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 노동 개혁, 장애인은 무조건 '저성과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 노동 개혁, 장애인은 무조건 '저성과자'?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④] 평균 이하의 장애인 노동 현실, 바늘구멍도 사라졌다

"아니, 저성과자라니요? 왜 제가 저성과자입니까?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건가요? 일을 하거나 아이만 돌보거나. 아이만 돌보기에는 살림이 빡빡한데 어쩌란 말입니까?"

A씨가 해고된 것은 야근과 특근을 하지 않아서 성과가 가장 적어서란다. 그녀에게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기에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러 가야 했다. 특히 여름에는 아이를 돌보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해서 야근이나 특근을 하지 않았다. 자폐성 장애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아이가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여름에는 매미 소리만 들려도 귀를 막고 불안해한다. 옆에 가족이 있어 줘야 한다. 회사를 4년째 다니고 있지만 그동안 여름에 야근이나 특근을 안 한다고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2008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긴 탓인지 관리자들도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4년 말 정부가 노동 개혁을 한다며 몇 가지 정책이 나오더니 분위기가 술렁였다. 회사는 취업 규칙도 바꿨다. 최근 팀원들의 시선도 멀리하는 눈치였다. 팀장이 불러서 팀원 전체가 불이익이 생기면 안 된다며 한 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해고, 그것도 저성과자 해고라니…. 남편이 돈을 벌기는 하지만 아이 때문에 드는 의료비, 교육비 등이 만만치 않은데 걱정이다. 정부가 주는 복지수당은 있으나 마나 한 정도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다시 집에 갇히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엄마인 그녀가 아이에게만 얽매여 있어서는 자신도, 아이도 안 좋겠다 싶어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만든 사회생활,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니. 앞날이 막막하다. 남편과 번갈아 아이를 돌보니까 가끔은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는 여유도 있었는데….

그녀는 정부 광고가 생각나 화가 났다. "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는 거짓말 아닌가. '정부 정책 방향이 저렇다면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이더라도 일할 데는 좀 있겠지'라는 기대까지 했었는데.

물론 미심쩍은 게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작한 '중증장애인 인턴제'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공단은 인턴 참여자의 장애 유형을 제한했고, 인턴 지원금이 약정 임금의 80%, 월 최대 80만 원을 6개월만 지원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 6개월간 월 65만 원만 제공한다고 했다. 최저 임금도 안 주겠다는 말이다. 그래도 부부가 버니까, 아이도 직장만 가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우리 아이조차도 장애인이라는 낙인에 저성과자라는 낙인이 덧붙여질 뿐이다.

▲ 장애인 일자리 박람회 모습. ⓒ연합뉴스

언제나 '평균 이하'인 장애인의 노동 현실

이 이야기는 가상이다. 하지만 현실이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다. 더 비참하다. 현실이 더 비참하니 문학적 상상력이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 그래서 장애 인권 활동가들 몇몇을 만나 봤다. 하나같이 정부에 거는 기대도 많지 않았고 장애인의 노동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어차피 노동 시장에 진입도 못 하는데 정부가 구조 개악을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겠어?"
"장애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아. 어차피 정부나 기업은 장애인 의무 고용률도 지키지 않는데…."
"평균 39만 원 받고 일하는 장애인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보다 더 나빠질 게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몰아붙이고 있는 노동 시장 구조 개악에 대한 반응은 처참하다. '어차피'에 담긴 '평균 이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1990년부터 실시된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는 비장애인과 비해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제도로서 2015년 현재 정부 및 공공 기관은 3%, 민간 기업은 2.7%의 의무 고용률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의무 고용 사업체의 장애인 의무 고용 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2.54%다.

