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창간 3주년을 맞아 '번역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열두 명의 번역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는 자신의 번역서 한 권을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편집자> |
말라르메의 <시집>을 번역한다는 것은 오랜 동안 나에게 뛰어들지 말아야 할 모험처럼 생각되었다. 구체시나 문자시 같은 극단적인 실험시, 다시 말해서 해석이나 번역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시들을 논외로 한다면, 절대적 순수시를 표방한 말라르메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가장 난해한 시에 속하기에 내 역량을 벗어난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말라르메의 시어는 의미를 지시하는 언어가 아니라 일체의 의미에서 벗어난 순수한 말, 그저 말일 뿐인 말이라는 사르트르 같은 사람의 의견이 늘 마음에 걸렸고, 따라서 말라르메의 시어는 그 최초의 언어인 프랑스어로만 존재할 수 있는 언어라고 믿었던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말라르메의 시가 다이아몬드라면, 그것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원자구조를 살펴서, 다른 언어로 그 구조를 재조립하는 일일진대, 프랑스어를 벗어나면서 사라진 압력을 다른 언어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니 번역으로 얻게 되는 것은 단연코 탄소덩어리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를 가리기 위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 스테판 말라르메. |
(여기까지가 말라르메의 <시집>을 번역하려던 나의 번역론이라고 이를 만한데, 사실 이런 거룩한 말이 번역의 현장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내가 말라르메의 <시집>을 읽으려고 처음 용심을 낸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시집>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석 달을 넘게 고생하였지만 스스로 판단하기에 올바로 읽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시는 다섯 편을 넘지 못했다. 그 다섯 편이라는 것도 말라르메가 본격적인 난해시법으로 시를 쓰기 이전의 초기 시들일 뿐이었다.
그 무렵 학교 도서관을 뒤지던 끝에 '결정적'이다 싶은 참고서를 하나 발견했다. 말라르메의 시를 누군가 영어로 번역한 텍스트에 저 유명한 정신분석 비평가 앙드레 모롱이 주석을 붙인 책이었다. 서투른 사냥꾼인 나는 말라르메의 심장에 화살이라도 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는 스무 편을 넘지 않았으며, 그것도 내가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던 초기시가 태반이었다.
나는 말라르메를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책상 위에서 <시집>을 치우지는 않았다. 대학의 전임교원이 된 다음에도 이 상태가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말라르메의 시를 주제로 삼은 책들을 간간히 읽기는 했지만, 시와 씨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프랑스어의 지극히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문법지식을 넓히려고 애쓰고, 만국공통문법이라고 불러야 할 시의 어법에 관해 그 온갖 변형을 다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불문학 연구자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늘 말라르메의 그림자가 있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는 <말라르메의 문법>이라는 책도 있었다.
▲ <시집>(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황현산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위의 두 이야기는 어조가 서로 다르지만 양쪽이 모두 어김없는 사실이다. 앞의 이야기가 말라르메의 번역자로서 내가 지녔던 언어 이념에 대한 술회라고 한다면, 뒤의 이야기는 그 실천적 측면에 대한 고백이다. 이 두 측면에서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 말라르메 그 자신이다. 말라르메는 이 소심한 번역자에게 한 나라의 언어, 한 집단의 언어를 넘어서는 보편적 언어의 개념을 이해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언어의 문법과 시라고 하는 만국공통문법이 만나는 지점과 엇갈리는 지점, 그것들이 확대 개편되는 지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선택하고 조직한 번역어에 어떤 힘이 있다면, 그 역시 말라르메의 시어가 지닌 권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내가 극단적인 직역을 선택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낱말이 통상적인 의미에서 가능한 한 멀리 벗어나려하는, 그래서 말을 말로 번역해야 하는 말라르메 시의 성질을 의식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원시에 내재한 힘을 번역어의 힘으로 삼으려는 번역 작전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건 비교적 좋은 번역은 있어도 성공한 번역은 없다. 내 경우에도 말라르메 <시집>의 번역은 감행하지 말았어야 할 모험이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번역에 실패한 번역자로서 나는 말라르메 자신도 스스로의 시 쓰기가 늘 실패에 이르고 말았다고 한탄하였던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말라르메가 화자로서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어떤 절대적 순수정신의 대응능력으로만 남으려 하였다면, 자기 언어의 상투적 성격을 누르고 원시에 대한 대응능력만을 남기려는 번역가의 작업에서 그 축소된 형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말라르메의 시뿐만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서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모든 시들은 늘 그것이 기대고 있는 언어의 뿌리를 흔들어, 보편적 언어의 전망에서 일상적 의식의 전도를 시도한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의 시를 번역하는 말이 되기 위해서도 그 언어에 내장된 보편적 표현력을 한계에 이르기까지 동원해야 한다. 이점에서 번역가의 일은 벌써 시인의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번역이 비록 한 편의 시를 흠집 없이 옮겨놓는 일에는 실패해도, 바로 그 흠집을 통해서 적어도 그 시의 언어 의식을 인상 깊게 체험하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으로 보편적인 "시"의 길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문학 번역의 번역 가능성을 전망할 수도 있겠다.
황현산의 주요 저서 및 역서 <얼굴 없는 희망>(문학과지성사 펴냄) <말과 시간의 깊이>(문학과지성사 펴냄)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 펴냄) <밤이 선생이다>(난다 펴냄) <라모의 조카>(드니 디드로 지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펴냄) <시집>(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알코올>(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과 공역, 길 펴냄) <초현실주의 선언>(앙드레 브르통 지음, 미메시스 펴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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