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거침없다. 이런 빠른 움직임은 대선 이후 처음이다.
지난 5일 파리 등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이 처음 맞이한 상황은 광화문 평화 집회였다. 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 유연성을 늘리는 노동 시장 개편 법안을 비롯, 국정 교과서 반대, 쌀값 안정 등을 외친 5만여 명의 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지난 11.14 집회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계획이었다. 심지어 독재 정권이 주로 악용했던 소요죄 적용 가능성도 시사했다.
정치적 반대파를 뿌리 뽑겠다는 것으로, 여론과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경찰은 1531명을 수사 대상으로 하고 전국에 수사본부를 차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조계사에 거처를 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관련해 "(조계사 경내에 진입, 영장을 집행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순간에는 진입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경찰의 수사 계획 발표와 함께 보수 언론은 물론 일부 공중파 방송은 물대포 진압 영상 대신, 집회 참가자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영상 등을 주말 새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경찰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의식을 잃은 백남기 농민에 대해 단 몇 마디의 촌평도 내놓고 있지 않다. 박 대통령 귀국 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경찰은 또 "1만 2000여 개의 복면을 민주노총 자금으로 구입했고, 민주노총이 시위 당일 개별 지참하도록 했다는 진술과 문서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러다 평화집회 복면 구입비도 파헤치는 것 아닐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촛불 시위 당시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느냐"고 했던 발언을 연상시킨다. 집회를 여론으로 보지 않는다. 불순한 세력의 난동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태도의 박 대통령과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거침없는 박 대통령의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박계 지도부가 들어서 있는 새누리당을 장악하는 것도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반대파를 진압하듯 당내 비박계와의 '일전불퇴'를 감수하며 총선 시간표를 짜고 있다. 말 그대로 당을 몰아세우고 있다.
여당 대표에게 굴욕 주고 '진실한 사람들' 진군시키고
이날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호출했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청와대로 불려 가 '노동 5법 처리' 등을 처리해 달라는 압박을 받았다.
김 대표가 정기국회 법안 및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애만 많이 쓰고 뭐 별로 시원찮아서"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은 "애쓰는 김에 중요한 마지막 19대 정기국회 때 해야 될 것은 마무리를" 하라고 명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하면서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고도 말했다. 이런 선거 개입성 발언은 이제 일상 언어가 됐다. 청와대에서 야단맞은 여당 대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당내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하는 듯한 모양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는 국민경선 비중을 늘리고자 하는 김무성 대표에게 사실상 '무릎을 꿇어라'며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날 총선 공천룰 논의를 위한 특별기구를 출범시켰다. 이와 함께 지역구 경선 과정에서 결선투표제를 넣기로 한 친박계의 요구를 반영했다. 경선을 하면 현역이 유리한 만큼, 결선투표제를 통해 '현역 물갈이' 여론을 한 번 더 모아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렸다. 친박계의 '물갈이론'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전략공천을 늘리자는 친박계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전략공천은 당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권도 없는 친박계가 전략공천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희한한 모양새다.
결국 이는 청와대가 실질적 당권을 쥐고 공천 작업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특히 이르면 정기 국회가 끝나는 시점인 9일 이후 곧바로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개각의 핵심은 친박 좌장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복귀다. 최 부총리가 당에 복귀하면 강력한 친박계 구심점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를 포함한 비박계는 공천 룰 게임 과정에서 이래저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개국공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이 박 대통령 귀국 직후인 6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부산 해운대갑 출마를 공식화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전 대법관은 김무성 대표가 "편한 데 가면 안 되는데"라며 사실상 만류했다는 내용까지 공개했다. 그는 "(김무성 대표를) 만나 뵙고 출마 결심을 말씀드렸다. '편한 데 가면 안 되는데…'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도 내 의사는 존중하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잠재적 대권 주자인 안 전 대법관을 친박계가 '부산의 맹주'로 세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세 친박인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 대표를 향해 "대선주자급으로 평가되는 분들이 험지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줄 시기인데, 그런 결기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대표와 비박계의 '친박 인사 험지 출마론'에 친박계가 '대선 주자 수도권 출마론'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이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포함해 수도권 '텃밭'과 대구·경북 지역에는 '진실한 사람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진군하고 있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빠르게 정국을, 그리고 당을 장악하고 있다. '총선 후 개헌' 이야기도 잊을 만하면 흘러나온다. 대선 이후 임기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승부수는 이미 가동됐다. '독재'의 모습이 다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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