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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기록으로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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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기록으로 저항하다

[크라우드 펀딩]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②

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펀딩 바로가기)


1. 2015년 초겨울 평은리 강변

내성천 연재의 첫 장을 연 이상엽 작가의 사진 속에는 2015년 초겨울 평은리 강변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흐린 안개 속에 잠긴 마을,
황폐하게 변해가는 들녘 위로 넘어가는 사양,
허물어져 가고 있는 평은 역사(驛舍),
무너지고 있는 산야,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순환도로,
물길을 막고 선 거대한 영주댐 콘크리트 장벽

시선은 한 컷의 사진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어느 기슭에서 돌연 공격이 시작될 것 같은 그런 살풍경(殺風景)들 입니다. 지금 저는 그 풍경의 어디쯤에서 한 점으로 놓여 있고, 이 시공간을 빠져나가려 하니 숨이 차오릅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를 밀어내고 그 풍경들을 다시 빛 속에 놓아봅니다.
맑은 햇살이 들녘에 내려와 있습니다
풀숲에서 방울새 우는 소리가, 마른 풀들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씨앗들은 바람의 힘을 빌려 모체에서 떨어져 부드러운 땅 위에 떨어집니다.
저 들녘에는 아직 무수한 생명이 기다리는 봄이 있습니다.

ⓒ지율


2. 이별

'사는 날까지 예서 안 떠날란다'하시던 이녘할매는 기어이 짐을 싸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벌써부터 큰아들이 대구 시내의 아파트를 구해놓고 재촉을 하던 차였습니다. 짐을 싸다 마시고 할매는 먼저 이주단지 아파트로 이주한 뒷집 일영할매와 작별을 하기 위해 채비를 하셨습니다. 물 길러 갔다가 마주친 저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따라 나섰습니다.

할매의 손에는 질금 가루를 띄워 손수 쓰신 감주와 휴지통이 들려있습니다. 60년을 넘게 앞뒷집에서 이웃하고 살아오신 할매들에게는 굽은 허리만큼이나 굽어진 무수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별의 시간은 휘어가지를 않습니다. 나오실 때는 그만 주저앉으셔 급기야 제 등에 업히셨습니다. 날아갈 듯 가벼운 몸을 엎고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할매와 함께 이별의 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이게 마지막이가?' 하시며 일영할매가 먼저 눈물을 보이시자, 마을 앞 동호다리가 무너지는 날에도 마당에 앉아 무심히 콩을 가르시던 할매도 끝내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 '잘 있으레이' ⓒ지율

▲ '잘 가아' ⓒ지율


3. 그리움

이녁할매는 '일을 매조지 못하고 쏘다니기만 쏘다닌다'고 하시던 핀잔도 할 기력이 없어지셨는지
'나, 가고 나면 물 없어 어에 사노?'
'강에 물 많은데 뭔 걱정이세요.'
'강이 예전 강이라야...'

300회 이상 강길 안내를 했지만 이젠 강으로 내려서지 않습니다. 강은 풀밭이 되었습니다. 자갈이 드러나고 자칫 돌조각에 발이 다치기 일쑤입니다. 때때로 사냥꾼들이 개를 데리고 나타나 강 숲에 깃들고 있는 꿩이나 노루 사냥을 즐깁니다.

단 하나의 가치만이 우선시되는 이 세상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소리 내지 못하는 생명들과, 무너져가는 산야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아래 놓인 세상을 슬픔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문득,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에서 내려 선 길입니다. 어릴 때 놀던 강변이 너무나 그립고, 스무살 때 처음 보았던 서해 갯벌이 너무 그립고, 비오는 날 혼자 올랐던 운무에 잠긴 설악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움은 저를 인정 없는 세상으로 내보내고 전쟁터 같은 대지 위에 홀로 서게 합니다.

ⓒ지율


이곳에서 저는 4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3번이나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 난 후, 저로 인해 집주인들이 맘 졸여 하는 것이 불편해 친 텐트입니다. 정부는 강변 뚝방에 친 6평짜리 컨테이너 전시장과 텐트를 철거하기 위한 수순으로 토지인도소송과 토지인도단행가처분 민.형사 소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4. 영주댐 철거소송

지난 10일 진행된 낙동강 대법원 판결은 '낙동강 사업이 국가재정법에 위배 된다'고 했던 2심 판결의 결과를 뒤집으며 법에 의지했던 기대들을 저버렸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더 빠른 속도로 국토를 파괴하는 개발의 방향으로 달려가려 하고, 법원은 그 힘의 진행 방향을 우회할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성천의 친구들은 대한민국과 수자원공사, 시행사인 삼성물산을 피고로 영주댐 철거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주댐 철거소송은 큰 틀에서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낙동강에 1급수의 물과 하상을 안정화 시키고 수질 정화를 담당하는 모래를 공급하는 원천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댐을 건설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지질입니다. 저는 지질문제에 문외한이었지만 수몰예정지에 머무르면서 영주댐 주변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사태 현장을 목격하면서 지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영주댐 하부는 지질연대에서 가장 오래 된 시생대와 원생대가 만나고 있으며 두 지질 연대가 만나는 곳에 폭 30m 깊이 150m에 이르는 예천 전단대가 지나갑니다. 또한, 평은리 쪽으로는 내성천 단층이, 안동 방향으로는 오운리 단층이 주변을 지나갑니다.

▲ 전단대의 중앙에 앉은 영주댐 (우안) 2015.10 ⓒ지율

▲ 2015.11월 영주댐 우안 하부 /위 사진에서 초록 장막을 걷어내면 영주댐 주변의 지질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원인모를 이유들로 영주댐 공사는 1년이나 지연되었고, 담수 예정일을 닷새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율


또 하나의 쟁점은 합천댐 하류에서 15년 동안 일어난 하상의 변화가 불과 2년 만에, 영주댐이 준공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수자원 공사는 '변화는 일시적이며 미미하다'고 주장하며 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영주댐 담수가 진행된다면 수년 내에 모래강 내성천은 전설로 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변화는 일시적이며 미미하다'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는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요?

▲ 무섬강변 / ‘영주댐 6km 하류에 있는 무섬마을은 백사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3차례에 걸쳐 트렉터로 강을 갈아엎었습니다.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이 강으로 내려서던 지점입니다. ⓒ지율

ⓒ지율

영주댐 45km 하류에 있는 회룡포 강변도 둔치의 모래를 퍼내서 뽕뽕다리 주변을 덮었습니다. 언뜻 보면 외상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은 깊이 내상을 입고 있습니다. 강의 뿌리인 지천의 변화가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강이 낮아지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곳은 지천들입니다. 지천들은 깊어진 본류를 채우기 위하여 쓸려 내려가고, 지하수는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마르게 됩니다. 마치 뿌리가 상하면 잎들이 가장 먼저 시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의해서 보면 강 주변의 식생들도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종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물을 많이 머금는 버드나무들은 고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2009-2015 내성천의 지류 신음천 ⓒ지율

5. 기록으로 저항하다.

강의 변화에 대한 기록은 하류변화를 증거 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자료들입니다. 강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놓치기 쉬운 사업 시행자들의 언어와 주장, 영주댐을 건설하는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전문가들의 보고서, 그리고 법원의 판결과 언론보도 등을 모으고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시점이 오면 우리들이 기록으로 저항한 작업들이 그 바닥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가는 길이 희망이 됩니다. 함께 쓰는 기록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내성천의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회룡포 강변에 4대강 기록관을 세우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가기 :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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