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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vs. 라오스…누가 세상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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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vs. 라오스…누가 세상을 구할 것인가?

[초록發光] 가지 않은 길, 가야만 하는 길

지난해 마지막 한 달을 프랑스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진행 중인 라오스 산간 마을에 재생 가능 에너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정으로 꽉 채웠다.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GDP 세계 6위, 세계에서 핵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 프랑스, 이에 반해 같은 기준 GDP 세계 119위, 전력 보급률은 70% 내외임에도 국가 최대 수출품 중 하나가 전력인 라오스. 너무 다른 이 두 나라에서 기후 변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라는 서로 다른 주제의 활동을 하면서 머릿속에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가지 않은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이자 그의 제목을 그대로 딴 애모리 로빈스(Amory Lovins)의 글이기도 하다. 2015년을 마무리하며, 또 2016년을 시작하며 나는 우리가 가야 하는 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12월 12일 늦은 저녁, 파리 외곽 르부르제(Le Bourget)에 위치한 기후변화협약 총회장 안에서 환호가 이어졌다.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표단은 기립하여 박수를 쳤고, 연단에서는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이번 총회 의장을 맡은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간의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뿌듯해 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크리스티나 피게레즈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우리가 모두 승리했다는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그렇게 파리 협정이 체결되었다.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끝나자마자 일부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몇몇 국제 엔지오(NGO)들은 이번 파리 협정으로 2020년 이후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전 세계가 파국으로 가는 시나리오로부터 세계를 구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기후 정의 진영에서는 포장만 바뀐 협정문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비판적인 반응을 이어갔다.

이번 파리 협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론들이 가장 먼저 꼽은 성공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노력한다"라는 문구가 협정문에 명기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껏 선진국의 의견을 대변하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 2도로 제한'이라는 문구만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왔으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섬나라들이 요구해온 1.5도가 협정에 들어감으로써 더 정의로운 협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목표만 있을 뿐 정작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2020년 이후의 기후 대응 체제는 각국의 자발적 감축 기여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각국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 즉 특정 연도에 100% 탈 탄소 세계를 만든다거나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말만 무성하다가 결론에서는 사라졌다. 개발도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 기후 기금이나 피해와 손실에 대한 논의는 1.5도라는 문구에 매몰되어 쟁점에서 사라졌다.

기후변화협약 총회의 첫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14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설을 이어가며 미국의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는 첫 세대이자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 동안 전 세계 대표단들은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를 위한 길이 아닌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관련 기사 : '여기는 파리')

이대로라면 우리는 결국 기후 변화를 막지 못할 것이다. 비관에 비관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는 쉴 새 없이 라오스로 떠났다. 공교롭게도 라오스는 1893년부터 1954년까지 약 6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고, 그래서 어렵지 않게 프랑스 식당과 바게트를 파는 빵집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프랑스와 라오스의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의 지위를 받는 라오스는 빈곤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댐을 통한 전력의 수출을 국가의 주요 개발 전략으로 삼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태국(타이) 등의 기업과 투자자들이 대규모 댐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대부분 전력은 태국과 베트남으로 수출한다. 그런데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조차 종종 정전되고, 산간 오지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아직도 많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라오스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해 산간 마을과 학교를 지원하고, 직업 학교 학생들을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자로 키워내기 위해 교육을 한 지 6년이 되어간다. 댐 개발이 한창인 곳, 머지않아 전력 소비가 늘어날 이곳에서 우리는 왜 소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를 지원하는 것일까?

그 질문은 앞서 언급한 오바마의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의 연설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미래 세대는 그리고 개도국은 우리가 걸어온 실패한 길을 걸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으로 인해 비민주적이고 시민이 통제할 수 없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 라오스 산간 마을에 세워진 소규모 태양광. 집 앞으로 그리드가 지나가지만 비싸기 때문에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스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세계 각국의 개발 원조를 통해 재생 가능 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초소수력의 지원을 받아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규모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오스야말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구소는 지난해까지 산간 학교에 재생 가능 에너지를 지원해왔다. 그리고 올해부터 이를 에너지 자립 마을로 확대하여 17개의 가정과 1개의 학교 그리고 학교 내의 기숙사에 태양광을 지원했다. 하지만 지원을 하면서도 과연 이들이 이런 시스템을 잘 이해할 것인가?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그런 의문을 해결해 주는 것은 늘 라오스 주민들이었다. 라오스 산간 마을에서의 마지막 밤, 옆 마을 이장님이 찾아오셨다. 이장님은 다음에 자신의 마을에도 태양광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차로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험한 산길을 거슬러 온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지만 안정적이지 않거나 비싸서 쓰지 못하는 사람들, 오랜 경험으로 태양광과 초소수력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 화력 발전소나 대규모 댐과 같은 대규모 시스템보다 소규모 시스템이 더 익숙한 사람들 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 우리가 가지 않은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먼 훗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우리가 한숨지으며 "두 갈래 길이 있었고, 우리는 가장 편한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 길의 시작이 2016년이 되길 바라본다.

▲ 가정에 세워진 소규모 태양광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주민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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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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