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 3월 에너지 정책 토론회에서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경기도에서 바꿀 수 있다"며 "이 비전을 우리가 만들어내면 도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함께 원대한 꿈을 실현해 나가자"고 사자후를 토했다.
경기도는 현재 29.6%인 전력 자립도를 오는 2030년까지 70%로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 보급률을 20%로 확대한다는 '경기도 에너지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또 당장 내년(2016년)부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6월 경제실 산하에 '에너지과'를 신설하고, 5개년 시행 계획을 작성하는 등 말 뿐만이 아닌, 행동에 나서고 있다.
남평필 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정 실험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고, 타 지방자치단체와의 교류 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례로 박원순 시장과 정책 토크를 진행하는가 하면, 원희룡 지사와 '친환경 에너지 타운 조성과 에너지 시장 개척' 등 5개 분야 14개 사업에 대한 경기도-제주도 간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아직은 준비 단계여서 섣부른 평가는 이르지만, 에너지 정책을 중심으로 보면, 어딘지 박원순 서울시장과 닮은 듯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세훈과 박원순 사이, 혹은 남경필의 길
박원순 시장은 '원전(핵발전소) 하나 줄이기'를 시정 역점 사업으로 설정하고, 1단계 기간 동안 핵발전소 1기 발전량에 해당하는 석유로 환산했을 때 200만 톤의 에너지를 줄이는 목표를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을 통해 달성했다. 현재는 2020년까지 서울의 전력 자립률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에너지 살림 도시, 서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1단계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요소는 첫째 박원순 시장의 확고한 의지, 둘째 행정 조직 체계 구축, 셋째 재정 확보, 넷째 조례 기반 구축, 다섯째 시민 참여 거버넌스와 사회적 공감대와 신뢰 형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의 에너지전환 의지는 집권 전부터 확고했는데, 일례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에너지 절약을 통해서 총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게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대단히 유용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고 했다(<박원순의 희망 탐사 25>(2007년)).
박원순 시장은 보궐 선거로 당선된 직후,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 대책을 수립하고, 조직 개편을 통해 녹색에너지과와 에너지시민협력반을 신설하였으며, 민관 거버넌스인 원전 하나 줄이기 시민위원회와 실행위원회를 구축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의 집권 전후인 2010년 대비 2013년을 비교해 보면, 서울시의 발전량이 두 배 가량 증가했고, 전력 소비량이 전국적으로 증가했으나 서울시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이에 따라 전력 자립률이 호전되었으며, 전국 전력 소비량 가운데 서울시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에너지 비전은 박원순 시장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목표치를 제시했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서울 친환경 에너지 선언(2007년)'은 2000년 기준 202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15% 감축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이용률을 10%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에너지 정책이 성공한 요인으로 꼽은 다섯 가지가 없거나, 매우 미약했고, 그 결과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경필 지사의 에너지 정책의 성공을 위해 서울시의 그것을 그대로 카피할 필요는 없고, 여건이 달라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성공과 실패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는 있다. 아직 정책 추진 초반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비전을 세웠고, 경제실 산하에 에너지과를 신설했다는 점에서 도지사의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고, 최소한의 조직 기반은 구축한 셈이다. 서울시의 사례를 참고하면, 다음 단계는 재정 확보와 시민 참여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하다.
정책 카피로 성공 보장되지 않아
서울시의 경우 높은 지대와 유휴 공간 부족, 지원 제도의 미비 등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에 많은 제약이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 저감에 있어 잠재량이 매우 크다. 단적으로 지난 7월 경기도는 전국에서 두 번째 규모인 사업비 약 1600억 원의 30메가와트급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가 완공되면, 약 6만 가구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주목할 만 한 점이 있는데, 경기도와 안산시가 행정 지원을, (주)삼천리가 안정적인 연료 공급과 시공, 설치를 한국서부발전이 연료전지 발전소에서 발행하는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우선 구매를, CJ제일제당이 부지 제공과 발전소에서 생산된 열을 전량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안산시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금 30억 원과 1200명의 지역 주민 고용창출, CJ제일제당은 연간 16억5000만 원 가량의 연료비를 절감 효과가 기대되는 윈-윈의 사이클을 구축했다. 집권당의 영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CJ제일제당 안산공장 인근 부지는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40년간 공장 증설을 할 수 없던 곳이었는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사업이 성사됐다.
이러한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경기도는 농어촌만이 아니라 서울 못지않은 에너지 다소비 (대)도시가 많다는 점이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만 해도 수원시와 고양시 등 두 곳이다. 이는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뿐만 아니라, 에너지 수요 관리 정책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부문별 수요 관리 정책의 핵심은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동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1단계 성과를 부문별로 보면,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효율화 정책은 목표 대비 달성률이 각각 63.4%와 78.3%에 불과했지만, 에너지 절약 운동은 189.8%로 목표의 두 배 가량 초과 달성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청책토론회' 등 시민 참여를 통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강조하고, 시민들의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한 데 있다.
시민 참여 거버넌스가 정책 성공의 관건
경기도의 조직도를 보면, 신설한 에너지과는 경제실 일자리정책관 산하에 배치돼 있다. 서울시가 에너지 관련 부서를 기후환경본부 산하에 둔 것과 대비된다. 이는 경기도가 에너지 문제를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산업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정책의 기본 프레임은 '효율화'시키고, '저감·절약'하고, '생산'하는 것임을 상기하자. 생산을 아무리 늘려도, 소비를 잡지 못하면 헛수고라는 말이다.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행착오를 거쳐 일정한 성공 모델로 만든 '원전 하나 줄이기 시민·실행위원회'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경기도 전체의 전력 자립률이 29.6%라고 하지만, 이를 기초자치단체의 자립률로 접근하면 경기도 내 지방자치단체 간 전력 자립률의 격차는 극심해 진다. 특히 서울시를 중심으로 생활권역이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 전체의 자립률이 높아지더라도,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이격에 따른 피해와 수혜의 부정의(不正義)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행정은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 즉 경기도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기초지자체의 에너지 자립률 제고를 위한 중간 지원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다.
경기도의 야심찬 에너지 비전이 구두선으로 그칠 것인지, 서울시와는 또 다른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아 갈 것인지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경필 지사의 표현대로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슬로건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새누리당 안에서 오랫동안 소장 개혁파로 소신을 피력해 온 남경필 지사로부터 출발하는 보수 정당의 에너지 전환 실험의 성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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