물었었다. 스님은 "그건 좋은 질문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여기서는 분노하다가도 지금 본 걸 금방 잊어버려요. 전부를 걸고 이 문제를 대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죠."
전부를 걸기 두려워하는 우리들은 중요한 문제들을 곧잘 잊는다. 당시 순례에 참가했던 전체 인원이 2000명이 넘고 지율 스님에게는 5000명에 달하는 메일링 리스트가 있었지만 낙동강 제1 비경이라는 경천대를 파헤치는 공사가 시작됐을 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름다운 경천대 사진을 들고 매주 종로 일대를 걸었지만 참가 인원이 15명을 넘지 않았다고. 그때 지율 스님은 처음으로 낙동강을 떠날 마음을 먹고 짐을 쌌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은 떠나지 못했고, 대신 영주댐 공사를 중지해 달라는 소송을 준비했다.
이미 1조 원 넘게 들어간 댐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가능성 여부로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놓치곤 한다. 지율 스님은 "우리는 너무 빨리 포기한다."고 일갈했다. 이때 좋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파국을 여기서 멈출 수 있을까?' '우리가 얻은 깨달음을 어떻게 후대와 나눌까'가 되어야 할 터.
댐 건설로 수용된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니 쑥새, 딱새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들이 날아다니고 담비나 맹꽁이 등 작은 동물들이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단다. 지금은 땅이 건조화되고 있지만 물을 채워 인공습지로 바꾸면 다양한 생명의 보고가 될 수 있다. 영주댐은 습지에 물을 대주는 것으로 역할을 달리 하면 된다. 지율 스님이 수자원공사라는 국가권력과 삼성물산이라는 거대 자본에 맞서 1인 소송을 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건 이런 복안이 있기 때문일 게다.
한 르포 작가가 우리나라 최고의 르포 작가는 지율 스님이라고 했다. 7년 전 홀연히 낙동강 곁으로 내려온 후 스님의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 카메라 속에는 4대강 사업 이 저지른 하루하루 강의 변화가 그대로 기록돼 있다. 스님만큼 기록하고자 하는 현장에 밀착해 있는 르포 작가가 얼마나 될까. 초보 르포 작가는 절로 고개를 숙일 뿐이다. 스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흘러온 강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기록도 만만치 않다. 4대강 홍보 동영상만 280여 개에 이른다. 그 기록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의 실체를. 지율 스님이 내내 말씀한 대로 '기록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
앞서 소개한 그림책 속 아저씨는 엉엉 울음을 운 후에야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깊은 뉘우침은 새 길을 보여주는 법이다. 4대강 기록관은 강의 울음을 아프게 들은 우리들이 후대와 함께 나누는 반성문이 될 것이다. 나무의 아픔에 깊이 감정이입 됐던 아들에게 전해줄 강의 이야기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의 기록에 이번엔 방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동조자로서 한 글자 보탠다. 오늘은 아들에게 좀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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