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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쓰레기 딜레마, 한국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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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핵쓰레기 딜레마, 한국도 피할 수 없다

[초록發光] 핵과 시간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핵발전소(원자력 발전소) 용량은 대부분 1000메가와트이며, 건설 중이며 계획 단계에 있는 원자로는 1400~1500메가와트이다. 이런 대용량 핵발전소는 계획에서 준공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한 번 지어진 핵발전소는 30~50년 정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핵발전소가 수명을 다한 후 제대로 된 사후 처리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고준위 핵폐기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사능 농도와 발열량 기준으로 보면 사용 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재처리 옵션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를 폐기물로 분류하지 않는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더라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발생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경우 방사능 준위가 높고 반감기가 길기 때문에 최대한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게 인간이 생활하는 곳에서 격리시켜 보관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수백 미터 지하에 10만 년 이상의 지질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곳에 저장되어야 한다. 독일은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 관련법상으로 가능하면 100만 년 동안의 지질 안정성이 보장되는 곳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만 년, 100만 년, 선뜻 실감하기 힘든 이 시간 단위를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책임지고 보장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를 이용하는 국가 가운데 최종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핵발전소는 총 440여 기, 가동이 영구 정지된 핵발전소는 150여 기이며, 2014년 말 현재 폐로가 진행 중인 핵발전소는 100기, 폐로가 완료된 핵발전소는 19기이다.

원자로를 즉각 해체하는 방식도 있지만, 방사성 농도를 낮추기 위해 몇 십 년이 지난 후 본격적으로 제염 및 철거하는 지연 해체 방식도 있다. 미국에서 몇 년 전에 폐쇄가 결정된 버몬트 양키 핵발전소는 지연 해체를 결정했다(미국 원자력법에 따르면 해체 방식(지연 또는 즉시 해체)은 핵발전소를 소유한 기업이 결정하지만 늦어도 60년 내에는 해체를 해야 한다).

지연 해체를 선택한 데에는 기술적 이유도 있겠지만, 발전 업체가 폐로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적립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매년 감사를 통해 발전 업체가 사후 충당금을 확보하는지 점검한다고 하지만, 수십 년 후에도 해당 기업이 여전히 존재할지, 그 비용을 책임성 있게 감당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때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핵발전소를 운영했던 독일은 2000년 사민당-녹색당 연립 정부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원자력법으로 금지함으로써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과정에 진입했다. 이후 기민/기사당이 주도하는 보수 연립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핵발전소 폐쇄가 유보되었으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2022년까지 현재 운영 중인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이로써 핵발전소 폐쇄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방사성 폐기물의 최종 처분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독일에서는 핵발전소 건설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최종 처분장 프로젝트는 36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3년에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한 구체적인 법 규정을 마련하고 2031년까지 후보지를 결정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에서 핵발전소 사후 처리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 셈이다.

사후 처리를 위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핵발전소 사후 처리 충당금을 확보해야 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발전 업체가 원자로 해체뿐만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 처분과 최종 처분장 부지 조사에 드는 비용을 부담한다. 현재 독일의 원자력 발전 업체는 회계 장부상으로 약 390억 유로를 사후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이 금액이 과연 핵발전소의 사후 처리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최근에 '원자력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00년 연방 정부와 발전 업체 간에 핵발전소 폐쇄를 협의할 때만 해도 발전 업체는 핵발전소 사후 충당금을 공적 기금의 형태로 관리하는 데 반대했다. 이 금액을 보유하고 있을 동안에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만 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이다. 발전 업체들은 국가에 자신들이 적립한 사후 충당금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도 전부 맡기고 싶어 한다. 애물단지를 더 이상 떠안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사실 공적 자원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390억 유로로 핵발전소의 사후 처리를 완전히 해결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전 업체의 이런 책임 회피적 태도에 대해 연방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최근 정부는 모기업의 자회사에 대한 부채 책임을 5년으로 제한하는 법을 개정하여 무한 책임 원칙을 도입했다. 핵 발전 업체들이 핵 발전 사업을 모기업에서 분리해서 핵발전소 사후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들것인가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핵폐기물을 '어디에' 처분할 것인가이다. 독일에서는 2005년 7월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재처리가 금지됨으로써 각 발전소 부지에 사용 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건설되었다. 최종 처분장이 건설되어 운영되기 전까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각 발전소 부지에 보관되어야 한다.

독일 주요 시사 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최근호(42/2015)에서 독일의 각 핵발전소 부지에 운영 중인 사용 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바로 독일의 최종 처분장 정책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경고비(Mahnmale)'라고 꼬집었다(독일에는 많은 '경고비'가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것을 후세대에 알리기 위해 '경고의 기념물'을 곳곳에 세워두고 있다. 베를린 관광의 시작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원역 근처에 있는 '무너진 교회'도 후세대에게 전쟁의 폐해를 경고하는 일종의 '경고비'이다). 핵발전소 사후처리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고려하면, 핵발전소 폐쇄는 그나마 '손쉬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어떤가? 1972년 고리 핵발전소 1호기를 착공한 이후 40년 이상 지속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데 집중 투자해왔다. 그 결과 세계 6위의 핵발전소 대국이 되었고 핵발전소 수출국에도 진입했다. 핵발전소 건설에 가속도가 붙어가는 동안, 19년 만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한 것을 제외하면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는 별다른 진척 없이 미뤄지고만 있다.

몇 개월 전에 정부는 첫 상업용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더 이상 수명 연장하지 않고 2017년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고리 핵발전소를 해체하면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드럼통에 넣어 경주로 보낸다고 하지만, 고준위 폐기물이나 사용 후 핵연료는 어디로 보낼 것인가?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지 않고 벌써 '즉시 해체'가 거론되고 있다. 핵 발전은 그 폐기물을 '초장시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인간이 책임질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최종 처분장을 계획하고 선정하는 과정도 수십 년의 시간이 요구됨으로써 몇 년의 재임 기간과 단기적인 가시적 성과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다루기에도 너무 불편하고 복잡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원자력 문제에는 이미 '무책임의 정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조만간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대책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도 독일처럼 각 핵발전소 부지에 사용 후 핵연료 '단기' 저장소를 운영해야 할지 모른다. 임시적인 저장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단기간 보관될지는 알 수 없다. 10만 년이라는 시간 앞에 정책적으로 제시되는 시간은 모두 '단기'일 것이다. 이것을 독일처럼 '경고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수명을 다한 핵발전소야 해체되겠지만 핵발전소 부지에는 방사성 폐기물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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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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