게다가 장애인고용공단이 추진하는 '중증 장애인 인턴 제도'도 기대 이하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턴에 참여했던 중증 장애인이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턴 기간이 끝난 6개월 후의 고용 문제는 전적으로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달려 있고, 이 사업에 한 번 참여했던 중증 장애인은 이후 다시 지원할 수 없도록 했다. 기혼 여성의 노동 정책과 흡사하게 고용 효과만을 잠시 내는 단시간 근로자를 확대한 꼴이다. 또한 인턴 제도에 참가하는 많은 수의 중증 장애인과 사업장은 근로 시간을 단축해 근로 계약서를 쓰고, 그러다 보니 최저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장애인 고용 종합 대책'에서 '최저 임금 감액 적용'을 대안으로 제시하더니, 그에 따라 '장애인 고용 장려 지원금'에서도 장애인은 최저 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전제를 깔았다. 장애인 고용 장려 지원금은 원래 의무 고용률을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지원하는 제도다. 그런데 지원을 받는 사업주는 '최저 임금 이상자나 최저 임금 적용 제외 인가를 받은 장애인'에 대해서만 지원하겠다고 한다. 장애인은 생산성이 낮아 최저 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의 최저 임금 적용제외 대상에 포함된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39만 원(고용노동부 자료)이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 및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차별적인 7조를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열악한 저임금으로 노동하는 91만 명의 장애인들에게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을 합법화하는 방향(최저임금 감액 제도)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최저임금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최저임금법의 제1조(목적)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이라고 돼 있다. 생산성이 기준이 아니라 생활 안전과 노동력의 향상을 위한 것이 최저 임금제다. 최저 임금제는 유럽에서 주로 여성 및 아동 등 취약 노동자 계층을 지나친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이렇게 장애인 노동이나 최저 임금제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인식이 저조하다 보니 정부의 지출도 매우 낮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올해 발표한 '부문별 사회복지 지출 수준 국제 비교 평가'를 보면, 한국의 근로무능력부문 예산1)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다. 무엇 하나 장애인이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이나 제도가 없다.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장애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23만5000원으로, 전체 가구 월평균 가구 소득 415만2000원의 53.8%이다. 비장애인 가족보다 장애인 가족의 지출이 의료비, 교통비, 장애보조기구비용 등 최소 16만 원이 더 든다고 하니 살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의 장애인 노동 정책은 '평균 이하'의 장애인 노동 현실을 더 뒤로 돌리려 한다.

적극적 조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저성과자' 낙인

나아가 박근혜 노동 시장 구조 개악도 이러한 장애인의 현실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짜였다. 앞선 이야기에서 나왔듯이 장애인 가족만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성과'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편화시킨다. 즉 장애,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저성과자'라는 사회 규범적 낙인을 하나 덧씌우는 셈이다. 장애인 의무 고용률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그나마 차별적인 현실을 바꿔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 저성과자 일반 해고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정책과 관행을 시정하도록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침만으로도 저성과자를 해고하고 있는 현실, 장애인의 안정적 고용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장애인이 있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도 거의 미미한 현실에서 고용주들이 선택하는 것은 정부의 '맘대로 해고'가 아닐까? 그나마 장애인과 가족들 일부가 겨우 들어간 바늘구멍만한 노동시장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인권의 가치가 보편적인 주장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장애인도 일하고 싶은 인간이고 이를 위해서 사회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더 이상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금 같은 분위기와 제도가 유지 확대된다면 인권의 가치와 규범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차이에 따른 적극적 조치가 아니라 차이를 정당화하는 고용과 해고가 더 우선시될 것이다. 수년간의 운동으로 만든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은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한 게 아니라, 나아질 기미 없는 앞날이 빤히 그려져서 막막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막막함을 알기에, 인권의 가치는 함께 기대고 싸우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세워지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1) 근로무능력급여란 장애인 관련 공공 지출과 국민연금의 장애 연금, 산재 연금, 법정 감면 혜택까지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예산이라고 일컫는 장애인 관련 지출보다 훨씬 포괄적인 지표이다.

(이 글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고, <중증장애인 인턴제 및 공공고용제 도입 토론 자료집>(장애인노동권공대위, 2014년)을 참고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 개혁인가 재앙인가?" 을들의 국민투표(☞바로 가기)에 함께 해주세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노동개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총 다섯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