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프랑스 지방 선거 결과까지 심란하게 한다. 극우전선이 거의 30% 가까운 득표를 했다는 소식이 TV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얼마 전 벌어진 테러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 비극을 핑계로 프랑스 정부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도 불허하고 있다.
나경원 위원장, 한국 정부를 대신해서 연설?
애타게 찾고 있는 희소식은 어디에 가고, 또 하나의 황당한 소식이 들려 왔다. 2주차에 예정된 고위급 연설(high level segment)을 새누리당의 나경원 의원이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일이다. 나경원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기후 총회에서 행정부의 대표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기후 총회의 고위급 연설을 한 전례는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기후 협상을 지휘하는 수석대표인 환경부 장관이 해야 할 연설이다.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은 총회 현장에서 만난 차석대표 최재철 대사도 인정하였다. 그럼 환경부 장관은? 그는 파리에 없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2주차 고위급 협상을 지휘해야 수석대표가 귀국해버린 것이다. 국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오비이락인가? 아니면 나경원 의원에게 연설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전 세계가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는 기후총회를 나경원 의원은 개인 스펙 쌓기 용으로 소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나경원 의원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이미 지난 주 박근혜 대통령이 한차례 했던 한국 정부의 기후 대책에 대한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빼놓고는, 그녀의 유창한 영어 속에서 기억 남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관련 기사 : "박 대통령, 파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국제 망신")
"멀리 가려면 여럿이 함께 가야 한다."
멋진 말이지만, 새누리당 의원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 비행기 타고 떠나온 한국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잊어 먹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닌 듯하다. 그럼 다른 하나는? 지난 10월에 평창에서 세계 산불 총회를 개최하였다는 자랑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파리까지 와서 할 이야기가 고작 그건가.
기후 정의 활동가들의 기습 시위. "1.5℃ 이상은 안 된다!"
2주차 회의가 시작된 12월 7일, 총회장 부근 '그린존'에서 '기후정의연대(climate justice now)'의 전 세계 활동가들이 기습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협상 중인 파리 합의문에서 장기 목표를 '1.5℃'로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지난주까지 진행된 협상에서 2100년까지 허용할 수 있는 평균 기온 상승 목표를 "2℃ 훨씬 아래" 혹은 "1.5℃ 아래", 두 가지 목표로 압축했다. 그 어떤 목표도 결코 안전하지 않지만, 많은 선진국들은 2℃ 목표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1.5℃ 목표는 더 많은 온실 기체 감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지난 주의 협상을 거치면서 수정된 합의문 초안에서 사라진 문구도 있다. 예를 들어 "탄소 가격(carbon pricing)"이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었다. '배출권 거래제' 혹은 '탄소 시장'을 신(新)기후 체제 안에서 보다 확고히 제도화하기 위해서 그 옹호자들이 삽입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포스트 2020 신기후 체제에서 배출권 거래제와 같이 오염할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주의 시스템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토 의정서에서 도입했던 배출권 거래에 관한 여러 조항들이 신기후 체제를 위한 합의문 초안에도 흔들림 없이 살아남았다. 유럽 탄소 시장에서 탄소 가격이 톤당 5~6유로 수준까지 하락해서 사실상 실패한 제도로 평가되고 있지만 말이다.
국제노총 아나벨라, "정의로운 전환, 살아남을 확률은 5%"
아직 살아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국 삭제되리라 예상되는 문구들도 있다. 이 비관적 운명을 가진 문구를 두 가지만 꼽으라면, 전문 속에 있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과 제11조(실행과 준수의 촉진)에 포함된 "기후 정의 국제 법정(International Tribual of Climate Justice)"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온실 기체 감축을 위해서 사라져야 할 회색 산업이 있다면 그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국제노총(ITUC)이 거의 10여 년간 협상문에 삽입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온실 기체 감축의 비용과 희생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노총의 기후 정책 활동가, 아나벨라 로젠버그(Anabella Rosemberg)는 마지막 합의문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살아남을 확률이 5%도 안 될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매해 반복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기후 정의 국제 법정'은 각국이 기후 총회에서 제시한 온실 기체 감축 목표나 재정 지원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를 강제할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온 내용이다. 1997년에 체결된 교토 의정서에 따라서 선진국들은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5.2%의 온실 기체 감축하기로 결의하였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약속 위반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강제 수단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기후 정의 법정'이지만, 합의문의 법적 구속력 자체를 거부하는 미국 등의 선진국들에 의해서 결국 삭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자체가 목표인 신기후 체제. 대체 무엇을 위해서?
파리 총회에서 신기후 체제가 출범할 수 있을까? 낙관할 수 없지만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각국의 협상자들은 파리 총회의 목표를 2012년 교토 의정서의 효력이 끝나면서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된 국제적인 기후 체제를 2020년부터는 어떻게든 출범시키는 것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회 이전부터 각국들이 타협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국이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써내도록 했으며, 그것이 적절하지 않더라도 일단 새로운 체제를 출범시키고 이후에 평가하여 필요할 경우에 감축 목표를 강화한다는 제안이 제시되어 있다. 애써 기후 총회의 파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새로운 체제의 출범을 비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어떤 기후 체제인가에 있다. 각국이 써낸 자발적 감축 목표의 총합이 2100년까지 2.7℃이상의 평균 기온 상승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분석되었지만, 협상장에서 각국이 자신들의 감축 목표를 다시 조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출범 자체가 목표인 신기후 체제는 무책임을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장기 기온 상승 제한 목표를 어떻게 정하든 간에 그것의 달성과 무관하게 설정된 각국의 감축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무책임성은 "재정(finance)" 부문에서도 배회하고 있다. 영국 코너 하우스(Corner House) 연구자 래리 로만(larry lohmann)이 지적하는 것처럼, 많은 논자들이 기후 약자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이 내놓아야 할 재정 규모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석탄 발전을 짓는 것을 지원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는 데 말이다.
프랑스 정부의 금지 방침, 그럼에도 예고되어 있는 12일 기후 행동
영국 녹색당의 대표이자 하원의원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는 지구의 미래를 안전한 총회장에 앉아서 협상하는 이들의 손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거리에서 만나자!"고 제안하고 있다. 테러를 핑계 삼아 프랑스 정부가 금지 방침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 운동가들은 기후 협상이 끝난 12일(토)에 직접 행동을 다짐하고 있다.
각국의 협상가들이 기후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선언할지라도, 기후 운동가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토요일에 예고하고 있는 기후 행진의 규모와 강도가 그 불만족의 크기를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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