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사는 건지, 안 사는 건지 모를 만큼 절망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다른 삶을 얘기할 것이다. 좋은 시란, 이 귀찮은 삶 속에서, 이 막막한 삶 속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해 절망의 세계, 현실의 귀찮음과 저 아름답고, 거룩하고 완결된 어떤 세계와 연결해주는 것이다."
도무지 미래란 보이지 않는 시대,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견뎌내기도 힘든 시대다. 시를 음미할 여유란 게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가장 힘든 상황에서 시를 읊었다. 이육사는 일제에 체포돼 베이징으로 압송되던 기차에서 '광야'를 구상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이 1980년 서울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받을 때 쓴 시 '묏비나리'에서 따왔다. 시란, 때로 극적일 만큼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드러내 현실의 더러움을 더욱 생생히 보여주는 파노라마이자, 결정적 사진이자, 그 자체로 무엇보다 뛰어난 모던 포크송이다.
우리 시대의 큰 어른, 대표적 문학 비평가인 황현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새 시 평론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삼인 펴냄) 출간을 기념해 28일 오후 7시 서울시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북 콘서트를 갖고, 시의 위대함과 시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이 시대의 절망을 이겨낼 방법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책의 독자, 황현산 명예교수의 오랜 팬, 젊은 시인, 프레시안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글처럼 은유하고, 시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경청했다. 김수이 경희대학교 교수가 사회자로서 황현산 명예교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후 방청객과 작가에게 소통의 시간을 제공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이 시대의 절망을 이겨낼 방법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책의 독자, 황현산 명예교수의 오랜 팬, 젊은 시인, 프레시안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글처럼 은유하고, 시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경청했다. 김수이 경희대학교 교수가 사회자로서 황현산 명예교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후 방청객과 작가에게 소통의 시간을 제공했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지난 2013년 출간돼 시를 모르는 독자에게도 황현산 명예교수의 글과 이름을 널리 알린 <밤이 선생이다>(난다 펴냄)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그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시화의 묶음집이다. 책에서 황현산 명예교수는 가려 뽑은 국내외 시를 소개하고, 이 시를 음미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세월호 사태와 윤 일병 폭행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거론해 세상을 읽는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황현산 명예교수는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시에 친근감을 느끼게 할까 고민하며 만든 책이며,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데, 자기 삶을 바꾸는데 시를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를 독자와 의논하기 위해 엮은 책"이라며 "제 뜻을 여러분이 이해해주시고, 이 책에 여러분의 소망을 덧붙여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수이 교수는 "황현산 선생님의 에세이를 통해 독자는, 나아가 시인마저도 자신이 시에서 읽어내지 못한 것을 읽어내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고 호평했다.
시는 현실과 이상의 연결 다리
황현산 명예교수는 한 시간 반가량 진행한 이번 북 콘서트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좋은 시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좋은 시란 우선 상투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조건도 있다. 바로 이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 대부분이 이 두 번째 조건에 집중됐다.
"시는 어떤 아름다운 세계, 때론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세계, 절대적으로 건강한 세계, 인간이 아름답게 살아야 할 세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는 한편 비루한 삶, 막막한 삶을 견뎌내는 구체적 현실을 직시한다. 구체적 세계 속에서 소통하면서, 이 비루한 세계의 경험을 다른 세계로 연결한다. 우리는 현실의 귀찮음 속에서 그런 세계(이상향)를 보기 때문에 시에 감동한다."
이어 그는 과거 이상향으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대를 사례로 든다.
"조선 시대 어떤 사람이 '양반 상놈 구분이 없는 세계가 있다'고 했다면, 그는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조선 시대에 시 쓰는 사람이 비록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달밤에 관해 말할 때 그 말 속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미지, 전망을 담는다. 시인이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그 전망이 시의 세계에 있다. 나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시, 이 (비루한 현실의) 귀찮음을 의식하면서, 귀찮음에 대한 의식 속에 희망을 품게 하는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에게 시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답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다. 황현산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 시인의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라며, 시와 친숙해지기를 권했다. 그는 한국 시의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한국어의 특수성을 들었다.
황현산 명예교수는 한국이 오랜 기간 학문을 중요하게 여긴 나라라는 점을 꼽았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학문 언어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한국어를 쓰는 선비는, 대학 교수는 한자로, 영어로 학문하고 사고했다. 머릿속 문장은 한자 단어로 사고하지만, 사용하는 구어는 한글이다. 바로 이 괴리가 시적 언어가 자라는 토양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황현산 명예교수는 "한국어는 바로 시적 언어다. (한국인 사고 체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어의 존재 상태 자체가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인이 한국 시를 배우겠다고 할 날이 머잖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게으르게 살자
황현산 명예교수의 강의가 끝난 후 여러 참가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의 팬이 많았던 만큼, 질문은 바로 이어졌다.
<밤이 선생이다>를 통해 그의 팬이 되었다는 한 참가자는 더욱 두껍게 현재를 살아갈수록(타자의 삶에 더 공감하고, 시대의 고민을 함께 떠안고 살아갈수록) 삶이 힘겨워지는 현시대를 견뎌내는 방법을 물었다.
누군가는 세월호 희생자의 아픔에 함께 분노하지만, 한편에서는 바로 곁에서 치킨을 뜯는 몰염치함, 야수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 중 누가 더 편한 삶을 사느냐는 고민이 담긴 질문이다.
황현산 명예교수도 안타까움을 힘줘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가 사람들이 삶을 두껍게 살지 못하도록 구조화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사유할 여유를 가지는 삶의 태도를 가져갈 것을 강조했다. 그는 "너무 부지런하지 마라. 사보타주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뤄놓기도 해야 한다"며 "적어도 '내가 왜 이렇게 날마다 난리 치며 사는지'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깊어지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게으름 피우며 사는 게 잘사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어떻게 하면 시와 친숙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참가자에게 그는 "시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려고 온갖 실험을 하는데, 이 세계에 동참하면 된다. 다른 세계(이상향)로 넘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품는다면, 시가 하나의 동시처럼 여겨질 것"이라고 답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그는 "내 안의 다른 나, 끄집어내면 세상 사람들에게 경멸받을 수도 있는 내가 발언하게 해야 한다"며 "안에 있는 내 안의 다른 나의 목소리를 억압해서는 좋은 시,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스스로 "내가 시를 쓰지 않는 이유"라고 밝힌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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