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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짓눌린 파리, 인류의 미래도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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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짓눌린 파리, 인류의 미래도 XX!

[여기는 파리 ①] 불확실한 상황, 그러나 예상 가능한 결과

2015년 11월 30일~12일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립니다. 2020년 이후에 발효될 신(新)기후 체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국제회의지만, 논란이 되는 쟁점이 많습니다. <프레시안>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 2008년 이래로 <프레시안>과 공동 기획을 통해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현장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이번 파리에서 열리는 총회도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11월 13일 악몽의 금요일 밤 일어난 파리 테러와 연이어 포고된 비상사태는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21)에까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각국 정상이 참석을 약속했다고는 하지만,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과연 진지한 회담이 이루어질지 그리고 기후 정의 운동 진영이 준비해온 시위와 각종 행사가 어느 정도나 허용될지조차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총회 개막에 즈음한 11월 28일과 29일의 시위 그리고 회의 막바지의 압박을 위해 더욱 크게 계획되었던 12월 12일의 시위 모두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환경 단체와 노동조합이 프랑스 정부에게 시위 금지를 철회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의사 표현을 대체할 궁리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번 파리 회의는 교토 의정서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 체제 수립이 약속된 회의이기도 하거니와, 교토 의정서 체제 대체 시도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COP15에서 한번 좌초한 적도 있는지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회의라는 점에는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매일 매일 파리 거리와 공식 행사장인 르부르제 사이트의 상황은 불확실하지만, 그러나 회의의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 자체는 어떻게든 타결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다시 한 번의 교토 의정서 대체 실패에 따른 비난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한 이유라면, 이번부터 국가별 자발적 감축 목표(INDCs)라는 제도를 채택한 탓에 실제 각국의 온실 기체 감축 의무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두 배출국이자 코펜하겐 회의 이후 당사국총회를 사실상 좌우해온 미국과 중국 정부의 태도가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작용하지만, 이는 각국의 감축에 대한 규제력 이완을 기정 사실화하는 기후 변화 회의의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INDCs같은 방식이 배경이 된 결과인 셈이다.

교토 의정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그룹으로 나누어 선진국에는 강제적 감축 목표를 할당했고, 이에 반발한 미국과 캐나다 등이 탈퇴하고 일본과 뉴질랜드 등도 불참을 선언하여 무력화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각국으로부터 소위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감축 목표치를 제출받고, 이를 모아 조정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바뀐 방식으로 인해 90%에 가까운 국가들이 INDC에 동참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내용적으로는 후퇴했음이 분명하다. 현재까지 각국이 제출한 감축 목표를 모두 합한 2030년까지 전 지구의 온실 기체 누적 배출량은 기후 변화를 금세기말 2도 상승으로 제한하기 위해 설정한 배출 허용량의 75%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70년간 훨씬 많은 감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INDCs 자체가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문인 상황에서 미래에 다시 얘기하자는 안일한 약속이 지켜지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결국 금세기말 대기 온도 상승은 INDCs의 총합이 예상하는 산업혁명 시기 기준으로 2.7도 상승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때문에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COP21의 합의문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온적인 내용을 어떻게 포장하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약속한다'와 '노력한다' 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들, '추후 평가하여 재설정한다' 같은 유보적인 언급들을 가지고 파국을 면했다며 자기 칭송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들의 느릿느릿한 행보와 기후 변화의 긴급성 사이의 간극은 기후를 진지하게 염려하는 조직들마저 회의에 대한 로비에 더욱 몰두하게 하고, 미흡한 결과가 나와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이미 일부 국제 환경 단체들은 합의문에 대해 상당히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토 의정서 자체도 감축 목표와 감축 실현 방식에서 많은 결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의 합의가 성사될 경우 2020년부터 적용될 파리 체제는 정해진 지구적 목표와 구속력을 갖는 어려운 체제 대신에, '현실'이라는 이유로 정해진 목표치를 두지 않고 구속력도 갖지 않는 쉬운 체제를 택하게 될 것이다.

기실 이러한 후퇴는 지난 십수 년 사이에 유엔 체제마저 시장화, 기업화의 물결 속에 시나브로 포박당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기후 회의 석상에도 갈수록 배출권 거래제, 스마트 농법, 탄소 포집 같은 기술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해법이 득세한다. 그런 구멍들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당사국총회는 국제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틀 거리인 것도 현실이다. 이 딜레마를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좌파적 기후 정의 운동 일각에서는 유엔의 2주간의 협상에 모든 것을 걸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 회담 체제 자체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하고 있다. 회의와 결과가 실제 기후 변화를 막는 데에 미치지 못하고 기후 변화에 가장 피해를 받는 약자들을 배제한다면, 이 틀 자체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리에 가는 이유도 단지 협상을 응원하고 압박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큰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동력을 모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기후 변화를 국가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대중적인 토론으로 만드는 담론의 전환도 필요하다.

시위를 하고 안 하는 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로비와 시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 기후와 민중을 지킬 수 있는 체제와 방식이 무엇이냐 하는 것, 그것을 위해 파리의 합의 이후 준비하고 요구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 폭넓게 토론하고 고민하는 회의가 되는 것이 보다 중요해 보인다. 여러 모로 파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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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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